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내가 미술관에서 느낀 평화

 

 

 

 

[오마이뉴스 곽동운 기자]친구! 자네는 미술관을 자주 찾는가?

 

아니, 이렇게 물어보는 게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르지. 자네도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 아닌가. 더군다나 미술에 대해서는 나처럼 문외한이니깐.  미술관에서는 누구나 강한 동질성을 강요받는다고 할 수 있지. 현대 미술의 추상성은 일반인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거든. 뜻 모를 형상을 그려놓고, 예술 작품이라고 걸어놓았으니, 나 같이 미술에 몽매한 사람들은 곤혹스러울 밖에.

 

어쩌면 난해한 추상성으로 가득한 미술작품에서 내 자신과 일맥상통하는 동질성을 찾는다는 건 매우 가혹한 일일지도 몰라. 그 곤란함을 겪으면서도 미술작품 앞에 서는 건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운명이겠지.

 

 

그러나 그런 추상성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결국에 그 작품들이 동질성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쾌감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네.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내듯 난해함이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맛이란! 그런 면에서 미술관에서 받는 강요는 매우 유쾌한 강요라고 할 수 있지. 그 맛을 느끼려고 미술관을 찾는 거고.

 

 

▲ 안젤름 키퍼, <영리한 소녀들>(1996)
ⓒ2004 곽동운

 

 

 

 

그런데 여기 동질성의 강요를 덜 받는 전시회가 하나 있네. 물론 난해한 작품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타 전시회들에서 밟는 단계들이 몇 개로 줄어들었으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 그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은 내 자신과 거의 완벽할 정도로 코드가 일치하더군. 바로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 미술가>(이하 평화선언) 전시회가 그것이라네.

 

물론 내 자신 속에서 꿈틀거리는 평화의 의미와 해당 작품이 담지하고 있는 평화가 꼭 동등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서 평화선언 몇몇 작품들도 내게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더군. 나와 작가가 느끼는 평화를 바라보는 시각차이라고 정리하는 게 좋을 듯싶네.

사실 평화선언은 7월 31일부터 전시되었더군. 이번 달 15일에 다녀왔으니, 나도 무척 늦게 다녀온 셈이지. 뒷이야기를 보려고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10월 24일까지 2주간 연장 전시를 한다더군.

 

 

평화선언은 크게 3분야로 전시를 해. 1번 테마는 전쟁의 잔혹성, 2번 테마는 우리 민족이 처한 분단의 고통, 일상적 폭력과 억압을 다루었고, 3번 테마는 평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한다고 안내를 하더군.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1, 2, 3의 큰 차이는 없어 보였어. 아니, 이 코너에서 저 코너로 발걸음은 옮기고 있었지만, 작품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와 감흥은 하나였지. '전쟁반대! 우리에게 평화를!' 'No War! We want Peace!' 자네도 똑같았을 감정이었을 걸.

 

보도에 의하면 평화선언은 약 1년여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더군. 국내 작가들은 둘째치고 53명의 해외작가들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 어쩌면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들은 한 가지 교훈을 얻었을 거라 생각하네.

 

 

평화의 힘을 모으는 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이 축나는 일이지만 그만큼 복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수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가고 언론매체에서도 호평을 쏟아냈고, 결국 연장 전시까지 하게 됐으니 말이야.

 

앞에서 말했듯이 평화선언에 전시된 160여점의 작품들 모두가 내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 내 정신을 순간 멍하게 할 정도로 느낌이 확 다가오는 몇 몇 작품이 있었네.

 

 

그 중 하나가 설치미술가 임옥상의 <철의 꿈>(2001)이었다네. 매향리 사격장에서 주워 모은 불발탄에 숟가락과 포크를 엮어 독수리의 형상을 만들어낸 임옥상의 빼어난 작품성이 돋보였어. 그 불발탄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인살상용 클러스터 폭탄과 대전차용 폭탄이었어. 죽음과 파괴로 그 쓰임새가 명확한 물건들을 가지고 비상하는 독수리의 형상을 나타냈다는 게 정말 기막히지 않은가?

 

 

▲ 시아 시아오 롱, <남경대학살>, 2004
ⓒ2004 곽동운

 

 

 

 

폭탄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작품도 꼭 짚고 넘어가야겠군. 강요배의 <스텔스-부메랑>(2004년)은 이라크 침공에서 모티브를 얻었더군. 평화선언의 많은 작품들이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겠지.

 

 

강요배는 초승달을 머리 위에 두고 비행하는 스텔스기를 그렸지. 그 초승달이 마치 부메랑처럼 보이더군. 초승달을 보며 거대한 초승달 지역의 하나인 이라크로 폭격 임무를 떠나는 미군 조종사와 그 초승달을 지켜보며 신의 가호를 비는 이라크 주민들의 모습이 동시에 떠오르더군.

 

어쩌면 강요배의 의도는 적중했는지 몰라.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지>는 현재 이라크에서는 '세컨드 워(Second War)'가 진행 중이라고 했고, 미군 전사자가 이미 1000명을 넘어섰다고 하지 않은가. 미국은 부메랑을 맞은 거야. 이미 이라크는 제2의 베트남이 되었다고 여겨진다네.

 

 

스텔스 폭격기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네. 아니 씁쓸한 이야기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군. 1999년 코소보 내전 당시였어. 미 본토 미주리 주에서 출격한 B-2A 스텔스 폭격기가 옛 유고연방까지 원정 폭격을 하고, 다시 기지로 귀환했다네.

 

폭격기 조종사는 전쟁 중에 출퇴근을 한 셈이지. 대서양을 건너 전쟁을 치르고 온 셈인데 무심한 아내는 퇴근하고 온 조종사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다고 하지 않나.

 

 

무기가 최첨단으로 발전되면 될수록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자기 눈앞에서 적이 쓰러지는 '낭만적인' 전쟁은 사라지는 듯싶네. 어둠이 깔린 만 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다시 바다 건너 퇴근하는 폭격기 조종사가 전쟁의 광기에 대해서 자각을 갖는다는 건 힘든 일일 테지.

 

 

마지막으로 안젤름 키퍼의 <영리한 소녀들>(1996)이라는 작품을 이야기하려 하네. 그 그림은 사전 설명이 좀 필요한 작품이야. 얼핏 보면 해바라기 사이에 벌거벗은 노인이 한 명 서 있는 시시한 그림이거든. 그런데 그 이면을 보면 내용이 달라진다네.

 

세르비아 내전 당시 강제 징집으로 마을 젊은 남자들이 모두 다 전쟁터로 갔는데, 전쟁이 길어져 징집도 계속됐다더군. 마을 남자들 씨가 마를 정도였는데도 징집은 계속되었고, 그림 속에 노인도 그냥 집에 있었으면 징집됐을 테지. 그래서 영리한 소녀들이 징집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할아버지를 해바라기 밭에 데려다 놓았다지 뭔가. 믿어지지 않지만 실화라네.

 

 

▲ 평화에 대한 염원이 쓰여진 종이로 만든 장식물. 마치 인디언들이 주술 의식에 쓰이는 장식 같기도 하다.
ⓒ2004 곽동운

 

 

 

 

친구!

 

 

20일에 자이툰 부대 본대가 주둔지 아르빌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더군. 무려 1100㎞의 거리를 어둠을 이용하여 이동했다고 하니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지. 그 무더위 속에서 사막을 종단했다고 생각해 보게나.

 

그러나 난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하나, 라는 생각뿐이라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스스로 수천억이나 되는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전투병을 파병하다니! 또 평화재건 부대가 가는데, 왜 미군의 공격헬기와 전투기의 호위를 받느냐 이 말이야. 그래 이 정도로 하자고. 말을 하면서 내가 화를 내는군.

 

 

이제 추석연휴가 지나면 추위가 성큼 더 다가오겠지. 친구! 깊어가는 가을에 전시회장 한 번 찾아가는 게 어떤가? 유쾌한 동질성의 강요를 받아보는 건 삶의 여유를 이끌 수 있지 않겠나. '평화선언'을 관람하고 자네가 가지고 있는 평화사상과 내가 가진 평화사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을 거야.

 

 

난 사람들 개개인이 모두 다 다른 평화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겠지.

 

친구! 다음에 또 편지 쓰지. 잘 지내게나. 추석연휴 잘 보내고.

/곽동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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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이 기사는 무려 8년 전에 작성된 것이네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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