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인석

 

 

 

 

역사트레킹을 행하다보면 무덤도 많이 탐방한다. 왕이 모셔진 왕릉, 세자 혹은 세자빈이 잠들어 있는 원, 사적으로 지정된 사대부들의 묘.

 

그런 무덤들은 후손들이 부지런해서인지 아니면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서인지 아무튼 잘 관리되어 있다. 왕릉의 숲길은 어떤가? 왕릉이 아니라 숲길을 걸으려고 일부러 티켓팅을 할 정도다.

 

4월 19일 월요일. 내시묘역이라 불리는 초안산을 탐방했다. 서대문 안산 말고 강북에 있는 초안산. 이곳은 궁인들과 상민들의 묘가 무려 천 여기에 달했다. 지형이 야트막하고 도성에서 가깝기에 그랬던 것이다. 초안산의 묘들은 서남쪽 방면으로 향한 것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그 방향에 궁궐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궁인들은 죽어서도 궁궐을 향해 마음을 두고 있나보다.

 

후손이 없는 주인을 잃은 묘라서 그런가? 초안산의 분묘들은 훼손되고 방치됐다. 이런 모습들은 또다른 내시묘역이라고도 불리는 이말산 일대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이말산은 북한산 서쪽편의 작은산으로 무덤을 쓰기에 적당한 곳이다.

 

초안산 곳곳에 파손된 석물들이 방치되어 있다. 특히 목이 잘린 문인상을 여럿 목격했다. 어떤 것은 무언가로 내리친 것처럼 절단면이 비교적 예리하게 잘려있었다. 진짜 누군가 일부러 손상을 시켰다면 그건 명백한 범죄 행위다. 현행법으로 문화관리법 위반이다. 저승법으로는 천벌을 받을지 모른다.

 

차라리 집에 가져가지 왜 자르나!

 

앞서 언급한 이말산에도 버려지고 훼손된 석물들이 아주 많다. 그곳에도 예리하게 절단된 석물들이 꽤 많이 목격된다. 특히 문인석과 동자석의 훼손이 심했다. 도대체 목을 왜 자르나? 그것을 보니 갑자기 목잘린 단군상이 생각나더라.

 

 

 

 

 

 

* 석물: 상석, 비좌, 문인석. 얼핏봐도 오른쪽 문인석의 목 부분이 이상해보인다.

 

 

 

 

 

 

* 문인석: 왼쪽 문인석인데 어깨 부분이 실리콘으로 발라졌다. 실리콘을 바른 위쪽으로 잘려 나간 파편들이 보인다.

 

 

 

 

 

 

필자가 오버하며 생각한다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무덤가를 가보니 명확해졌다. 그 무덤에는 상석, 비석, 문인석 한쌍이 있었다. 문인석 한 쌍은 둘 다 머리가 잘렸는데 나중에 실리콘으로 발랐는지 목 부분이 지저분하게 접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상석과 비석 부분을 살펴보았다. 문인석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상석과 비석은 방치된 거 말고는 딱히 눈에 띄는 훼손은 없었다. 정확히는 비석은 비좌, 즉 받침대만 있었다. 하지만 그 비좌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참고로 상석은 상돌이라고도 불리는데 네모나게 생긴 상이다. 돌로 만든 제사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인석의 목 뒷부분을 살펴봤는데 무엇에 찢겨 나간 듯 큰 파편 조각이 잘려나갔다. 약하다는 석회암도 그렇게는 안 잘려나가겠다. 화강암으로 만든 동자석이 그렇게 약하다고 할 수 있나. 타인 무덤의 석물을 함부러 건들이지 마라. 그 석물들은 망자에게 속한 것들이니까...

 

버려진 무덤가를 탐방하다 보면 죽음에 대해서 곱씹어 보게 된다. 왕릉처럼 잘 관리되어 후세에게도 자주 회자되는 무덤들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까지도 버려지고 잊혀진 묘들도 있다.

 

평소 문인석을 듬직해 해서 그런가 목 잘린 문인석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씁쓸하다. 하지만 어떤 문인석은 봉분이 다 사라져 자신의 임무도 끝났지만 아직까지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새로운 임무까지 부여받은 듯싶었다. 누군가가 복을 빌며 복 쌀알을 올려놨으니까. 그 문인석 얼굴을 보니 아주 해맑은게 복스러운 얼굴이었다. 누구라도 그 앞에서 서면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 문인석의 새로운 임무처럼 세상의 복밭에 결실이 많이많이 맺었으면 좋겠다.

 

 

 

 

 

 

 

 

* 초안산 숲길

 

 

 

 

 

 

 

 

* 문인석: 목이 잘렸다. 내 무덤의 문인석도 아닌데... 마음이 아프다.

 

 

 

 

 

 

 

 

 

 

 

* 문인석: 후더분한 표정이 마음에 드는 문인석.

 

 

 

 

 

 

 

 

 

* 문인석: 복 쌀알이 올려져 있다. 세상의 복밭에 좋은 결실이 많이 맺어졌으면...

 

 

 

 

 

 

 

 

 

 

 

* 문인석: 이스턴섬의 모아이 석상 부럽지 않은 문인석들. 초안산 비석골 근린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