<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1편>

 

 

 

 

* 철도공원

 

 

 

 

 

 

간단한 퀴즈로 시작해본다.     

 

- 태릉선수촌을 모르시는 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   

  

- 그럼 태릉이 뭐하는 곳인지 아시는 분?     

 

문제를 못 맞히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 태릉 옆에 강릉도 있는데 강릉은 뭐하는 곳인지 아시는 분?     

 

일단 죄송하다. 독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책은 덮지 마시라. 정답은 아셔야 할 것 아닌가.     

 

 

 

 

* 옛 화랑대역: 역사트레킹 팀

 

 

 

 

 

 

● 커피 한 잔이 어울리는 간이역, 옛 화랑대역     

 

그렇다. 이번에는 태릉 역사트레킹을 소개한다. 태릉 역사트레킹은 철길을 걸으며 시작한다. 진짜는 아니고, 지금은 폐선이 된 경춘선 옛 철길을 걸으며 시작하는데  약 5분 정도 걷다보면 옛 화랑대역에 도착할 수 있다.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자리 잡고 있는 옛 화랑대역은 거대도시 서울과는 어울리지 않게 작고 아담한 간이역이다. 가을 낙엽이 떨어질 때는 커피 한 잔과 시집 한 권을 들고 서성이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그런 곳이다. 

 

화랑대역은 1939년에 개통된 경춘선의 한 역으로 상업운영을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 역이 들어섰을 때는 화랑대역이 아닌 태릉역이었다. 그러다 1958년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뀐다. 바로 옆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역명이 변경된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이 화랑대다. 

 

목조건물로써 약 80년의 세월을 거친 옛 화랑대역은 좀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좌우가 다른 비대칭 삼각형 형태의 지붕이 바로 그것이다.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길게 내려왔다. 일반적인 목조 간이역은 책을 뒤집어 놓은 박공지붕 형태를 취한다. 맞배지붕이라고도 불리는 박공지붕은 좌우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나 옛 화랑대역은 오른쪽이 쭈욱 더 내려와 있는 것이다. 건축용어로는 이어내림지붕이라고 말한다. 이런 독특한 모양을 갖춘 옛 화랑대역은 2006년에 국가등록문화재(300호)로 지정된다.  

 

2010년 경춘선은 복선화됐고, 옛 화랑대역은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는 역이 된다. 폐역이 된 것이다. 하지만 화랑대역이라는 명칭이 아직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지난 2000년에 개통된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이다. 경춘선과 지하철 6호선은 다른 노선이다. 

 

기차가 달리지 않자 사람들의 발걸음도 끊겼다. 그러다 다시 옛 화랑대역을 사람들이 찾게 된다. 2018년에 철도테마공원인 화랑대 철도공원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기차들이 선로에서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청춘의 시절로 돌아간 듯 기차를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모두 다 행복한 표정이다. 달리지 못하는 그저 전시된 기차지만 이미 그들은 그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떠난 것 같았다. 필자는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물어봤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네! 당연하죠!”     

 

그렇게 행복한 옛 화랑대역에서 달콤한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발걸음을 이어갔다. 이제 트레킹팀은 경춘선 옛 철길을 따라 태릉으로 향한다. 옛 화랑대역에서 태릉까지는 화랑천이라고도 불리는 묵동1천을 따라 걷는다. 작은 하천이지만 물과 함께 걸어서 참 좋은 길이다. 

 

일반적으로 서울에 있는 옛 철길들은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 경의선 철길을 생각해보시면 된다. 도심지가 확장되니 기존에 있던 지상 철길 구간은 지하화 되고, 나중에는 공원으로 꾸며진다. 그래서 기차처럼 길쭉한 형태의 공원이 들어서는 것이다. 그런 철길 공원은 도심지에 폐철로가 있다는 점 이외에는 다른 공원들과 차이점이 별로 없다. 소음과 인파들 때문에 걷는 맛도 덜하다. 

 

하지만 화랑천을 끼고 걷는 옛 경춘선 철길 구간은 고독을 씹으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걷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소음도 별로 들리지 않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호젓하게 걷다보면 태릉에 도착한다.      

 

 

 

 

*옛 화랑대역: 사진에서도 보이듯 지붕이 비대칭이다.

 

 

 

 

 

 

● 태릉을 알려면 중종시대를 알아야 한다     

 

태릉이 뭐하는 곳인지 몰라도 태릉선수촌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릉은 1565년에 들어섰고, 선수촌은 1966년에 개촌 했으니 무려 400년이나 앞서 능이 조성된 것이다. 그래서 태릉(泰陵)이 뭐하는 곳인지 모른다고 하면 문정왕후가 크게 노여워하실지 모른다. 그렇다. 태릉에는 중종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께서 잠들어 계신다. 

 

태릉에 들어서기 전에 입간판을 먼저 살펴보자. 태강릉이라고 적혀있다. 태릉에 왔는데 강릉? 강원도 강릉? 아니다. 강릉은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과 그의 부인 인순왕후가 묻힌 곳이다. 이로써 앞서 제시한 퀴즈들의 답이 얼추 언급됐다. 퀴즈를 풀었다고 여기서 책을 덮으시면 섭섭하다. 이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태릉에 들어서면 의리의리한 그 넓이에 혀를 내두르실 것이다. 불암산 남쪽에 위치한 태릉은 단일릉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의리의리한 능역을 통해서 주인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윤지임의 딸인 문정왕후는 열일곱의 나이인 1517년(중종12)에 중종의 셋째 부인이 된다. 1515년에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가 왕자를 낳은 후 산후통증으로 죽음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장경왕후가 낳은 왕자는 이후 인종이 된다. 남한산성에서 굴욕을 당한 인조 말고 인종. 

 

좀 어렵다. 이 부분에서 교통정리 좀 들어간다. 일단 용어 정리부터. 문정왕후는 제2계비, 장경왕후는 제1계비이라고 했는데 그럼 계비의 정확한 뜻은 무엇인가? 계비(繼妃)는 ‘임금이 다시 장가가서 얻은 부인’이다. 새어머니를 계모라고 부르듯이 왕의 새로운 부인을 계비라고 부른다. 

 

그럼 중종은 문정왕후, 장경왕후 이전에도 부인이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있었다. 단경왕후가 바로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다. 중종이 조강지처라고 칭할 정도로 중종과 단경왕후는 금슬이 좋았다. 하지만 단경왕후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연산군의 매부였기에 중종반정 세력들은 단경왕후를 폐서인으로 만들어 궁궐에서 쫓아냈다. 

 

신하들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중종이었기에 그렇게 자신의 조강지처를 떠나보내야 했던 것이다. 이후 단경왕후는 평생 중종만을 그리워하다 삶을 마감한다. 경복궁 옆에 있는 인왕산에는 단경왕후가 치마를 흔들며 중종을 그리워했다는 치마바위가 있다.      

 

단경왕후(1739년 복위) - 장경왕후 문정왕후      

 

중종의 여인들이 이들 뿐이겠는가.  오죽했으면 ‘여인천하’라는 사극까지 있었을까.      

 

 

 

 

* 태릉: 정자각

 

 

 

 

 

 

● 문정왕후는 중종 옆에 묻히지 못했다     

 

다시 태릉이야기. 앞서도 언급했지만 태릉의 능역은 크지만 단릉이다. 문정왕후 홀로 잠들어 계신다. 아들인 명종 재위시절 약 20년 동안 큰 권력을 휘두른 문정왕후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아비인 중종 곁에 묻혀 있는 것이 맞지 않나?

 

문정왕후가 경원대군을 생산했을 때는 1534년이었다. 입궁을 한지 무려 17년 만에 왕자를 출산한 것인데 30대 후반인 나이에 낳았으니 그때 당시의 기준으로는 노산이었다.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왕자를 생산했음에도 문정왕후의 앞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미 세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 세자는 앞서 언급한 장경왕후가 낳은 인종이었다. 

 

왕통을 이을 세자가 있는 마당에 중전의 몸에서 또 다른 적자(嫡子)가 탄생을 했다는 건 왕위계승과 관련하여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있게 된다. 인조반정의 원인이 되었던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와 영창대군 사사를 생각해보시라. 

 

1544년 문정왕후의 지아비인 중종이 숨을 거둔다. 왕위는 인종이 잇게 됐다. 그런데 인종은 재위 9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를 두고 야사에서는 문정왕후가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왕으로 삼으려고 인종을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경원대군이 1545년 왕위를 이어받아 조선 13대왕, 명종으로 등극한다. 이때 명종의 나이 12살이었다. 그러니 실제적으로 권력은 누가 휘둘렀을까?

 

중종은 죽고 나서 장경왕후와 함께 고양 서삼릉에 묻혔다. 그러다 명종 17년(1562) 지금의 자리가 길지라 하여 천장(遷葬)된다. 아버지 성종이 묻힌 선릉(강남구 삼성동) 옆으로 옮겨온 것이다. 사후에 자신의 지아비인 중종 옆에 묻히고자 문정왕후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였지만 문정왕후는 지아비와 함께 묻히지 못한다. 옮긴 중종의 능이 지대가 낮아 여름철에 비가 오면 그 일대가 다 잠겼기 때문이다. 결국 문정왕후는 중종과 멀리 떨어진 불암산 남쪽에 잠들게 된다. 홀로!    

 

 

 

 

* 연결숲길: 태강릉 연결 숲길.

 

 

 

 

 

 

● 태릉과 강릉을 연결하는 숲길을 따라     

 

자 이제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의 능이 있는 강릉을 향해 가보자. 강릉은 태릉과 언덕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는데 그 두 곳을 연결하는 숲길이 참 좋다. 말 그대로 왕릉의 숲이다. 산책로도 잘 정돈되어 있고, 나무들도 잘 가꾸어져 있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숲길이다. 산책로가 시원시원하고 널찍해서 그런지 언뜻 문경새재 길 분위기도 났다.

 

태릉에 비해 강릉은 무척 단출하다. 능역이 무척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명종은 죽어서까지도 문정왕후의 품에서 못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문정왕후가 1565년에 생을 마감했고, 명종은 1567년에 숨을 거두었다. 명종은 12살에 왕위에 올라 22년 간 용상에 앉아있었지만 실제로 그의 치세 기간은 문정왕후 사후 2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재위 기간 내내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식 사랑도 적당히 해야 한다. 과유불급!

 

그렇게 태강릉을 탐방한 트레킹팀은 산 중 호수인 제명호를 만나게 된다. 제명호는 미국인 선교사가 만든 인공호수인데 불암산 중턱부에 위치해 있어 산과 물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모습을 선사한다. 크지 않은 호수지만 그저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호수에 비친 불암산 봉우리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철도테마공원에서 행복해지고, 태강릉 숲길 힐링하고, 제명호에서 물에 비친 불암산을 바라보고. 아~ 좋다! 태릉 역사트레킹!          

 

 

 

 

 

* 강릉: 강릉의 참도

 

 

 

 

 


 

 

 

■ 태릉 역사트레킹

 

1. 코스: 옛 화랑대역 ▶ 경춘선철길 ▶ 태릉 ▶ 태강릉 연결숲길 ▶ 강릉 ▶ 제명호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4시간(휴식시간 포함) 

4. IN: 6호선 화랑대역 / OUT: 삼육대학교 ☞ 삼육대학교 앞에서 6호선 화랑대역 방면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음.                    

  

 

 

 

* 태릉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 본 트레킹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진행을 합니다. 그러니 참가를 원하시면 아래 링크로 가셔서 강좌 등록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본 블로그에서 진행을 하는 것이 아니오니 착오없으시길!



 





태릉 선수촌으로 더 유명한 태릉은 문정왕후의 능입니다. 그런데 태릉 건너편에는 강릉이라는 능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강원도 강릉 말고... 강릉! ^^; 강릉은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의 능입니다. 강릉은 태릉과 언덕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는데 그 두 곳을 연결하는 숲길이 참 좋습니다. 

왕릉을 연결하는 숲길이라서 그런 걸까요? 산책로도 잘 정돈되어 있고, 나무들도 잘 가꾸어져 있더군요.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숲길입니다. 산책로가 시원시원하고 넓직해서 그런지 언뜻 문경새재 옛길 분위기도 나더군요.

그렇게 태릉과 강릉을 탐방한 트레킹팀은 산 중 호수인 제명호를 만나게 됩니다. 제명호는 미국인 선교사가 만든 인공호수인데 불암산 중턱부에 위치해 있어 산과 물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모습을 선사하더군요.  

제명호에 비친 불암산 봉우리의 모습도 참 멋집니다. 태강릉 연결 숲길에서 힐링을 하고, 제명호에서 한 더 힐링을!

이제 트레킹팀은 학도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향해갑니다. 이곳은 사세가 큰 사찰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주 큰 마애불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마애불인데 그 크기가 무려 13미터에 달합니다. 이 마애불은 서울의 동쪽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주 시원한 풍광입니다. 

왕릉 탐방도 하고, 숲길도 걷고, 호수도 거닐고, 마애불 탐방까지... 이렇듯 태릉 역사트레킹은 아주 아기자기합니다. 아참! 태강릉 연결 숲길은 4~5월, 10~11월만 오픈합니다. 그러니 지금 안 가면 10월 달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 이번에 꼭 가야겠지요? 안 가면 후회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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