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연 폭포: 비가 온 뒤라 유량이 아주 풍부했다. 낙수 소리가 우레와 같이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뒤쪽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도] 빗물로 지은 밥

한편 제주도에서는 추자도 때와는 다른 경험을 했다. 제주도에서는 입도하는 첫 날부터 비를 맞기 시작했다. 워낙 비가 많이 내려 주행을 포기한 날도 생길 정도였다.

천지연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서귀포시 외곽의 한 공원. 유량이 풍부해져서 그랬는지 천지연 폭포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폭포는 꽤 먼 곳에 있었지만 그 낙수 소리는 세상을 울리는 듯, 쩌렁쩌렁했다. 엄청난 유량을 자랑하는 천지연 폭포를 감상하는 것은 좋았지만 난 비가 싫었다. 정말 싫었다. 제주도에서 비를 하도 많이 맞아서 이제 비라면 신물이 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텐트를 간이 팔각정 밑에 칠 수 있다는 것.

시간이 지나도 빗줄기는 잦아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거세졌다. 라디오에서도 서귀포지역 일대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꼼짝없이 팔각정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빗줄기가 멈추길 기원하면서 점심을 지어먹으려 식수를 찾았다.

 

 

 

 

 

* 꽃이 핀 야영지: 사진에서처럼 지붕이 달리고, 바닥에 데크가 깔린 나무 정자가 가장 이상적이다.

강한 폭우도 막아주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도 막아주니 가난뱅이 여행객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곳이 바로 저런 곳이다.

2011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뿔싸! 이걸 어째!'

아침에 식사 준비를 하면서 식수를 다 써버린 것이다. 누가 점심 때까지 팔각정에 갇혀 있을 줄 알았나! 생수 한 통을 사오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대비를 뚫고 마트까지 갔다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필자는 장대비를 맞을 몸 상태가 아니었다. 장기간의 여행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우비도 구멍이 뻥뻥 난 상태라 입으나마나였다. 우산은 아예 없었다.

하늘이 뚫린 듯, 빗방울이 거세게 내렸지만 정작 내게는 밥 해 먹을 식수가 한 방울도 없는 상황이었다. 추자도에서는 바닷물을 앞에 두고 씻을 물이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제주도에서는 장대비를 바라보면서 밥 해 먹을 물을 갈구하다니! 세상을 집어 삼킬 듯 천지연 폭포에서는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정작 난 밥 해먹을 물이 없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니! 그러고보면 그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 방도가 필요했다. 무슨 수가 없을까?

 

 

 

 

 

 

 

 

* 한계령 창고에 친 텐트: 아무리 여름이라고 하지만 한계령은 한계령이었다. 원통리에서 출발했을 때가 낮 12시였는데 한계령에 도착했더니 밤 10시였다.

안개가 가득찬 한계령에서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밤안개처럼 당시 내 처지는 우울했다. 설악산에서 노숙할 판이었으니까. 그러다 저 창고를 발견했는데,

 한 겨울 제설장비 차량 차고로 쓰이는 곳이었다. 덕분에 하룻밤 잘 지냈다. 2012년 백두대간자전거여행 당시의 사진이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푸하핫!'

얼마 후 묘안이 떠올랐다. 생각을 달리하니 금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랬다. 그 빗물을 받아서 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팔각정 처마 밑에다 코펠을 펼쳐 놓았다. 어차피 며칠간 계속된 비로 대기는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그건 팔각정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곳은 청정지역 제주도 서귀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런가, 빗물로 지은 밥은 정말 맛있었다. 꿀맛이었다. 서귀포의 청정한 빗물로 밥을 지어 먹었으니 꿀맛일 수밖에!

사실 필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필자가 아웃도어 여행을 많이 했어도 빗물로 밥을 지어 먹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여행이 아니겠는가. 언제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게 여행이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필자는 돈이 없는 관계로 가난뱅이 여행을 해야 하니 더욱더 그럴 수밖에!

몇 시간 후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이던 공원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우산을 받쳐 들고 나오고 있었다. 필자는 저 멀리에 있는 한라산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으로 휘감긴 한라산은 무언가 모를 영험함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는 깨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저기 봐. 서귀포에서도 노숙자가 있나 봐요."
"그러게요. 근데 요즘 노숙자는 텐트도 치고 자나 봐요. 밥도 해먹고. 그나마 서울보다는 낫네."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이었다. 필자를 노숙자로 본 것이다. 하긴 당시 나는 노숙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말들을 그냥 웃어 넘겼다. 왜? 청정수 빗물로 밥을 해 먹었으니까! 이런 경험은 아무나 못하는 거니까!

 

 

* 대통령의 자전거와 내 자전거: 고 노무현 대통령이 타고 다녔던 자전거다. 필자의 자전거만큼이나 싸구려 철TB였다.

대신 내 자전거는 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대통령의 자전거는 아주 단출하다. 그 분이 생전에 계셨다면 필자에게 쌀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불쌍하다고.

 생각해보니 당시 봉화 마을에서 통김치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한동안 김치 걱정은 안했다. 2010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수해복구: 텐트가 망가져 임시방편으로 저렇게 모기장 텐트를 쳤다. 하지만 모기장 텐트 쳤다 폭우를 만났다.

침낭 양 옆으로 물고가 생겼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를 만났었다. 2011년 전북 완주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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