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5편>

“에이 그게 말이 되나요? 서울에, 그것도 강남과 가까운 곳에 무슨 지뢰밭이에요?”

필자가 우면산에서 지뢰밭이야기를 하면 항상 저런 반응을 듣게 된다. 이구동성이다. 어떤 참가자분은 필자를 무척이나 한심하게 쳐다보기도 했었다. 무슨 사기꾼 보듯이... 설마 거짓말을 할까. 지뢰밭이 있으니까 있다고 하지.

하긴 필자도 처음에는 설마 했었다. 강남을 품고 있는 우면산에 지뢰밭이 있다는 걸 쉽게 못 받아들이겠더라. 더군다나 아직까지도 미확인 지뢰지대까지 있다고 하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무슨 비무장지대로 트레킹을 하러 가는 거 같다. 우리 강남에 있는 우면산으로 트레킹 하러 가는 거 아닌가요? 강남스타일 트레킹이요!

* 우면산 숲길

● 소가 졸고 있는 모습을 한 우면산

서두부터 참 요란스럽다. 사실 우면산 역사트레킹도 참 재미난 코스다. 위험하지도 않다. 그럼 왜 저런 자극적인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했는가? 방심을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그랬다. 안전 없이 트레킹 없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우면산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관암산이라고도 불린 우면산(牛眠山)은 소가 졸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동서로 길게 뻗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태령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옆 산 관악산이 해발 632미터인데 비해 동서로 퍼져 있어서 그런지 우면산은 해발이 293미터이다. 관악산의 반도 못 미친다. 하지만 키가 작은 만큼 관악산보다는 오르기가 수월하다.

우면산 역사트레킹은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에서 집합을 해 그 옆에 있는 청권사로 향한다. 4번 출구와 청권사까지는 약 50미터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첫 탐방지를 만나는 것이다.

* 효령대군 묘역으로 가는 길

● 효령대군을 모신 사당, 청권사

그럼 청권사(淸權祠)는 어떤 곳인가? 청권사는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 이보를 기리는 사당과 함께 그와 후손의 묘가 있는 곳이다. 원래 효령대군의 묘는 임산원이라고 불렸었는데 1736년(영조12)에 왕명에 의해 경기감영이 사당을 짓게 됐다. 사당은 다음해에 완성됐고, 청권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후 1789년(정조13)에 사액된다.

‘청권’이란 이름은 <논어> 미자편에서 유래했는데 ‘신중청폐중권(身中淸廢中權)’이란 말에서 따왔다. 명칭이 복잡한데 그 내막을 알려면 효령대군의 삶을 되짚어봐야 한다.

중국에서 은나라가 쇠락하고 주나라가 흥기할 때인 주나라 태왕 때였다. 태왕은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태백, 둘째 우중, 셋째 계력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중 계력이 창(昌)을 낳으니 성군으로서의 큰 자질이 보였다. 이를 알고 첫째 태백과, 둘째 우중은 몰래 도읍에서 빠져나와 멀리 도망간다. 이에 왕위는 셋째 계력으로 전해졌고, 마침내 그의 아들 창에게로 이어졌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 아닌가? 성군의 자질이 가득했던 셋째 아우를 위해 도성을 떠났던 첫째 양녕대군과 둘째 효령대군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렇다. 세종대왕의 왕위를 위해 도성을 등졌던 효령대군은 주나라 태왕의 둘째 우중에 비견된다. 우중은 이후 청빈하게 살았기에 청도(淸道)에 맞았고, 스스로 왕위 계승을 깨끗이 포기했으니 권도(權道)에 맞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신중청폐중권’이라 했고, 여기서 ‘청권사’의 명칭이 나온 것이다.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계력의 아들 창은 이후 주나라 문왕(文王)이 된다. 무왕(武王)의 아버지이자 강태공과의 일화로 유명한 그 문왕이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를 멸망시킨다.

 

“보세요. 주위는 다 아파트와 건물들인데 효령대군 묘만 녹음을 품고 있습니다. 효령대군 묘가 쉼표를 찍어주는 거 같아요.”

“오,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쌤, 적절한 표현!”

청권사와 효령대군 묘는 묘지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원 같다. 유치원 꼬맹이들도 소풍을 올 정도로 효령대군과 그의 후손들은 넉넉하게 주위를 품고 있는 듯하다.

효령대군은 유교 국가 조선에서 불교의 진흥과 보전에 많은 애를 기울이셨다. 우중처럼 어진 성품을 지니고 많은 이들과 두루두루 교류를 하셨다. 불교에 심취했다고 성리학자들이 비판을 하긴 했지만 그런 비판에도 괘념치 않으신 듯싶다. 그렇게 덕업을 쌓으며 살아갔던 효령대군은 크게 장수를 하시다 돌아가신다. 91세에!

* 효령대군 묘: 효령대군 묘를 지키는 문인석. 문인석 뒤로 아파트가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이 이채롭다.

 

● 봉은사보다도 300년이나 앞서 건립된 대성사

이제 트레킹팀은 반대편 매봉재산으로 향한다. 매봉재산은 우면산의 지산인데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 옆으로 난 산책로로 진입할 수 있다. 매봉재산은 동네 뒷산 정도이지만 숲이 울창해서 삼림욕을 하기에 적당하다. 트레킹팀은 남부순환로를 지나 본격적으로 우면산에 진입한다. 트레킹팀 앞에 서울둘레길 표지가 나타난다. 이곳은 서울둘레길 4코스인데 트레킹팀은 대성사로 방향을 잡고 이동한다.

서울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은 단연코 봉은사일 것이다. 어쩌면 조계사보다도 봉은사를 더 익숙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계사의 일주문을 본 사람들보다 봉은사의 일주문을 본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봉은사가 코엑스 사거리 옆에 위치해 있어 오며가며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 평지에 있는 사찰의 장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수월한 접근성은 산사가 주는 고즈넉함과는 배치된다. 소음에 시달리고 번잡하고... 우리가 기대하는 사찰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좀 사설이 길어졌다. 여기 봉은사보다 더 오래된 산 중 사찰이 있다. 트레킹팀의 탐방지인 대성사(大聖寺)가 바로 그곳이다. 봉은사가 794년(신라 원성왕 10)에 연회국사에 의해 창건된 것에 비하여 대성사는 384년(백제 침류왕 1)을 그 기원으로 두고 있으니 무려 400년이나 그 시기가 앞선다. 백제가 충남 공주(웅진)로 천도를 했을 때가 475년이니 대성사는 한성 백제시기의 지어진 사찰인 것이다. 한성 백제시기에 창건된 사찰이 서울 강남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여기 대성사는 무려 1700년 전에 만들어진 사찰이에요. 한국사책에 백제가 불교를 384년에 받아들였다고 적혀있는데요 그때 만들어진 백제 최초의 사찰이에요.”

“그게 정말이에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요.”

대성사가 백제 최초의 사찰이라는 게 놀라운 게 아니고, 대성사의 존재를 잘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였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강남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도 대성사의 존재를 잘 모르셨다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 대성사

 

● 1700년 전에 창건된 백제 최초의 사찰

 

그러니 대성사에 대해서 더 알아보자. 384년에 중국 동진을 통해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로 들어온다. 이에 침류왕은 크게 환대하고 왕실에 머물게 했다. 서역과 중국 등 먼 길을 이동하느라 그랬는지 마라난타는 수토병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된다. 지금이야 편의점에서 손쉽게 생수를 사서 마실 수 있지만 예전에는 다른 지역에 가면 물이 안 맞는, 물갈이로 고생한 분들이 꽤나 많았다. 그 수토병이 물갈이다.

그렇게 수토병으로 고생을 했던 마라난타는 우면산 샘물을 마시고 치유가 된다. 이에 우면산에 초당을 짓고 수행을 하니 그곳이 바로 대성초당(大聖草堂)이 됐고, 대성사의 기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대성사에는 백제 초전법륜성지(初轉法輪聖地)라는 설명이 꼭 따라 붙는다.

이렇게 놀라울 정도의 창건 배경을 가진 대성사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면 좀 허전한 느낌이다. 가람들도 근래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왜 그럴까? 대성사에는 삼일운동 당시 불교계를 대표했던 용성 스님이 계셨던 곳이다. 독립운동에 아지트로 쓰였다는 이유로 일제는 대성사에 불을 지른 것이다. 격노할 일이다. 이후 대성사는 한국전쟁 때 또 한 번 파괴가 되는 아픔을 겪는다.

대성사를 떠나기 전에 침류왕 이야기를 첨언해본다. 불교를 공인한 침류왕은 그 유명한 근초고왕의 손자였다.

근초고왕(재위 346~375) ☞ 근구수왕(375~384) ☞ 침류왕(384~385)

침류왕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재위 기간이 겨우 1년 정도다. 약 30년 가까이 보위에 오른 할아버지 근초고왕에 비해 너무 단명했다. 이와 관련해서 토착신앙을 중시하던 기존의 귀족세력이 불교를 공인한 침류왕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설이 있다. 왕위도 침류왕의 아들이 아닌 동생이 이어받게 된다. 그가 진사왕이다.

 

* 우면산 소망탑

 

● 끝까지 안전하게 트레킹합시다!

대성사를 벗어난 트레킹팀은 이제 우면산 소망탑을 향해서 이동한다. 숲길을 따라가는 길이라 참 좋다. 참나무 숲 구간이 있는데 향이 좋아 오래 머물고 싶을 정도다. 소망탑은 산 정상부 능선에 있어 오르막길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경사도가 아니니 역사트레킹의 취지에 맞게 느릿느릿 걷다보면 어느 순간 도착해있을 것이다.

소망탑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참 시원해서 좋다. 강남의 빌딩숲은 가깝게 보이고 멀리 북한산도 선명하게 보인다. 특히 이 소망탑 전망대는 강남과 가까이에 있어 야경보기 명소 중에 하나다.

소망탑에서 내려와 다시 방배역 방면으로 내려가면 우면산 역사트레킹이 종료된다. 하지만 내려오는 발걸음을 조심하시라! 지뢰밭이 있으니까. 우면산 정상 부근에는 군 기지가 있는데 그곳을 방어하기 위해서 1000여기의 지뢰를 매설했었다.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지뢰의 효용성이 떨어지자 우면산의 지뢰도 제거가 된다. 하지만 10여기가 미확인 상태로 제거되지 못했다. 2011년도에 있었던 유명한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미확인 지뢰에 대한 공포심이 극에 달하게 됐다.

“지정된 탐방로만 다니시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여러번에 걸쳐 우면산 트레킹을 행한 필자의 의견이다. 우면산에서는 꼭 지정된 곳으로만 다니자. 재밌게 우면산 역사트레킹을 행했으니 끝까지 안전을 지켜야 하는 법! 아울러 1997년 채택된 대인지뢰금지협약에 우리나라와 북한이 동시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이참에 가입 좀 하자.

발효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남북한은 아직까지도 가입을 하지 않고 있다. 대인지뢰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잔인한 무기이다. 즐겁게 트레킹을 하는데 앞에 지뢰가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지뢰지대 표시판


■ 우면산 역사트레킹

1. 코스: 효령대군묘(청권사) ▶ 매봉재산 ▶ 대성사 ▶ 우면산소망탑 ▶ 방배역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휴식시간 포함)

4. IN: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 / OUT: 방배역 1번 출구 ☞ 우면산에서 다시 방배역으로 회귀할 수 있음.

 

 

* 우면산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5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서울 강남에 있는 우면산을 탐방했습니다. 우면산 역사트레킹을 행한 것이죠.

잠깐! 우면산이 그렇게 큰 산인가요? 뭐하느라 이틀에 걸쳐 우면산을 탐방했던 걸까요?

5월 9일 목요일에는 영등포 50플러스센터 정식 강의인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강의가 진행됐었고, 10일 금요일에는 영등포역사트레킹 커뮤니티 강의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정식 강의는 뭐고, 커뮤니티 강의는 뭐야? 헷갈리시죠? 강의를 진행하는 저도 어리둥절합니다...ㅋ 그냥 주체 형식만 달리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역사트레킹을 하고 싶은 분들은 많은데 50플러스센터에서 그걸 다 담아내지 못해서 커뮤니티라는 동아리 형식으로 보폭을 넓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정식 강의와 커뮤니티 강의는 99.9% 동일합니다. 코스도 동일하고, 해설도 동일합니다. 제가 풀어내는 아재개그도 동일합니다...ㅋ

이날도 좀 더웠습니다. 저는 늦봄트레킹을 기획했는데 갑자기 여름트레킹으로 돌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숲길이 더욱더 반가웠답니다. 사실 더운날씨에 도심지 구간을 걷는다는 건 정말 난감한 일이거든요. 자칫하면 탈진 사고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서초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우면산에도 울창한 숲길이 있답니다. 이 숲길이 꽤 괜찮거든요. 그래서인지 서울둘레길도 이 우면산 숲길을 지나간답니다.

우면산 역사트레킹은 세종대왕의 바로 윗형인 효령대군의 사당, 청권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걷다보면 백제시대에 창건된 대성사라는 사찰을 만나게됩니다. 대성사는 백제 침류왕 때인 370년대에 창건됐으니 무려 1700년 전에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서울 강남에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이 남아 있다니요! 더군다나 이 대성사의 창건주는 마라난타라는 인도 승려입니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넘쳐나는 대성사지만 막상 가보면... 좀 허전합니다. 천년 고찰이지만 천년 고찰 같지가 않은 것이죠. 이렇게 대성사가 주목을 못 받는 이유는 일제의 탄압도 한 몫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였던 용성 스님이 이 곳과 연을 맺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들어 일제가 대성사를 훼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폐허가 됐던 대성사는 한국전쟁 이후 재건이 됩니다.

사진에 나와 있는 불상은 조선 후기 작품입니다. 목불이지만 개금을 잘 해서인지 금불상 같아보이더군요.

아참! 저는 지붕에 달린 닫집이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보궁형 닫집인데... 보궁형 닫집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참가자분들도 신기하다고 감탄하시더군요.

그렇게 숲길도 걷고 문화재 탐방도 했던 우면산 역사트레킹은 잘 종료가 됐답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벌써 다음편이 궁금하신가요? 저만 궁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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