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비낭만'이 교차하는 서울성곽길

 

[서촌의 뒷산, 인왕산역사트레킹①]

 

15.06.09 16:33  최종 업데이트 15.06.09 16:33

 

 

 

 

 

 

 

 

 

▲ 낭만적인 서울성곽의 모습 활처럼 휜, C자형 구간. 뒤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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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仁王山)은 보면 볼수록 위엄이 느껴지는 산이다. 가파른 바위가 드러낸 바위색과 그 바위 사이로 가지를 뻗은 수풀들의 푸른색이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주니, 그 운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그런 인왕산을 겸재 정선은 <인왕제색도>, 강희언은 <인왕산도>를 붓끝으로 담아 표현하였다.   


호랑이가 살고 있어 무서운 곳이긴 했지만 인왕산은 예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광화문, 경복궁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의 풍광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혼자만 좋아한 게 아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트레킹을 할 정도로 좋아한다. 일명 인왕산 역사트레킹을 리딩하며, 사람들에게 인왕산의 매력을 알려줄 정도다. 인왕산역사트레킹 코스는 다음과 같다.

 


광화문 → 사직단 → 단군성전 → 수성동계곡 → 윤동주문학관 → 창의문

 


▲ 서울성곽 서울성곽 인왕산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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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은 '종묘사직'할 때, 그 '사직'이다


인왕산 역사트레킹은 사직단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신(社神)과 오곡의 신인 직신(稷神)에게 제례를 올리는 곳이다. '종묘사직'할 때 '사직'이 바로 사직단인 것이다. 농경을 중시했던 조선왕조였기에 사직단의 의미는 종묘보다 더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의 왕들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일들이 닥쳤을 때 사직단에 직접 나아가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보통 '사직'은 궁을 중심으로 서쪽, '종묘'는 동쪽에 들어선다. 실제로 사직단은 경복궁의 서편인 서촌에 위치에 있고, 종묘는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직단은 동쪽에 사신을 모시는 사단, 서쪽에는 직신을 모시는 직단이 있다. 큰 담 안에 작은 담이 둘러져 있는데, 그 작은 담은 '율'이라고 불린다. 그 율 안에 사단과 직단이 있는 것이다.

조선의 근간 중 하나였던 사직단에도 일제의 마수가 뻗치게 된다. 1911년에 사직단이 폐사됐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1922년에는 원래 부지에다 인근의 땅들을 합쳐서 공원을 만든다. 사직단을 공원화 하여 격하시켰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사직단은 아픔을 겪었다. 도시계획에 따라 신문(神門)이라고 불린 정문이 원 위치보다 14미터 뒤로 후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부지 안에 차례로 도서관, 학교, 어린이 놀이공간 등이 세워지게 된다.

 


▲ 사직제례 사직제례를 준비하는 모습. 2014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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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이 떠난(?) 예전 사직공원은 몸살을 앓았다. 취객들이 술김에 울타리를 넘어 가기도 하고, 아이들은 제단에서 씨름을 하기도 했다.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는 '부비부비'를 즐긴 남녀들도 넘쳐났다고 한다. 필자는 사직단 뒤편 신사임당, 이율곡 동상 근처에 있는 족구장과 배드민턴장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종묘에서 족구나 배드민턴을 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사직단에서는 지금 하고 있거든요. 현재 사직단은 복원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원안대로 한다면 저기 도서관이랑 어린이 시설을 철거해야 한답니다. 사직단을 종묘처럼 성역화한다면 이곳에서 족구는 못하겠죠. 그건 그렇다 쳐도 도서관이랑 어린이시설까지 철거한다면 너무 일이 커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설명을 얼버무리는 건 복원사업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탓이다. 대신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성역화를 하더라도 입장료는 받지 마세요! 지갑이 얇아서요..."

 


▲ 단군성전 사직공원 한쪽편에 있는 단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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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처럼 휘어나가는 서울성곽의 곡선미


트레킹팀은 단군성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직공원 위쪽에 자리 잡은 단군성전은 규모가 크지 않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단군성전은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규모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성전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크기가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직동의 단군성전은 우리동네 교회보다도 더 작다. 아무리 그래도 서울에 있는 단군성전이라면 일정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단군성전을 탐방할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활처럼 곡선으로 휜 성곽이 펼쳐진다. 뒤쪽으로 남산을 두고 'C자'형으로 크게 휘어나가는 서울성곽은 트레킹팀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이를 두고 필자는 이렇게 말을 했다.

"여기가 서울성곽 중 가장 곡선미가 뛰어난 구간인 듯싶습니다. 뒤쪽에 남산도 있어서 배경도 살아 있어요. 그러니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세요!"

 


 

▲ 서울성곽 성곽길을 걷고 있는 트레킹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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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지 않은 서울성곽길


서울성곽길 역사트레킹을 리딩하면서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성곽길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등산에 준하는 복장을 갖추라고 미리 공지를 했음에도 트레킹 당일날 보면, 필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참가자들이 꼭 있었다.

배낭이 없으면 백팩이라도 메고 오라고 당부했지만 옆으로 메는 가방을 들고 오는 참가자. 가급적 트레킹화를 신고 오라고 말을 해도 운동화는커녕 하이힐을 신고 오는 참가자.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필자는 이런 말을 건넨다.

"서울성곽 길은 낭만과 비낭만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성곽자체는 낭만적으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한양도성은 말 그대로 방어시설이었어요. 비탈의 경사가 급격할수록 방어력도 높아지잖아요. 그런 상식에 기초해서 성곽이 만들어졌으니 성곽길이 험할 수밖에 없답니다. 그런 곳은 비낭만적이죠."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성곽길을 낭만적인 길로 인지하고 있을까? 미디어에서 접한 모습들이 낭만적으로 묘사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기자들이 험한 구간은 직접 취재하거나 체험하지 않고, 그저 '그림'이 잘 나오는 부분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남발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필자도 자유롭지 않다. 곡선미가 사는 C자형 성곽구간을 메인 사진으로 올려 사람들의 참가를 유도했으니까. 어렵고 난이도 있는 구간은 쏙 빼놓았으니까. 낭만과 비낭만이 교차하는 성곽길을 뒤로하고 트레킹팀은 수성동 계곡으로 향했다.  

 

 


▲ 서울성곽 사진에도 보이듯 성곽길은 경사도가 꽤 된다. 계단을 계속 타고 올라가는게 무척 비낭만적이지만 성벽 넘어로 보이는 풍광들은 무척 낭만적이다. 비낭만이 있어야지 낭만이 더 돋보이는 법이다. 뒤로 보이는 산은 북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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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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