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부르짖었던 공포의 시간들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은 거짓말 같았던 순간

 

15.03.20 18:01   최종 업데이트 15.03.20 18:01

 

 

 

 

 

 

 

2013년 여름, 경남 거창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느님 살려주세요!"

 


2013년 8월의 어느 날. 필자는 경남 거창군 웅양면에서 고제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당시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고갯길에서 그만 브레이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짐을 주렁주렁 매단 고물자전거가 '빛의 속도'로 고갯길을 내달리는데 정말 아찔했다. 회전을 할 때는 반대편 중앙선을 크게 넘어갈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신을 찾으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겠는가? 한편으로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타박상 정도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참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도로 끝단에 피어나 있던 잡초들이 눈에 들어 왔다.

 


'저 잡초들 위로 바퀴를 굴리면 속도가 죽을 수도 있겠지. 흙들도 깔려 있으니 그냥 아스팔트보다는 노면이 거칠 거야'

 


신께서 가호를 베풀었던 것일까? 그렇게 잡초 더미와 거친 노면을 질주하다보니 예상대로 속도가 확 감속되었다. 또 다행이었던 것은 양편 모두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찔한 순간을 운 좋게 넘긴 셈이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그렇게 무모한 행위를 했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자전거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급경사를 내려왔단 말인가?

 

 

 



 
▲ 지리산 정렴치에서 촬영했다. 주렁주렁 짐을 많이 실었는데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자전거가 중심을 못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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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진입하니 태풍이


2011년 8월. 그때도 필자는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었다. 일명 제2차 국토종단여행. 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었다. 당시를 기록한 여행수첩에는 거의 매일 비가 왔다고 적혀있었다.

비만 맞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태풍(무위파)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았다. 분명 전북 남원에서 지리산 관통도로로 진입했을 때는 해가 쨍쨍했었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상이 나빠졌던 것이다. 비는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이 지리산을 빗겨가거나 소멸된다는 예보를 믿고 지리산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낭패를 당했던 것이다.

이미 너무 높이 올라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애초 계획했던 대로 성삼재를 찍고 전남 구례로 내려가기로 했다. 필자의 애 타는 마음도 몰라주고 더 거센 빗줄기와 더 강력한 바람이 성삼재 일대를 강타했다. 침낭은 물론  모든 옷가지는 싹 다 젖었고, 휴대하던 전자기기들도 모두 침수 피해를 입어 작동에 큰 이상이 생겼다. 몸 상태도 문제였다. 계속 거센 비바람에 노출되다 보니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빨리 쉴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구례 방면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시작한 여행이라 그랬는지 지리산 성삼재에 이르렀을 때는 자전거도 거의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싸구려 고물자전거가 한계치에 다다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계속된 비로 인해 관통도로의 노면은 무척 미끄러웠다. 그 길을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리산 관통도로는 한계령 관통도로보다 훨씬 더 험하다.

 






 
▲ 만해 한용운 충남 홍성에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관 앞에서 한 컷. 2011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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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갈 수도 저쪽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태풍이 물러갈 때까지 성삼재에 머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이 그냥 다 거짓말 같았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기로. 그런데 그때 어떻게 내려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하강을 했으니 그냥 공포스러웠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나마 성삼재로 올라오는 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차들이 반대편에서 많이 올라왔다면 필자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2013년에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그 당시에는 부처님의 자비(?)를 입었었다. 공포에 떨며 겨우겨우 도로 하단인 천은사에 도착했는데 그곳 인근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주차장 앞쪽에 빈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곳이 필자에게 쉴 곳이 되어 준 것이다. 덕분에 몸을 좀 추스를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도 비바람이 거셌는데 맑은 날은 본 건 3일 후였다.

지리산에서 태풍을 맞으며 하강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렇게 거창에서 무모하게 페달을 굴렸던 것이다. 앞선 경험이 독이 될 뻔한 경우였다.

필자의 거짓말 같았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도보여행이든 자전거여행이든 안전이 최우선이다. 목숨 걸고 여행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필자와 같이 거짓말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안전제일!


 


 

 

 

천상의 맛 '지리산 잡탕라면', 들어보셨나요?

 

준비소홀이 만들어낸 지리산 에피소드

 

 

14.09.18 19:06l최종 업데이트 14.09.18 19:06

 

 

 

 

 

 

 

 

 
 
▲ 지리산 천은사 옆 호수 지리산 천은사 옆에 있는 호수. 천은사는 전남 구례 방면에 있다. 2012년 촬영. 잡탕라면 산행 사진이 없어 2012년에 촬영한 지리산 사진들로 대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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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구역 전남 구례구역. 지리산을 탐방한 뒤 구례구역 부근에서 사진을 찍었다. 앞에 보이는 강은 섬진강이다. 2012년 백두대간 여행 당시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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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소리에 홀려 떠나다!

 


그 때도 딱 이 시기였던 것 같다. 한 낮의 뜨거움은 어느덧 사라져 가고, 선선한 바람이 따뜻한 차 한 잔을 품게 하는 계절. 한 밤 중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어디론가 불쑥 떠나고 싶은 계절.

십 몇 년 전. 필자는 귀뚜라미 소리에 혹해(?) 진짜 배낭을 메고 떠났다. 그렇게 떠난 곳은 바로 다름 아닌 지리산이었다. 그렇게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 떠난 지리산 등산여행을 내 아웃도어 활동의 시초로 삼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등산을 해왔지만 등산다운 등산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3일 동안 계속 산 중을 헤맸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요한 산행이었지만 준비는 철저하지 못했다. 준비소홀을 귀뚜라미 탓으로 돌리고 싶을 정도로 준비가 꽝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미흡한 준비 덕에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많이 생겨났다.  

 

 



 
▲ 도계 삼거리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도 경계를 가르는 도계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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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너무 우습게 봤다!

 


당시 필자는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승기를 잡을 수 없는 전쟁이었다. 매일 패배하고, 또 패배하고. 그런 전쟁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야 했다. 귀뚜라미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액션'을 취해야 했다. 어쨌든 액션은 등산으로 표출됐다. 기왕 하는 거 '빡세게' 하자며 지리산을 택했다. 험하게 산을 타다보면 내 머릿속을 흔들고 있는 번뇌들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던 것이다.

단독산행이었다. 그런 만큼 각오도 대단했다. 천왕봉 밑에서 비박을 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밤하늘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다보니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추웠다. 초가을에 동상에 걸리는 줄 알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식사였다. 준비가 안 된 산행의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짐을 가볍게 하자는 의미에서 일부러 초코바 같은 행동식만 챙겨갔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산행에 나섰지만 허기가 진 상태로 산행을 했던 것이다.

지리산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었다. 누구는 당일치기 산행에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난다는데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오르면서 초콜릿과 과자부스러기가 전부였다면 그거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그나마 먹던 초콜릿은 다 떨어지고 배낭 속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허기가 지니 기운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주 넘어지기까지 했다. 삼일 동안 산행을 한데다 여러 차례 넘어졌더니 옷은 진흙투성이였다. 갈아입을 옷이 있기 만무했다. 영락없는 지리산 노숙자였다.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탐방할 때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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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끼 정도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더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인적도 끊겼다. 멀리서 '웅~' 하고 반달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무섭지도 않았다. 그 소리를 내뱉는 반달곰이라도 잡아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배는 너무 고프고, 돈은 한 푼도 없고. 초췌한 모습으로 산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한 번씩 다 쳐다보는 것 같았다. 마치 조난자 취급하듯 그런 측은한 눈빛으로 필자를 대했다. 그런 조롱 섞인 주위 눈빛을 물리치고 벤치에 누워버렸다. 탈진 일보 직전이었다.

'지리산이고 뭐고, 그냥 누워있자! 정 안되면 산신령한테 배고프다고 하소연을 하던가!'

 

 



 

천상의 맛, 지리산 잡탕라면!

 


산 중에서 허기가 지니 망상까지 들었던 같다. 그렇게 허상에 사로잡혀 벤치에 누워 있는데 솔솔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그냥 냄새가 아니었다. 천상(?)에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너무나 맛있는 냄새였다. 혹시 지리산 산신령께서 식사를 하시고 계시나?

"야! 섞을 거 다 섞었더니 더 맛있는 거 같아!"
"역시 산에서는 잡탕라면이 최고야."
"맞아요. 집에서 먹으면 이 맛이 안 나죠."

동호인으로 보이는 성인 남자 네 명이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5~6인용 코펠에다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어 잡탕라면을 끓인 것 같았다. 라면, 참치, 햇반, 김가루, 북어... 식사 당번이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그들은 환한 미소를 띠우며 음식을 떠먹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침이 꿀꺽 넘어갔다. 발걸음이 그 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치 뭐에 홀린 듯이.

"정말 잘 먹었다. 근데 이거 많이 남았네."
"이거 여기다 버리면 안 되잖아요. 환경오염 될 텐데..."

 

 

 

 
▲ 아웃도어 음식 저렇게 푸짐한 김치는 누가 주었을까? 충남 서산을 방문했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주셨다. 빛깔도 일품. 맛도 일품이었다. 오른쪽에 있는 소시지 반찬은 필자가 만든 것이다. 2011년 국토종단 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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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남은거 좀 주세요"... 아까운 음식을 버리다니요

 

 


" 저 그거 남은 거 좀 주세요!"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이 필자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냥 들이댄 것이다. 산 중에서 허기가 져, 탈진 상태에 놓이게 됐는데 앞뒤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정신없이 먹었다. 허겁지겁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배고픈 누렁이 개 밥그릇 닥닥 긁어 먹듯이 단 한 방울의 국물조차 남김없이 먹었다. 옆에서 그 분들이 체한다고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그 소리는 그냥 소화제로 삼았다.  

 

 

 

산행 중에는 많이 먹어야 한다!


 

그 잡탕라면의 힘 때문인지 필자는 지리산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대성동 계곡쪽으로 내려왔는데 별 탈 없이 하산을 한 것이다. 하산하다 넘어지지도 않았다. 그 동호인 분들은 필자에게 음식으로'셀파'역할을 해주셨던 것이다. 어쩌면 그 잡탕라면은 지리산 산신령께서 내려주신 '천상의 음식'이었을지 모른다.


그 잡탕라면의 맛은 아직까지도 필자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평소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산해진미를 맛보았지만 아직까지도 '지리산 잡탕라면'을 뛰어넘는 음식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 그 잡탕라면이 그립다. 언젠가는 꼭 다시 한 번 그 잡탕라면을 맛보고 싶다. 그 '천상의 음식'을.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당부드릴 것이 있다. 이제 곧 있으면 단풍산행 철이라 산으로 들로 많이 나가실 것이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다.

산행에 나설 때는 충분히 식량을 챙겨야 한다. 트레킹도 마찬가지다. 좀 많다 싶을 정도로 챙겨도 상관없다. 좀 넉넉하다 싶으면 산행 중에 만난 이들과 나눠 먹으면 된다. 그렇다.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한 산행, 안전한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필자처럼 준비 없는 산행을 하면 에피소드는 많이 생성될 수는 있지만 그만큼 허기가 져서 탈진 할 수도 있다.

 

 

 


 
▲ 지리산의 한 찻집 지리산 천은사 앞 쪽에는 '이속'이라는 운치 좋은 찻집이 하나 있었다. 이속(離俗)은 속세를 떠난다는 뜻이다. 2011년에 방문했을 때 공짜로 차 대접을 받았었는데... 2012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주인장은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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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지리산 종주 같은 장거리 산행에 나설 때는 예측된 식량보다 더 챙겨가자. 비상식량으로 2~3끼 정도를 더 휴대하면 좋을 것이다.

 


2. 바로 꺼내 먹을 수 있게 행동식은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보관한다. 필자는 허리에 작은 보조가방을 메는데 그 곳에 비상용 영양바 하나를 항상 넣어두고 다닌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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