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서 만난 목사님, '전두환 코드'로 통했네

[중부내륙자전거여행②] 춘천에서 만난 센스쟁이 목사님

13.11.25 10:17l최종 업데이트 13.11.25 10:57l
         
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홍천→횡성→영월→충북 단양→제천→경북 문경→경남 거창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여행 1일째 : 2013년 8월 15일

용산역에서 ITX 열차를 탄 후, 한 1시간 가량을 달려 남춘천역에서 하차했다. 북한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춘천까지 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편하게 ITX로 이동을 했다. 일명 '청춘열차'라고도 불리는 ITX는 영업 속도가 시속 180km에 이른다. KTX 다음으로 쾌속 질주를 한다.

 



# ITX와 동서고속철도

경춘선의 복선화와 그에 따른 전철화로 '춘천 가는 기차'식의 낭만이 많이 사그라진 게 사실이다. 복선화 이후 터널이 많아져 창문 밖 경치 구경도 '끊김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복선화가 경춘선의 신비감을 떨어뜨렸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나도 일정 정도 그 푸념에 동의를 한다. 분명 단선일 때, 경춘선은 터널도 적었고, 역사(驛舍)도 아담했다. 옛 김유정역 같은 경우는 아담하다 못해 앙증맞을 정도였다.  

그런 시각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낭만을 따지기에는 강원도 지역의 SOC(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단선철도 시절,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거리가 80km 정도인 춘천까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가 약 90km 정도이고 무궁화호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춘천까지 얼마나 거북이 걸음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이 이런 상황인데 다른 곳은 어땠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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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X ITX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칸이 있다. 그나저나 왼쪽에 있는 자전거와 필자의 자전거가 너무 비교된다. 필자의 자전거는 뒤태가 너무 구리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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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역사에 들어선 장애인, 노약자 편의 시설들은 기존의 옛 역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철도 건널목을 건너듯 맞은편 플랫폼으로 이동을 해야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이 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야 철로를 건너 맞은편으로 느긋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횡단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맥락에서 나는 춘천에서 속초까지 이어지는 동서고속철도를 찬성한다. 동서고속철도는 강원도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으로, 선거철만 되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거의 30년 동안이나. 이렇게 오랫동안 동서고속철도가 활로를 찾지 못했던 건, 이 사업이 경제 타당성이 낮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악산이 수도권의 '외곽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원도 지역은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수도권과의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간의 동서고속화철도에 대한 박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낡은 경제 방식이지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현상을 경춘선 복선화와 중앙선(용산-용문) 전철화로 확인을 이미 한 바 있다.

북한-중국-러시아를 잇는 환동해권 물류 '파이프라인'으로도 동서고속화철도가 이용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선적된 물류들이 속초항을 거쳐 수도권으로 직접 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북 교류뿐 아니라 극동아시아 물류 운송 등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동서고속화철도를 찬성하지만 그건 조건부다. 백두대간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조건 말이다. 허울뿐이지만 그래도 필자가 명색이 역사트레킹 마스터인데 백두대간이 다치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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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랭이논 다랭이논은 경작지가 협소한 산촌이나 섬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남해군, 청산도, 지리산에 있는 다랭이논들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 다랭이 논은 좀 규모가 작지만 경작구간과 비경작구간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춘천에서 홍천으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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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님 같은 목사님


남춘천역에 하차했을 때가 오후 6시께였으니 많이 달려봐야 2시간 정도를 주행할 수 있을 터. 애초 첫날 계획은 춘천 시내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벗어나 홍천 부근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춘천의 도심부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보다는 군이나 읍 단위가 야영하기에 더 느긋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 자전거가 '거북이'였다는 것이다. 180km가 아니라 그저 시속 18km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 텐데... 현실은 8km였다. 그나마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보다 끌고 가는게 더 많았다. 그리고 춘천-홍천 간에는 왜 그리 고개들이 많던지!

결국 야간주행을 하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고심이 앞섰다. 통상 3일 정도는 페달을 굴려줘야 다리가 풀리는데 아직 다리가 덜 풀린 상태에서 행하는 야간주행이었기 때문이다. 갓길이 거의 없는 도로 사정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공친 거 같다. 빨리 마을회관 같은데 가서 텐트나 쳐야겠어!'

당시 나는 제대로 공을 쳤다. 농로길로 들어섰다 공동묘지로 빠져나왔고 논두렁에 자전거가 엎어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야간주행이라 적응이 안됐던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다. 그저 하룻밤 캠핑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적시해 줄 그런 고마운 손길.

"실례하지만 이 동네 이장님이세요?"
"아니에요. 저는 저쪽에 있는 교회 목사예요."
"예... 아... 그러세요."

영락없는 동네 이장님 같은 분이셨는데 교회 목사님이란다.

"오늘은 손님들이 많네."
"손님이요?"
"좀 전에도 대안학교 학생들이 도보 순례를 한다고 왔어요. 숙소가 없다고 해서 우리교회 1층에 자리를 마련해 줬어요."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분은 춘천시 동산면에서 교회 사역을 담당하고 계신, 전 목사님이셨다.

"텐트 칠 자리가 필요하다고요? 우리 교회에 앞마당이 있는데..."
"그건 제가 좀 불편하고요. 저기 마을회관 앞에다 텐트를 좀 칠게요."
"여기는 바로 앞에 차들이 다녀서 좀 정신없을 텐데요."
"그게 좀 걸리긴 하네요."
"그럼 제가 차를 앞쪽에다 댈게요. 그럼 차가 방패막이 역할을 할테니까."
"그럼 저야 감사하죠. 앞이 뻥 뚫린 것보다 훨씬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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