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여기에서는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으로 이름을 바꿔서 올릴 생각입니다. 실제로 '서울트레킹'보다는 '서울역사트레킹'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_ 다음스토리펀딩 1편

올 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 남산 남산 서울성곽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는 서울. 그 서울이 싫어 누구는 '탈 서울'을 꿈꾼다. 귀농, 귀촌, 주말농장, 혹은 제주살이. 명칭만 다를 뿐 서울을 떠나는 이들의 이유는 비슷비슷할 것이다. 각박한 삶, 끊임없는 경쟁, 웃음기 잃은 얼굴들...




다시 서울로

역사트레킹 강사인 나도 '탈 서울'을 꿈꾸었다. 서울과는 더 이상 궁합이 맞지 않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백두대간인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이라는 곳에서 쓰고 있다. 거창 귀농학교라는 곳에서.

하지만 나는 다시 서울로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귀농하려다 실패해서 다시 리턴하는 것인가? 아니다. 현재 귀농학교에서 기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농사를 지을 실력이 못 된다. 귀농은 아무나 하는가!

귀농학교는 내게 집필 장소이자 생태교육의 장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우리 농촌과 우리 산하의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위쪽으로는 덕유산, 아래쪽으로는 지리산이 가까운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마디로 이곳은 강원도를 빰치는 아웃도어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웃도어 천국인 곳을 뒤로 하고 나는 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하는가? 서울이 역사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도 뚜껑 없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각박함, 스트레스, 공해 등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어들 너머로 숨어 있는 서울의 유적지와 그 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 진관사: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의 대웅전

 





성곽길이 곡선을 그리며 나가는 인왕산, 계곡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북한산성, 낙조가 아름다운 안산의 봉수대... 남도가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다 해도,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서울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서울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요!"


그런 말을 내게 하며 미소 짓던 얼굴들.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물과 간식거리를 건네주었던 따뜻한 마음들. 그런 고마운 미소와 마음들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리딩을 하고 싶어 했던 내 모습.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게 서울로 가는 티켓을 다시 끊게 했던 것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지만 결국은 또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을 하면서 망나니들만 만났다면 나는 진작 트레킹 리딩을 때려치웠을지 모른다. 돈도 안 되는 일에, 거기다 망나니들까지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 안산 봉수대 서대문 안산의 정상에 자리잡은 봉수대.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작은 서울과 큰 서울

서울은 작은 서울과 큰 서울로 나눌 수 있다. 작은 서울은 내사산(內四山)이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북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이 바로 그 내사산이다. 이 내사산들을 따라 한양도성이 축조됐던 것이다. 즉 작은 서울은 사대문 안쪽을 말한다.

이에 비해 큰 서울은 외사산(外四山) 안쪽을 뜻한다.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행주산성)이 외사산이다. 아시다시피 조선건국 초기의 서울은 도성 안쪽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은 계속 팽창해 나갔다. 그렇게 팽창해 나갔지만 외사산을 넘지는 못했다. 현재 서울의 행정구역은 외사산 안쪽에 위치해 있다. 아무리 도심지가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자연지형까지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작은 서울, 큰 서울은 내 트레킹의 단골 소재로 이용됐다. 이번 주는 작은 서울, 다음 주는 큰 서울. 그 다음 주는 좀 멀리가고. 계속 그런 식으로 트레킹을 해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볼 일 없는 나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고,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붙여줬다. 아이고, 낯 뜨거워! 그러고 보면 트레킹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창구였던 셈이다.





▲ 인왕산 서대문 안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산 능선을 타고 서울성곽이 구축되어 있다. 왼쪽 뒤편에 있는 산은 북한산이다.  







올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덥다 덥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슬슬 외투를 챙겨 입어야 할 계절로 들어섰다. 그렇다. 이제는 가을로 진입했다. 야외활동하기에 제격인 계절로 들어선 것이다.

사실 이 글은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1편을 오마이뉴스에 싣기 위해 편집한 글이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로 9월 1일에 오픈하여 111일간 진행된다.

트레킹 하기 좋은 계절에 시작해서 올해가 끝나는 시기에 종료되는 펀딩이다. 정확히 12월 20일에 종료가 되는데 그때가 동지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연재가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지난 3월에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이라는 펀딩을 이미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올해에만 펀딩을 두 개를 실시하는 것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난생 처음으로 펀딩을 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봤고,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해서 '선생님' 소리도 들었다. 이 정도면 소출이 좀 나왔다고 할 만하다.

이제 나는 그 소출을 더 늘리기 위해 다시 서울로 복귀할 것이다. 그렇게 서울로 복귀를 하면 남도의 넉넉한 들녘이 내 시야에서 계속 아른거릴 것 같다. 내가 남도에서 서울성곽길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 서울트레킹 서울트레킹, 정확히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참가했던 분이다. 앞쪽에 있는 한옥 구조물은 창의문이다. 창의문은 사소문 중에 하나로 작년에 보물로 승격됐다.      






* 북악산 역사트레킹: 북악산 역사트레킹에 참여한 참가자들. 저런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이다.  

     









 
  

 

 






 

 

 

 

서울시티투어? 아니... 서울시티트레킹!  2편

자신의 두 발로 가는 서울 명소탐방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이었다.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이었던 만큼 광화문은 다른 궐문보다 훨씬 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무지개문)을 셋이나 내서 격식을 높였다.

궁궐은 '궁'과 '궐'이 합쳐진 말인데 '궐'은 높은 석대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을 말한다. 지금은 경복궁 돌담과 떨어져 있는 동십자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궁궐의 의미에 빗대어 보자면 광화문은 조선시대 궁궐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가지고 있다.

경복궁은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만다. 광화문 앞에 화기를 막으려고 세운 해태상이 있었음에도 불에 전소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몽진(임금의 피난)을 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백성들은 궁궐로 몰려간다. 그중 노비 신분에 있던 사람들은 장예원에 불을 놓는다. 장예원에 노비문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예원에서 일어난 불길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경복궁 전체가 화마의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아무리 해태상을 세운다고 한들, 강력한 소방시설을 갖춘다고 한들 성난 민심 앞에서는 그저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일제는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광화문을 헐어 동쪽으로 옮겨 버렸다. 그 자리에는 한용운 선생이 '돌집'이라고 불렀던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광화문은 2010년 8월에 완공된 것이다. 1968년에 중수를 하게 되는데 그때 제대로 복원을 하지 못했다.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 축에 맞춰 중수를 했는데 그 때문에 본래보다 3.5도 가량 틀어졌던 것이다.

그런 오류를 바로잡고 거듭난 광화문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었다. 수문장 교대식 때문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큰 깃발과 화려한 복식을 한 수문장들의 박력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들고 있다.

사직단은 경복궁에서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서촌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례를 올리기 위해 마련된 장소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종묘, 서쪽으로는 사직단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배치는 <주례고공기>에 의한 것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 인왕산과 서울성곽


사직단이 있는 서촌까지는 요즘 유행하는 동네걷기와 별 차이가 없다. 포장도로를 걷기 때문이다. 서울성곽이 있는 인왕산 코스에 가야 트레킹다운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약 18km에 달하는 서울성곽은 조선의 도성이었다. 북쪽의 백악산(북악산)을 기준으로 동쪽에 낙산, 서쪽에 인왕산, 남쪽에 목멱산(남산)을 둘러서 만든 성곽이다. 이 산들을 묶어 내사산이라 부른다. 북악산은 원래 백악산이라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에 '북악'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 도성에는 4대문이 있는데 남쪽에는 숭례문(남대문), 동쪽에는 흥인지문(동대문), 북쪽에는 숙정문, 서쪽에는 돈의문(서대문)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서대문은 없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서울성곽 서울성곽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인왕산에 올라서면 성곽과 함께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서울 시내가 보인다. 내사산이 둘러싸고 있는 서울 중심부다. 이를 두고 필자는 '작은 서울'이라 칭했다. 그럼 '큰 서울'은 어딘가? 서울의 주산인 북한산을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관악산, 동쪽으로는 아차산(용마산), 서쪽으로는 덕양산(행주산성)을 두고 외사산이라 부르는데 그 외사산의 안쪽 지역을 '큰 서울'이라고 불렀다. 서쪽 지역만 빼놓고는 지금의 서울 행정권역과 얼추 비슷하다. 한양천도 이후, 서울의 확장은 계속됐지만, 지형적인 굴레까지 뛰어넘지는 못했던 것이다.

서울성곽은 자연적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요새를 구축했다. 산사면의 급경사를 이용하여 적의 침략을 대비한 것이다. 한마디로 매우 급한 경사면에 성곽이 구축됐다는 뜻이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서울성곽길은 걷기가 만만치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걷다 보면 발바닥에 불이 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간혹 서울성곽길을 좀 만만하게 보는 분들이 있다. 우리 역사트레킹팀에도 그런 분이 있었다. 사전에 미리 공지를 올렸는데도 어떤 분께서 하이힐을 신고 오셨던 것이다. 트레킹 인도자로서 참 난감했다.

"읔! 제가 분명히 편한 복장에 편한 신발을 신고 오라고 당부드렸는데요."
"앞에는 그냥 평지고, 서울성곽길 걷는다면서요…."

 

 

 

 

 
▲ 서울성곽 '시간 퇴적층'이 새겨진 서울성곽 돌덩이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하이힐을 신고 오신 분도 끝까지 완주를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필자는 무척 조마조마했지만….

서울성곽은 여러 번에 걸쳐 개축됐다. 조선 초기에는 토성이었고, 이후에는 주위에 있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됐다. 그러다 조선 후기 숙종시대에는 두부 모양의 장대석이 쌓아올려지게 된다. 이후 박정희 정권 시대에 또 한 번 개축된다.

이렇듯 서울성곽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마치 600년이란 시간이 퇴적층처럼 돌들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아랫돌은 옛날에 쌓여 '누릿누릿'한데 그 이후에 축성된 돌들은 하얀색이다. 윗돌과 아랫돌이 시각적으로 '시간 퇴적층'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


역사트레킹팀은 마지막 탐방지인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로 이동했다. 독립문은 잘 아시다시피 독립협회에서 자주 국권을 상징하기 위해 세운 문이다. 독립문은 영은문을 헐고 지은 문이다. 영은문은 청나라 사신을 접견하기 위해 만든 문이었다.

독립협회가 주장한 '자주독립'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독립의지는 확고했으나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서 무척 관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이권침탈에는 목소리를 높이며 반대했으나 일본의 이권 침탈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 독립문 독립문을 탐방하는 서울시티트레킹 참가자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서대문형무소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해 드리지는 않겠다. 너무나 잘 아시는 곳이겠기에 굳이 필자가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신 이 말은 하고 싶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 조국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쳤던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현재 우리는 살고 있는가? 아베 총리의 우경화에 핏대 높여 반대를 하면서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끊임없는 나오는 나라를 그들은 꿈꾸었을까? '친일청산은 소련의 지령'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친일 매국노의 후손이 KBS 이사장을 맡는 현실을 그들은 꿈꾸었을까?"

 

 

 


 

 
▲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에 걸려 있는 대형태극기! 저곳에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던 분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지금 우리는 살고 있는가?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도움말

1. 서울시티트레킹 코스: 조계사(우정국) ▶ 위안부 소녀상(일본대사관 앞)▶ 광화문(경복궁) ▶사직단(북촌)

▶ 인왕산(서울성곽) ▶ 서대문 형무소 ▶ 독립문

2. 약 6km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탐방할 것들이 많아 3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임.

3. 시작점: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하차 한 후 조계사로 이동. / 종료점: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이용.

4. 이 코스는 지도상으로만 존재하는 곳이다. 따로 표식작업이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길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신다면 지도검색을 통해 해당 탐방지들을 찾아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