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센 눈꽃산행: 뜻하지 않게 일본에서,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 산행을 했다.

 

 

 

 

▲ 다이센의 설국: 산 중턱 부근에 오르자 저렇게 설국(雪國)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겨울 눈꽃 산행을 제대로 해보았다.

 

 

 

 

# 겨울산행은 만만치가 않아!

 

하지만 필자도 한 가지 고민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겨울산행인데, 그에 걸맞은 장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 흔한 스틱도 안 챙겨왔고,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 그냥 트래킹화를 신고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행 진입로를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그렇게 미끄러울 것 같지 않았고 쿠션감도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충 지형을 파악해보니 특별히 난코스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까짓것 아웃도어맨이 어디를 못 가겠는가? 낙엽 쌓인 산길을 사뿐히 갔다가 내려오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리고 하산하면 상금이 기다리고 있는데. 푸하하!'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일정 정도 고도에 이르자 눈길이 시작됐다. 난 좀 당황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겨울 산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리! 세상의 모든 일들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예상외의 난관들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고도가 높아질수록 적설량도 많아졌다. 눈이 발목 이상으로 쌓여 있던 것이다. 덕분에 내 바지 밑단은 다 젖어있었다. 계속 나아가다보니 아예 눈 속에 발이 푹푹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날 비가 내렸는지 어떤 곳은 물웅덩이도 있었다. 눈길에 빠져, 물웅덩이에 빠져, 진흙탕에 빠져... 내 바지는 아주 거지꼴이 되어 갔다.

 

산길을 오르면 오를수록 세상은 새하얀 설국(雪國)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이 흰색으로 변해갈수록 상금에 대한 생각도 서서히 희석되어 갔다. 이미 페이스 조절은 실패했고 선두권과의 격차도 상당히 벌어진 상태였다.

 

 

 

 

 

▲ 미즈키시게로 로드: 돗도리현 미즈키시게로 거리에서 만난 일본 처자들. 이 거리는 요괴만화로 유명한 미즈키시게로 화백의 작품에 등장한 요괴들을 형상화한 거리다. 미즈키시게로 로드에는 총 134개의 요괴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이센을 등반 하기 전에 잠깐 그 곳을 방문했었다. 그나저나 저 요괴들은 무섭기보다는 우수꽝스럽다. 사람을 혼비백산 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이 사람들한테 놀라서 줄행랑을 칠 거 같다. 

 

 

 

 

 

 

▲ 외눈박이 요괴: 미즈키시게로 로드에서 만난 외눈박이 요괴. 역시 이 요괴도 무섭기보다는 좀 우수꽝스럽다

 

 

 

 

 

 

 

# 상금을 포기하니, 설국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아니 벌써 반환점 찍고 내려오시는 거예요?"

"예. 쫌만 올라가면 반환점이에요. 고생하세요."

 

1등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마치 산악마라톤을 하듯 쏜살같이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얼마 안 남 았어요. 고생하세요."

 

2등 권으로 보이는 분들이 재빨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분들도 산악 마라톤 하는 것처럼 빠른 스피드로 하산을 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시네. 저런 분들을 어떻게 이겨!'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나는 그 분들에 비하면 아주 세 발의 피였던 것이다. 선두권 분들이 대여섯 명이었으니까 이미 상금은 물 건너 간 셈이었다.  울고 싶은데 빰 때려준 격이라고, 나는 그 분들이 미운 게 아니라 아주 고마웠다. 상금에 대한 생각을 싹 다 정리를 해주셨으니까. 그렇게 상금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니 제대로 겨울 눈꽃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진짜 느긋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에 멈춰 서서 사진도 찍고, 꼬마 눈사람도 만들며 느릿느릿하게 산행을 했다. 느리게 산행을 하다 보니 더 많은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더 즐겁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상금도 좋지만 산행이 목적이라면 빠름보다는 느림이 더 알찬 산행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등반대회가 끝나고 난 후에 대충 필자 나름대로 등수를 매겨보았다. 다행히 난 중간 순위 정도에 들었다. 맨 마지막으로 출발을 했고, 겨울산행 장비도 갖추지 않은 것치고는 나름대로 선전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의 다이센 등반대회는 무사히 종료가 됐다. 참가상으로 만족을 해야 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다. 자연 앞에 겸손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격언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려보았던 산행이었으니까.

 

 

 

 

 

 

 

 

 * 요괴들: 이 녀석들도 별로 변변치가 않은 듯~ㅋ

 

 

 

 

▲ 우리나라 도깨비: 아무리 미즈키시게로 화백의 요괴들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난 이 도깨비 녀석들이 더 좋다.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려 있는 도깨비들.

 

 

 

 

 

 

 

 

 

▲ 다이센 등산로: 등산로 입구에는 저렇게 낙엽이 쌓여 있었다.

 

 

 

 

 

 

▲ 일본의 순시선: 앗! 일본의 순시선이다. 혹시 저 배도 우리의 독도 인근에 출몰 한 적이 있었을까?

돗도리현의 서쪽은 시마네현이다. '다케시마'의 날로 유명한 그 시마네현이다.

 

 

 

 

 

# 14시간동안의 기나긴 항해

 

나는 느긋해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재빠르게 계산기를 작동시켰다.

 

'등반대회에서 1등을 하면 50만원 주니까, 그 돈으로 여행 경비를 충당하면 되겠군. 남는 돈으로는 돼지고기 사 먹어야지!'

 

이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건 내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명색이 아웃도어 여행가인데 등반대회 1등 하나 못 하겠는가! 5600Km짜리 무동력 여행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내가 아니면 누가 1등상을 받겠는가! 이렇게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여행도 하고, 상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강원도 동해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에서 DBS호를 타면 일본 돗도리현 사카이미코항에 갈 수 있다. 동해항-사카이미나코항 항로는 450Km에 달하는데, 그 거리를 DBS호는 14시동안 달린다. 비행기로 한 두 시간 정도면 닿을 거리를 14시간을 달리니 만만치 않은 항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재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둠 속에서 한 점의 빛을 점멸하는 고기잡이배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면, 자연스럽게 '로맨틱'하고 '센티멘털'한 감정이 스며들게 된다. 야간에 설악산 대청봉 부근 산행을 하시다 동해바다에 떠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들을 보신 분들은 필자의 감정을 잘 이해하실 것이다.

 

그렇게 선상에서 로맨틱한 감정이 돋우어지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놀이가 하나 있다. 바로 '타이타닉' 놀이다. 안 그래도 그날 '타이타닉' 놀이에 흠뻑 빠져있던 커플이 하나 있었다. 아랫배가 출렁거리는 어떤 남자가 디카프리오 흉내를 내며 포즈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포즈는 상당히 어색했다. 애초 의도는 영화 타이타닉이었지만 그 결과물은 <코미디빅리그>처럼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포즈였다.

 

 

 

 

 

 

 

 

▲ DBS호의 항로: DBS호는 우리나라 동해항을 기점으로 일본 돗도리현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정기적으로 운항한다.

일본 사카이미나코항에서 찍은 사진이라서 그런지, 일본을 우리나라보다 위쪽으로 올려놓았다. 우리가 보는 통상적인 동아시아 지도가 아니었다.

 

 

 

 

 

▲ DBS호의 항로: 사진편집기를 이용하여 사진을 돌려봤다. 사실 이게 더 눈에 잘 들어온다.

 

 

 

 

 

 

# 등반대회 1등은 나의 것이다!

 

내가 그렇게 긴 항해를 감내하며, 돗도리현에 갔던 이유는 '다이센(大山) 등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등반대회는 지난 11월 24일에 개최됐었다. 다이센은 일본인들이 가장 등반하고 싶어 하는 산들 중에서 세 번째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 선호도가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듯, 다이센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멀리서 다이센을 보면 마치 후지산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현지인들은 다이센을 후지산의 '짝퉁'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 나는 <아름다운 도보여행>이라는 도보여행 카페 회원분들을 비롯한 여러 산악인들과 함께 다이센 산행에 나섰다.

 

다이센은 일본 혼슈의 서쪽 주고쿠 산지의 핵심을 이루는 산이다. 다이센은 해발 1729m로 우리나라의 설악산(1708미터)와 비슷한 높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난 좀 더 느긋해졌다. 10년 전, 지리산 천왕봉 근처에서 홀로 침낭 깔고 잠을 잤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1915미터인데, 그 보다 작은 산이라면... 푸하하! 1등은 내 것이다!'

 

한국산이든 일본산이든 자연 앞에 겸손하라고 하는데 나는 상금에 눈이 멀어 '시건방'을 떨었던 것이다. 또 얼마나 등반대회를 우습게 봤는지 맨 마지막으로 산길에 진입을 했다. 한 사람이 겨우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다이센의 등산로는 아주 좁았다. 하지만 난 곧바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등산로 입구에서 관계자와 잡담도 하고, 노상방뇨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맨 마지막으로 등산로에 진입했던 것이다. 대신 뒤에서 대회 참가자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음... 내가 여기서 젊은 축에 속하는군. 페이스 유지하다가 중간 부분에서 확 치고 나가면 되겠군!'

 

 

 

 

 

 

 

 

 

 

 

 

 

 ▲ 미즈키시게로 로드: 돗도리현 미즈키시게로 거리에서 만난 일본 처자들. 보아하니 이 분들도 다른 지역에서 돗도리현으로 탐방을 온 것 같습니다. 온천에서 만난 마주친 분들이 아니니 절대 오해하시지 말기를~ㅋ 그나저나 저 요괴들이 무척 재밌네요.

무섭기보다는 우수꽝스럽다고 해야 하나?

 

 

 

---> 1편에 이어서

 

 

 

한국에서는 아무리 나이가 어린 여아들이라고 해도 아빠의 손을 잡고 남탕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난 아웃도어 여행가라 전국 각지의 목욕탕과 찜질방을 두루 다녀봤지만 여아가 남탕에 들어온 경우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빈번하다.

나이 어린 남아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여탕에 가는 일은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나름대로 필자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몸이 노곤한 상태에서 그런 광경을 목격했으니 더욱더 그럴 수밖에.

난 온천욕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어떤 여아가 툭 튀어 나오더니 내 허벅다리를 붙잡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난 뒷걸음을 치다 그만 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사고'를 유발시킨 여아는 '카와이'라는 말을 남기고, 또 신나게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카와이? 일본말로 귀엽다는 말인데, 도대체 뭐가 귀엽다는 것인가? 나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었나?

그렇게 일본 꼬마숙녀의 '습격'을 받은 후, 나는 라커룸으로 향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난 수건을 마련하지 않았기에, 좀 곤혹스러운 처지였다. 기념품으로 받은 손수건으로 몸을 닦아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눈을 맞았는지 손수건도 젖어 있었다. 기왕 그렇게 된 거, 난 탕 입구 쪽에서 뜀뛰기를 하며 물기를 털어내기로 했다. 현지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난 개의치 않고 열심히 뜀뛰기를 했다.

그런데 그때 평상복 차림으로 라커룸을 정리하시는 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60대로 보이는 분이었는데 물기에 젖은 깔판들을 교체하고 있었다. 그 분도 나를 봤을 것이다. 욕탕 앞에서 혼자 폴짝폴짝 뛰고 있는데 그걸 못 봤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슬며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남자가 아닌 것 같은데…."

 

 

 

* 고토부기성의 떡집 아저씨: 고토부기성은 돗도리현 서부 방면 관문에 있는 과자의 성입니다. 고토부기성이라고 무슨 역사유적이 아니고 과자의 성이라는 것이지요. 그 곳에는 일본 전통 방식의 과자가 제조,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시식코너도 있었고요.

저도 시식코너를 잘 활용했답니다. 그나저나 저 아저씨는 일본아저씨가 아니라 왕서방 같어~ㅋ

 

 

 

 


내 시력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 분명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다시 나는 혼동에 휩싸였다. 그래서 현지 남성들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현지인들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 라커룸 관리원이 자기 주위에 있든 말든 각자 자신의 일을 하기에 바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나만 괜히 혼자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정신을 가다듬고 내 할 일을 했다. 말린 건 말려야 했기 때문이다. 뜀뛰기로 대충 몸에 있는 물기는 제거가 됐으나 머리는 젖어 있었다. 그래서 헤어드라이기 앞에 가서 전원을 켰다. 그런데 작동을 안 하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30엔 하는 동전을 넣어야 작동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속으로 욕에 욕을 해대며, 동전을 찾아다 헤어드라이기를 이용했다. 나는 30엔 이상으로 '뽕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헤어드라이기를 온 몸에 들이댔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 라커룸 관리자였다. 그 분은 내게 손수건을 하나 내밀었다. 그 손수건은 내 것이었다. 동전을 가지고 갈 때 흘렸던 것 같았다. 그 때 자세히 봤는데 그 분은 확실히 남자가 아니었다. 골격이나 체형을 보나 확실히 여자였다. 그 분은 아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순간 내 몸을 다 봤을 것이다.

난 좀 억울했다. 뭐 똥배도 있고, 울퉁불퉁한 몸매지만 그래도 소중한 내 몸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쩌다 처음 보는 일본 아줌마 앞에서 몸을 다 노출시키게 됐단 말인가!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나름대로 '대범하게' 복수할 생각을 했다. 그것이 무엇이냐? 볼 테면 봐라, 하는 식으로 당당하게 그 아줌마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경을 찾아 쓰고 그 관리자 앞을 아주 당당하게 지나갔다. 주위를 끌기 위해 두어 번 왔다 갔다 했다. 그 아줌마의 반응은? 콧방귀도 안 뀌더라. 아니 나를 얼빠진 놈처럼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내 '대범한' 복수는 씨알도 안 먹혔다.

나는 그렇게 일본 온천에서 무서운 '일본 여자'들을 만났던 것이다. 그 사람들로 인해 난 그 곳에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얼빠진 놈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일본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왔기 때문이다.

날씨가 한겨울로 접어들어서 그런지, 뜨끈한 아랫목이 생각난다. 이번주 주말에는 공짜로 수건을 쓸 수 있고, 공짜로 헤어드라이기를 쓸 수 있는 우리 동네 찜질방에 갈 생각이다. 일본 온천이 괜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우리동네 신도림 찜질방이 더 좋다.     

 

 

 

 

 

 *일본 목선: 어느 큰 호텔 옆에 있는 장식용 배더군요. 뭐 저기서 큰 연회라도 열릴까요?

 

 

 

 

▲ 미즈키시게루 로드: 입만 살아 있는 요괴가 참 익살스럽습니다. 이 거리는 요괴만화로 유명한 미즈키시게로 화백의 작품에 등장한 요괴들을 형상화한 거리입니다. 미즈키시게로 로드에는 총 134개의 요괴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일본 온천에서 당한 일을 잘 표현해주는 요괴 조형물이네요!

 

 

 

 

 

 

 

 

 

 

▲ 일본 돗도리현 다이센(大山): 올해 첫 눈을 일본에서 맞았네요. 생각지도 않은 설국(雪國)을 만나서 좀 어리둥절 했습니다.

 한편 별다른 장비없이 이 정도까지 산행을 했다면, 온천에서 몸 좀 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제목이 상당히 선정적이다. 굳이 이렇게 선정적인 제목을 거는 이유가 뭐냐고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제목에 언급된 단어들만으로도 충분히 '일본산 AV' 하나 정도는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시고, 은근슬쩍 하드디스크의 '비밀폴더'에서 비슷한 제목의 동영상을 찾으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에서 DBS호를 타면 일본 돗도리현 사카이미나코항에 갈 수 있다. 동해항-사카이미나코항 항로는 450km에 달하는데, 그 거리를 DBS호는 14시 동안 달린다. 비행기로 한두 시간 정도면 닿을 거리를 14시간을 달리니 만만치 않은 항해임에 틀림없다.

내가 그렇게 긴 항해를 감내하며, 돗도리현에 갔던 이유는 '다이센(大山) 등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등반대회는 지난 11월 24일에 개최됐었다. 다이센은 해발 1729m로, 일본인들이 가장 등반하고 싶어 하는 산들 중에서 세 번째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 선호도가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듯, 다이센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난 올해 첫 눈을 다이센에서 맞았다. 등산 초입에서는 눈이 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산 중턱부근에 오르자 눈발이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등산로에 쌓인 적설량도 상당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왜? 난 눈꽃 산행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젠은커녕 그 흔한 스틱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또 우비도 없었다. 하지만 난 목표지점까지 완등을 했다. 그런 악조건 하에서도 목표지점까지 무사히 도달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산행을 마치자 난 오들오들 떨었다. 그럴 만했다. 눈을 맞아서 옷이 많이 젖었기 때문이다. 목욕탕 생각이 간절했다. 이심전심인지 가이드도 급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하여 온천 탐방을 추가시켰다.

 

 

 

▲ DBS호 동해항-사카이미나코항-블라디보스토크항을 연결하는 국제여객선입니다.

 동해-사카이미나코 항로의 거리는 450Km 정도인데, 그 거리를 DBS는 14시간을 달려갑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온천에서 따뜻하게 몸을 지지고 나오십시오!"

그렇게 하여 난 문제의 온천에 입장하게 된 것이다. 온천의 입장료는 500엔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7000원 정도였다. 최근의 환율은 100엔당 1400원 정도다. 입장료는 저렴했지만 수건은 공짜가 아니었다. 우리돈 2000원을 주고 수건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껏 수건을 쓸 수 있는 우리동네 찜질방을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욕에 욕을 해댔다. 그리고는 그냥 맨 몸으로 들어갔다. 등반대회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손수건으로 대충 닦을 생각을 하면서.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눈꽃 산행을 해서 그랬는지 온천물은 무척 달았다. 몸에도 미각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있었으면 그렇게 감별을 했을 것이다. 밝고, 탁 트인 느낌의 온천 내부도 상당히 호감이 갔다. 뗏국물이 둥둥 떠 있는 후미진 동네 목욕탕 하고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그 곳은 노천 온천도 있었다. 노천온천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몸을 '지질'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얼굴에는 찬바람이 불어댔지만 목 아래쪽은 후끈했었다.

그렇게 온천에서 몸을 지지니 노곤해졌다. 난 잠시 눈을 감고 향후 일정들에 대해서 곱씹어 보고 있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남자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에 놀라, 난 눈을 떴다. 그때 꼬마 숙녀들이 정신없이 욕탕을 뛰어다니고 있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대여섯 살로 보이는 여아들이 '깔깔'거리며 온천 내부를 헤집고 다녔던 것이다. 그 뒤로는 아버지로 보이는 어떤 일본 남자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어리둥절 해졌다.

'여기 남녀 혼탕인가? 아닌데… 분명 남녀 갈라서 들어갔는데….'

 

 

 

 

* DBS호의 항로:  우리나라 동해항을 기점으로 일본 돗도리현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정기적으로 운항합니다.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라서 그런지, 자국 중심으로 지도를 배치했군요.

 

 

 

 

 

* DBS호의 항로: 그래서 이렇게 사진을 돌려봤습니다. 사실 이게 더 눈에 잘 들어오지요. 이게 실제로 맞는 거지요!

 

 

 

 ▲ 다이센 등반대회 처음 진입했을 때는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산 중턱 부근에 오르자 저렇게 설국(雪國)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강설량도 상당했습니다. 한편 아이젠이나 스틱 같은 별다른 겨울산행 준비도 없이 눈꽃 산행을 했더니 곤혹스러웠더군요.

하산하다 엉덩방아도 찌었습니다. 산행할 때는 안전이 가장 우선이겠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