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넘은 잡지책...가, 이젠 가란 말야!

아끼던 <월간항공> 버리던 날

 

14.04.05 15:48l최종 업데이트 14.04.05 15:4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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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항공 20년도 더 지난 비행기 잡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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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헤어질 때가 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년이란 시간을 함께했으니 이제는 떠나보낼 때가 된 것이다. 헤어질 때는 냉정해지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그런 독한 놈이 되는 거야!

"이제 넌 나한테 필요 없어. 가란 말야! 떠나버리라고!!!"

 

 


책벌레들의 커다란 고통: 책 버리기

예전에 지인분이 쓰신, 책과 관련된 에세이를 본 적이 있다. 책과 관련된 에세이라, 얼핏 '독서 예찬'과 같은 통상적인 주제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책장에 가득한 책들 중에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남겨둘지에 대한 단상들을 풀어낸 글이었다.

책벌레들에게 책을 버리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책을 쌓아둘 곳은 한정되어 있기에 어쩔 수없이 책을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킬 수가 없듯이 모든 것들을 다 담아둘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 분 말에 의하면 잡지책이나 소설류들을 버리는 데는 큰 고민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전공서적이나 학술서적 코너에 들어서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것이다. 처분을 해야겠는데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한편 에세이들 중에서도 저자 사인이 적혀 있는 것들은 쉽게 처분 대상에 올리지 못해 곤혹스럽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사실 그 지인 분은 대학교수다. 그래서 그 분의 서재는 일반적인 독서인들의 서재와는 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독서인이든 대학교수든 책을 버리는 순서는 비슷해 보인다. 처분 일순위로 잡지가 지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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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항공 오른쪽은 1991년 5월호다. 노태우 정권 때 진행된, KFP 사업에 선정됐던 F-16에 대한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놓았다. F-15K를 넘어 이제 F-35가 우리공군에 차세대 전투기로 쓰일 예정이라 사진이 무척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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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순위로 지목된 잡지를 필자는 20년이 넘게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최근 10년 동안은 단 한 번도 펴보지 않고 그냥 그대로 한쪽 구석에 잘 모셔두었다. 그러다보니 10년치 먼지가 그대로 쌓이게 됐고 그 뒷면은 바퀴벌레 등의 좋은 안식처가 됐다.

 



'비행'소년의 욕구를 받아주었던 <월간항공>

그 잡지들은 <한겨레21>이나 <창작과 비평>같은 유명한 시사, 문예잡지가 아니었다. <월간항공>이라는 비행기 잡지였다. <월간항공>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에 창간된 잡지로 우주항공 분야의 전문지로 탄생했다. 지금이야 자동차, 아웃도어, 뷰티, IT 등등 각양각색 다양한 분야의 잡지가 발간되어 세세한 정보들을 독자들에게 실어 나르고 있지만 1989년 당시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지난 지 겨우 2년 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이라 그랬는지 아직 세상은 다양한 욕구를 담아낼 그릇들이 준비되지 않았었다. 영화잡지인 <씨네21>이 1995년에 창간됐듯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욕망들이 본격적으로 잡지형식의 매체로 투영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이후부터였다.

그런 의미로 <월간항공>의 등장은 상당히 신선했다. 당시는 인천공항도 없었고, 비행기 여행도 일반적이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멋진 비행기 사진이 걸린 <월간항공>를 보고 있던 필자의 마음은 크게 요동쳤다. 이미 옆구리에서 날개가 뻗어져 나와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필자도 한 때는 '비행'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왔던 이카로스처럼 크게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고 싶었던 '비행'소년이었다. 

그런 '비행' 소년의 욕구를 <월간항공>이라는 잡지가 채워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욕구'들이 쉽게 채워지지는 않았다. 잡지 내용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의 지식으로는 <월간항공>의 전문 용어들을 이해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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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항공 20년도 넘게 집에 있다보니 먼지도 많이 쌓이고, 때도 많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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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문제였다. 하긴 당시 고등학생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헌책방 투어에 나섰다. 어차피 속보성을 획득하려고 비행기 잡지를 구매했던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 헌책방에서 비행기 잡지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인아저씨가 '그런 잡지도 있냐?'고 반문할 때도 많았다. 어렵게 구한 잡지들도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한 쪽 면이 찢어져 있거나 라면국물이 묻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심지어 곰팡이까지 피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비행기가 있던 자리

그렇게 어렵게 사 모으고, 애지중지하게 모셔두었던 그 비행기 잡지들을 얼마 전 떠나보냈던 것이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잡지들은 이미 정보성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현재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우뚝 선, 인천공항의 착공식을 소개하고 있는 20년 전의 잡지라면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또한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된 F-16(노태우 정권 때 있은 KFP 차세대 전투기 사업 기종으로 당시 F-16이 선정됨)'에 대한 기사를 담은 잡지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F-15K를 넘어 F-35가 우리 공군에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 잡지들이 자리 잡고 있어 새로운 책들이 들어올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곤혹스러기도 했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새롭게 들어올 책들은 줄을 서야 했기 때문이다.

1차로 몇 권의 <월간항공>을 버렸던 날, 20년 전의 일들이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들을 찾아 동분서주 하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던 일, 헌책들의 뭉치 속에 파묻힌 잡지를 끄집어내다 책탑을 쓰러뜨려 주인장에게 엄청 혼났던 일 등등. 그런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순간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이제 넌 나한테 필요 없어. 가란 말야. 떠나버리라고! 20년도 넘게 있었으면 이제 갈 때가 됐잖아!"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올라 날개가 녹아내린 이카로스처럼 필자의 마음속에서 펄럭이던 날개도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굿바이 비행소년!'

 

 

 

 

*관촉사 은진미륵: 비행기 잡지가 떠난 자리에는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역사트레킹 마스터를 하려면 방대한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을 '마스터'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4월에 찍은 사진이다.

 

 

 


그렇게 비행기 잡지가 있던 공간에는 이제 새로운 것들이 들어와 그 곳을 메우고 있다. 역사책과 미학책들이 빠르게 그 자리를 치고 들어왔던 것이다. 마치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비행기'가 빠진 공간에 '정약용 선생'과 '마애석불'이 떡 하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자리 잡은 역사책과 미학책들을 자양분 삼아 필자는 역사트레킹을 진행한다. 한마디로 '비행기가 있던 자리'에 '역사트레킹'이 들어온 것이다.

봄날이라서 그런가? 요즘은 새롭게 다시 날개가 돋아나는 것 같다. 아름다운 봄꽃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미 마음은 산과 들에 가 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읊조리며 트레킹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날개가 한 번 꺾여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왜? 새로운 날개가 생기니까!

*추신: 최근 발생한 무인기에 의한 청와대 촬영 사건으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다. 청와대의 방공망이 뚫렸다고 여론이 매섭게 질책을 한다. 그런데 정부가 정국 수습용으로 꺼내든 카드가 무척 당혹스럽다. 바로 모형비행기 동호회에 대한 규제이기 때문이다. 뚱딴지같이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튄 것이다.

북한에서 '인간어뢰'나 '로봇물고기'로 우리 해역을 침범을 한다면 해녀나 스쿠버 다이버들에 대해서 규제를 내릴 텐가? 무인기에 의한 방공망 침범이 있다면 무인기를 무력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뚱딴지같이 애꿎은 동호회에 대해 규제의 덫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께서 연일 '규제 완화'에 대해 역설하는 판에 규제의 덫을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역설적인 일이니까!    

 

 

 

*** 오마이뉴스에 '비행기가 있던 자리'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그나저나 분명히 제가 송고할 때는 맨 마지막 사진인, 은진미륵 사진을 같이 송고했는데 지금보니 발행된 기사에서는 사진이 누락됐네요. 일부러 은진미륵에 대한 사진을 넣어 비행기에서 역사트레킹으로 넘어갔다는 걸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게 오마이의 한계인가??? 좀 거시기하네~~~ㅋㅋㅋ
제 블로그에 담긴 송고본과 오마이뉴스의 발행본을 비교해 보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제 송고본에는 있는 은진미륵 사진이 발행본에는 없어졌고, 그래서 글의 완성도가 감소됐다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발행본 바로가기 http://omn.kr/7p74

 

 

 

 

 

 

* 월간항공: 20년도 더 지난 비행기 잡지들.

 

 

 

 

 

* 월간항공: 오른쪽은 1991년 5월호다. 노태우 정권 때 진행된, KFP 사업에 선정됐던 F-16에 대한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놓았다.

F-15K를 넘어 이제 F-35가 우리공군에 차세대 전투기로 쓰일 예정이라 이 사진이 무척 낯설다.

 

 

 

 

얼마전 2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월간항공>이란 비행기잡지 몇 권을 버렸습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했답니다. '비행기가 있던 자리'라는 제목으로... 위 사진들은 그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들입니다. 딱 봐도 중고품처럼 보이죠?

 

20년 넘게 제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녀석들인데 떠나 보낸다니... 한편으로는 참 아쉬움이 컸답니다. 그러고보면 오래된 물건에는 그 주인의 혼이 스며든다는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잡지들을 버리면서 제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무언가 허전한 감이 밀려오더군요~!

 

 

 

 

 

* 비행기잡지: 20년도 넘게 집에 있다보니 먼지도 많이 쌓이고, 때도 많이 탔다.

 

 

 

 

 

* 인천공항: 인천공항을 탐방했을 때의 모습. 2014년 2월에 찍은 사진이다.

 

 

 

 

 

 

 

*관촉사 은진미륵: 비행기 잡지가 떠난 자리에는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역사트레킹 마스터를 하려면 방대한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을 '마스터'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4월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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