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중놀이는 영화의 기원이 될 수 있다!

 

 전통그림자극 '만석중놀이'까지 폄훼... 일제의 탄압으로 명맥 끊겨

 

15.03.13 10:22    
최종 업데이트 15.03.13 10:22

 

 

 

 

  

피습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마크 리퍼트 대사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에서 보인 미국 정부와 미국언론의 태도도 차분해 보였다. 굳이 '테러'라는 어휘를 선택하지 않고, '공격'이라는 말로 사태를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피습을 가한 김기종의 행위는 그게 테러든 공격이든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랜 시간 사회와 격리가 불가피할 정도로 그의 행위는 우리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기종씨가 '우리마당'과 '만석중놀이보존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두 단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지금의 영화가 개성의 인형극에서 비롯됐다는 황당한 주장이 펼쳐졌지만, 자금 지원은 끊기지 않았습니다." (중략) "개성에서 유래한 무언 인형극인 '만석중놀이'가 일제 때문에 왜곡됐다며 희한한 논리를 댑니다."
- [단독] '김기종 주도 행사' 영진위서 두 차례 지원, <채널 A> 2015년 3월 6일자

 


이 보도를 보지 않았다면 필자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김기종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금을 받았다는 점, 그런데 그 지원이 적절치 않다는 점이 이 보도의 큰 골자였다. 한마디로 왜 김기종에게 정부가 돈을 지급했느냐는 물음이었다. 여타 다른 매체들도 이런 비슷한 내용의 뉴스를 생산해냈다.

필자가 우려를 표시한 부분은 김기종을 비판하기 위해 그가 발을 담그고 있었던 만석중놀이까지 끌어와 희화화시켰다는 점이다.

실제로 만석중놀이는 일제의 탄압으로 1920년대 그 명맥이 끊겼다. 그러다 문화운동판 관계자들의 혼신의 노력으로 인해 1983년 다시 빛을 보게 된 전통 그림자 인형극이다. 어렵게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민속극이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그 파편을 뒤집어썼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 만석중놀이 운심게작법이란 승무를 추고 있는 연극인 한대수 선생. 운심게작법은 만석중놀이의 절정 부분에서 올려진다. 2014년 8월 <거창아시아1인극제>에서 공연된 만석중놀이를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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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그림자 인형극 만석중놀이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만석중놀이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다. 만석중놀이의 기원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 일대에서는 초파일을 전후해 민중 포교와 교화를 목적으로 그림자놀이가 행해졌다. 그림자놀이를 한다는 건 어두운 밤중에 놀이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넓게 펼쳐 놓은 광목천 뒤로 횃불을 피우고 그 사이로 용, 잉어, 사슴 같은 인형들을 조종하여 그림자가 광목천에 투영되게 하는 방식으로 놀이가 진행된다. 만석중놀이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색이 입혀졌는데 그 때문에 빛에 투영된 그림자들에도 색감이 묻어난다.

만석중놀이의 주인공은 단연 만석중이라는 큰 나무 인형이다. 만석중은 십장생들이 등장할 때마다 가슴과 머리를 탕탕 쳐, 큰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둔탁하지만 그 여운은 귓전을 맴돈다. 죽비소리처럼 무지몽매한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라는 따끔한 질책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여의주를 두고 천년 묵은 용과 잉어가 다투는 절정 부분에서는 그림자가 아닌 승려가 막 앞에 나와 승무를 춘다. 이 춤은 운심게작법이라는 의식무다. 이처럼 만석중놀이는 대사 한마디 없는 무언극이지만 '버라이어티'하다. 요즘으로 치면 '블록버스터'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있어 밤에도 심심할 틈이 없지만, 호롱불을 켜고 지냈던 그 옛날에 마땅한 오락거리가 있었겠는가? 그런 면에서 색깔을 띤 그림자가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만석중놀이는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기에 손색이 없는 무대였다.

한편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중요무형문화재 3호), 유랑광대들의 발탈(중요무형문화재 79호)같은 인형극들이 대낮에 장터에서 이루어진 것에 비해 만석중놀이는 사찰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공연이 이루어졌으니 공연장의 '공기'부터가 달랐을 것이다.

 


 
▲ 만석중놀이 인형들에 색깔을 입혀서 그런지 투영된 그림자에도 색감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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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중놀이는 영화의 기원이 될 수 있다


일제는 만석중놀이에 대해 탄압을 가하였다. 놀이를 통해 조선인들이 단결을 도모하고, 선전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석중놀이는 1920년대 그 명맥이 끊기게 된다.

유럽에서 영화가 태동을 할 때, 당시의 관계자들은 동아시아에서 발달한 그림자극에서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 이론에 입각하자면 만석중놀이도 영화의 기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민속극의 대가인 심우성 선생은 만석중놀이를 우리 영화의 원형이라고 평가를 할 정도였다. 심우성 선생은 1983년, 각고의 노력 끝에 만석중놀이를 다시 재연한 원로 민속연극인이다.

이런 내용들을 놓고 보면 앞서 언급한 <채널 A>의 보도는 김기종을 깎아내리기 위해 만석중놀이까지 도매금으로 떠넘긴 보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석중놀이가 김기종의 전유물도 아닐뿐더러 영화의 기원이라는 부분은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지 '황당하다'는 평가로 폄하할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제에 의해 만석중놀이의 명맥이 끊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보도에서는 그 본질보다는 김기종의 발언 방식에 초점을 맞춰 '희한하다'는 식으로 희화화 시켰다.

필자는 그 보도를 보면서 <채널A> 기자가 만석중놀이의 '만'자나 알고 취재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일제의 탄압에 의해 수십 년 동안 그 명맥이 사라졌다 이제서야 겨우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 전통 민속극을 김기종을 비판하기 위해 싸잡아 끌어내는 모습에 참담함이 느껴졌다.

 



 
▲ 만석중놀이 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만석중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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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종은 당연히 욕을 먹어야 한다. 그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중죄를 지었다. 하지만 김기종을 비판하기 위해 만석중놀이까지 같이 끌어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행위다. 마치 리퍼트 대사를 위문하기 위해 동원된 부채춤과 석고대죄가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외교관 피습이라는 전대미문의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어렵게 재조명된 우리 전통문화가 싸잡혀서 폄하되지도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그 옛날의 블록버스터, 만석중놀이___ 2편

빗줄기가 소품으로 쓰인 거창아시아1인극제

 

 

 

 

---> 전편에 이어서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을 다룬 작품들

비가 계속 오고 있었지만 공연은 시작되었다. 천만 다행인 것은 빗줄기가 그리 세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대는 촉촉이 젖어 있었고, 관객들은 우산을 받쳐 들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1인극이 바탕이 되지만 다인극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경기민요나 난타퍼포먼스, 만석중놀이 같은 다인극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우리문화연구회'에서 진행한 난타퍼포먼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난타와는 좀 다른 묘미가 있었다. 장고, 꽹과리 같은 민속 악기들이 가미되어 독특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난타와 민속악기와의 만남은 색다른 '퓨전사운드'를 선사했다.

현재의 시대상황을 담은 공연도 있었다. 마임 전문가 김봉석이 연기한 '휴먼 에볼루션'이라는 작품은 자본과 경쟁의 노예가 된 인간들의 모습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를 담은 작품이다.'휴먼 에볼루션'은 주인공이 만 원짜리 지폐를 허공에 뿌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때 주인공은 '미친놈'처럼 발광을 한다. 돈 때문에 주인공이 돌아버린 것이다.

조옥형이 연기한 '첨탑 위 꽃과 나비'라는 작품도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다룬 것이다. 바로 밀양송전탑에서 투쟁하고 있는 '밀양 할매'들에 대한 이야기를 1인극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첨탑 위 꽃과 나비'에서 조옥형은 넘어지고, 뒹구는 몸개그(?)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넘어지고 뒹구는 모습이 밀양에서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 첨탑 위 꽃과 나비 작품명 '첨탑 위 꽃과 나비'. 조옥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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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의 '블록버스터', 만석중놀이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대미는 만석중놀이가 장식했다. 만석중놀이는 부처님오신날을 전후로 하여 사찰 인근에서 실시된 우리나라의 전통 그림자극이다. 만석중놀이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중요무형문화재 3호)', 유랑광대들의 '발탈(중요무형문화재 79호)' 등과 함께 전통인형극으로 공연되었으나 1920년대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일제는 만석중놀이가 조선인들의 단결을 도모하는 선전수단이 될 것을 우려했다. 일제는 만석중놀이를 금지시켰고, 그래서 결국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83년, 각고의 노력 끝에 심우성 선생에 의해 다시 재현되었다.

만석중놀이의 기원은 고려시대 개성 지방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사찰에서는 민중교화와 포교의 목적으로 그림자놀이를 이용하였다. 초파일을 전후하여 사찰 인근에 넓은 광목천을 펼쳐놓고 횃불을 이용하여 그림자놀이를 했던 것이다. 마땅한 유희거리가 없었던 그 옛날, 어두운 밤 중 횃불에 비쳐진 십장생, 용, 잉어 등의 그림자들은 당시 백성들에게는'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를 들어 심우성 선생은 만석중놀이를 우리의 원초적 영화라고 평가했다.

 

 


 

 
▲ 만석중놀이 여의주를 두고 용과 잉어가 다투는 장면에서 '운심게작법'을 추고 있는 한대수 거창귀농학교 교장. 귀농학교 교장이면서 연극인인 한대수 선생은 전통 민속무의 대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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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중이라는 큰 나무 인형은 막의 한편에 서 있다 십장생들이 움직일 때마다 가슴과 머리를 손과 발로 탕탕 친다. 이 소리는 마치 죽비소리처럼 들리는데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닫는다는 의미로 울려 퍼지는 것이다. 천년 묵은 용과 잉어가 나타나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절정 부분에서는 한 승려가 막 앞에 나타나 승무를 춘다. 이 춤은 운심게작법이라는 불교 의식무로 나비춤과 바라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만석중놀이에 쓰인 무대는 높이가 5m, 폭은 7m에 달했다. 그래서 작은 소극장에서는 공연을 하기가 힘들다. 무대의 크기도 있고 하니 만석중놀이는 <거창아시아1인극제>처럼 실외극으로 공연되는게 가장 좋을 듯싶다.

 

빗줄기도 소품이 될 수 있을까?

만석중놀이는 40여 분이나 상연됐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방해물이기보다는 오히려 또 하나의 소품처럼 느껴졌다. 막 뒤에서 인형을 조정하고 있던 배우들은 '수중전'을 치르느라 고생을 했겠지만 그림자놀이를 지켜보는 관객입장에서는 빗줄기가 주는 나름대로의 '소품' 효과를 즐겼을지 모른다.

그렇게 제25회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무사히 종료가 됐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수중전을 치루기는 했지만 관객들은 부슬부슬 내린 빗줄기조차도 연극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듯싶었다. 밤 10시가 넘어 끝났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여름 야외 공연에서는 빗줄기도 하나의 좋은 소품으로 쓰일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억수같이 퍼붓는 장대비는 사절이고. 어쨌든 그렇게 비가 소품으로 쓰이면 하늘도 공동 기획자로 이름이 오르게 되는 건가?

 


 

 
▲ 조갑녀류 승무 작품명 '조갑녀류 승무'. 서정숙이 춘 춤이다. 여성 공연자가 춘 승무를 오랜만에 보게 됐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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