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트레킹 관련 글 썼다 강사되고, 펀딩도 하게 됐네!


오마이뉴스에 쓴 역사트레킹 기사 덕분에 생긴 일들


16.04.08 15:01 최종 업데이트 16.04.08 15:01

곽동운(artpunk)             








 
▲ 서강 강원도 영월에 있는 서강에서 찍은 필자의 사진. 트레킹을 하며 전국에 있는 명소를 다니다보니, 저런 멋진 풍광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영월강변 트레킹을 실시할 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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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에 말씀 드렸죠. 펠리페 2세 시기에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가지고 있었다고요. 그 스페인 무적함대가 임진왜란이 있기 4년 전인, 1588년에 영국의 드레이크 함대에 의해 칼레에서 대파를 당합니다. 칼레는 도버해협 중에서 도버 반대편에 있던 프랑스 땅이랍니다."


저는 이렇게 설명을 한 후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뗐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 수군이랑 당시 무적함대랑은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닮은 점은 둘 다 수군이면서, 한편으로는 강력한 지상군이었다는 점입니다. 둘 다 래밍(ramming, 상대방 배에 부딪히기)과 보딩(boarding, 상대방 배에 올라타기) 전법을 썼는데 그렇게 했다가 둘 다 크게 패했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이 말을 끝낸 후 저는 몸을 틀어서 참가자들이 제 옆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른팔로 대포를 쏘는 시늉을 했습니다.


'빵빵빵'


"당시 판옥선은 제자리 선회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현에서 대포를 쏜 다음에 바로 뱃머리를 돌려서 좌현에 있는 대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빵빵빵'


그 말대로 저는 제자리에서 몸을 돌렸고, 이번에는 왼쪽팔로 대포를 쏘는 시늉을 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수군의 주력함인 세키부네는 속도를 빨랐을지 몰라도 선회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이 설명을 할 때는 판옥선 때와는 달리 작은 원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조일전쟁 당시 판옥선의 특성을 일본군의 주력 함정과 비교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 몸을 설명 도구로 썼던 셈이지요. 이때 참가자 중에 한 분이 '아~'라는 외침을 내뱉더군요. 어떤 참가자는 고개를 끄떡이며 응답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온몸으로 표현해서 그랬던가요? 제 설명이 영 '꽝'은 아니었나 봅니다.






 
▲ 서울성곽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성곽이 곡선을 그리고 있어, 그 멋을 더하고 있다. 인왕산 역사트레킹을 실시할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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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트레킹과 글쓰기, 내가 할 줄 아는 두 가지


지난 3월 23일. 저는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문경새재에 서 있었습니다.


"준비는 하긴 했는데 버벅대면 어떡하냐. 한 열댓 명은 커버가 되는데 30명은 솔직히 좀 버겁네. 핀 마이크도 써야 되고..."


당시 저는 모 기관에서 개최하는 '힐링 트레킹'에 강사로 초빙됐습니다. 제 역할은 30여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을 리딩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문경새재와 관련된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을 설명하는 역할도 부여받았습니다. 그냥 걷기만 한다면 굳이 저를 강사로 초빙할 이유는 없었겠지요. 우리나라에 트레킹 강사들은 많이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저는 문경새재 역사트레킹을 리딩하는 강사였습니다. 


저는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유일하게 저 직함을 쓰고 있을 겁니다. 딱히 시비 거는 사람도 없으니 계속 저 직함을 쓸 생각이지요.


역사트레킹은 제가 할 줄 아는, 아니 할 수 있는 단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바로 글쓰기입니다.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움켜쥐려는 습성을 보이더군요. 그렇게 움켜쥐었던 게 역사트레킹과 글쓰기였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래알 빠지듯이 다 빠져나가고 저 두 가지만 남아있더군요.





 
▲ 꽃길걷기 서울내부트레킹에 참가한 분들을 찍은 사진이다. 이 구간은 버티고개인데 꽃길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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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쓴 글 덕택에 트레킹 강사가 되다


역사트레킹은 주로 서울에서 행했습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을 모아서 함께 떠났지요. 참가비가 있긴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가비는 명목상으로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항상 운영비는 마이너스였지요. 그래서 제 사비를 턴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제가 멍청한 걸까요? 그렇게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짓을 저는 왜 했을까요? 재밌어서 그랬습니다. 참가자들에게 해당 코스의 역사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재밌었고, 사람들과 이것저것 세상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그렇게 트레킹을 진행하다 보면 에피소드들도 생기고, 아이디어도 얻게 됩니다. 글감이 생기는 것이죠. 역사트레킹을 할 때만큼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 내용들을 담아 <오마이뉴스>에 풀어냈습니다. 그나마 글쓰기도 할 줄 아는 것 중에 하나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글이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가며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작성을 했습니다. 사진도 예쁜 것만 추리고 추렸지요. 역사트레킹 기사를 작성할 때도 참 행복했습니다. 진행했을 때의 사진을 보면서 미소를 짓곤 했었죠.


그렇게 나름대로 공을 들여서 그랬는지 역사트레킹 관련 기사들은 그런대로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사이드에 실린 것들이 대다수였지만 그래도 몇몇 기사들은 메인탑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기사들은 포털 사이트 첫 화면에 실리기까지 했지요. 그 기사를 보고 어떤 여자분이 트레킹에 참여하고 싶다며, 제 블로그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겨 놓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썼다가 생판 모르는 여자분의 '전번을 땄던' 셈이죠.







 
▲ 문경새재 문경새재 제1관인 주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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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에 실리든 사이드에 실리든, 그렇게 저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차곡차곡 결과물이 쌓이게 된 것이죠. 그 결과물을 보고 모 기관에서 연락을 했던 겁니다. 트레킹 강사로 나서달라고, 트레킹을 하면서 역사 지식을 설명해달라고, 강사료는 챙겨줄 테니 걱정 말라고...


아무리 역사트레킹이 할 줄 아는 것 중에 하나라지만 그래도 '강사님'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 앞에 서니 좀 떨렸습니다. 더군다나 30명 정도 되는 인원을 리딩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어떻게 됐을까요? 제 첫 강사 데뷔 무대는 성공했을까요? 성공까지는 모르겠는데 망치지는 않았습니다. 버벅대기는 했지만 준비했던 걸 거의 다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온몸을 설명도구로 썼던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된 듯했습니다. 반응이 괜찮았으니까요. 문경새재 코스가 걷기에 편해서 참가자들의 부담이 덜했던 것도 제게는 이점이었습니다. 사전답사를 하고, 어느 지점에서 무슨 설명을 할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던 것도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






 
▲ 스토리펀딩 스토리펀딩에서 역사트레킹을 주제로 모금을 하고 있다. 역사트레킹의 부제는 길 위의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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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트레킹 펀딩


저는 얼마 전부터 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역시 역사트레킹입니다. 역사트레킹펀딩도 오마이뉴스에 쌓아둔 결과물이 아니었으면 진행할 수 없었을 겁니다.

요즘 아무리 펀딩이 흔하다고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모금을 할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결과물이 있어야지 펀딩 기획서도 통과될 수 있잖아요. 기획서가 통과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바로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썼다가 강사도 되고, 펀딩도 하게 됐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딱 두 가지를 가지고 오마이뉴스에 적용시켰더니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흥미로운 변화들이 제게는 큰 활력소로 다가오네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오마이뉴스에 글을 쓸 생각입니다. 메인에 실리든 사이드에 실리든 계속 쓸 생각입니다. 그렇게 쓰다보면 결과물이 계속 축적되겠지요. 그런 결과물로 인해 흥미로운 변화들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 남태령 망루: 참가자와 함께 포즈 취하기!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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