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파묻은 진실 발로 뛰며 파헤쳐
[한겨레 2006-08-25 14:54]    

 

 

[한겨레] 나는 이렇게 읽었다/<전선기자 정문태 16년간의 전쟁기록>

 

 

 

 

이 책에서 독자들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건 ‘전선기자’라는 말일 것이다. 지난 16년간 전쟁터를 누빈 정문태는 종군기자라는 통상적인 호칭을 과감히 거부하고 자신을 전선기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부분은 미군의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록이었다. 2005년 11월, 미 해병대에 의해 발생한 이라크 하디타 학살이나 최근 공개된 1950년 당시 미국 대사였던 무초의 편지글은 정문태가 기록한 민간인학살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미군의 전쟁범죄는 1950년대나 지금이나 작동방식이 같다는 말이다. 즉 무차별적인 학살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상을 잘 모른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대표적이다. 폴포트의 크메르루즈 집권시 200만명이 죽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1984년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킬링필드>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영화 <킬링필드>는 75~79년까지 집권세력인 크메르루주가 동족 200만명을 학살했다는 걸 토대로 삼았다. 그러나 정문태는 킬링필드가 69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베트남과 국경이 맞닿은 캄보디아는 당시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무려 60만명 이상이 죽었다. 미군은 네이팜탄 등과 같은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폭탄으로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폭격 임무를 안고 날아갔으나 어디에도 군사 목표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장을 공격 목표물로 삼았다.” 당시 폭격임무를 수행한 B-52폭격기의 파일럿이 오죽했으면 이런 증언을 했겠는가.

  

 

놀랍지 않은가? 우리 일반사람들 인식 속에 69~75년 기간의 1차 킬링필드는 인지조차 안 되고, 오직 2차 킬링필드에만 초점이 맞춰진 터라 미군의 전쟁범죄는 ‘내 머릿속 지우개’가 돼 버린다. 현재도 국내 언론들의 킬링필드에 대한 보도 관행은 영화 <킬링필드> 수준이다. 크메르루즈의 학살 책임을 묻는 만큼 미군의 학살책임도 짚고 넘어가야 옳은 일이 아닐까?

   

 

미군에 의한 학살은 이렇듯 무차별적이었고 미디어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면 목표물이 적대행위 대상자든 민간인이든 그건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은 어땠을까? 노근리는 단면에 불과하다. 무차별 폭격과 사격이 특정지역에서만 발생했겠는가? B-29로 융단폭격을 가한 익산역 폭격, F-86으로 공격한 단양 곡계굴 폭격, F-80으로 기총사격한 사천 조장리 난민캠프 학살…. 이 외에도 수많은 곳에서 미군학살이 발생했다. 이라크, 캄보디아, 베트남에 비해 더하면 더했다.

 

 

한국전 당시 이렇게 많은 학살이 있었음에도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미디어 ‘덕택’이다. 그런 면에서 “심지어 자신을 전장으로 보낸 언론사도 배신하고 시민 편에 서야 된다”는 말까지 하는 정문태 기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연호 기자가 90년대 내내 노근리에 대해서 알리고 또 알렸지만 눈길 한 번 안 주다가 AP 통신에 의해 노근리가 밝혀지니 그때서야 열심히 취재경쟁에 나섰던 국내 언론사들의 한심한 작태를 상기하면서 <전선기자 정문태 16년간의 전쟁기록>을 읽는다면 더욱더 감칠 맛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곽동운/자유기고가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앗! 2006년 8월에 기고한 글이네요. 곽작가, 제 사진이 저렇게 걸려 있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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