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입니다. 그간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서 숱하게 뱀도 만나고, 숱하게 들개를 만났지만 멧돼지는 처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어둠이 내린 산책로에서 홀로 멧돼지를 대면했답니다. 그 두려움이란! 올 여름에 공포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제대로 공포를 맛 본 셈이죠. 돈 한 푼 안들이고... ^^;

사건 개요를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10월 6일 오후 6시 20분 경이었습니다. 저는 북한산 둘레길 도봉산 구간 어느쯤을 걷고 있었습니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 그런지 이미 산책로는 어두워졌더군요.

저도 하산점을 찾아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답니다. 대충 10분 정도만 더 걸으면 대로변으로 나와서 버스를 탈 수 있을 거 같더군요. 그런 계산을 하면서 계속 이동을 했습니다. 다행히 산책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더군요. 폭도 넓고 돌부리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동을 하다 나무데크 계단을 하나 마주했습니다. 뭐 나무데크 계단이야 둘레길에서는 흔하디 흔하게 만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로... 말입니다. 그때의 나무계단은 흔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층계가 많은 계단이 아니었는데 그 맨 상층부에 무언가 시커먼 것이 떡 하고 버티고 서 있더군요. 마치 고사상에 올라가는 돼지머리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커먼 것이 저를 주시하더군요! 순간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맴돌았습니다.

멧.돼.지...!

천천히 뒷걸음을 쳤습니다. 멧돼지를 만났을 때의 행동수칙이 기억났던 것이죠.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저와 그 녀석 사이의 거리가 약 20~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뒷걸음을 쳤는데 잠깐 녀석이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이때다 싶었지요. 냅다 달렸습니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달렸습니다. 제 자신이 기특할 정도로 정말 잘 달렸습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생각하지 했을까요?

'나한테 이런 초인적인 달리기 능력이 있었나? 올림픽 나가면 바로 금메달이겠네!'

그런 공포의 질주 덕택이었는지 저는 안전하게 대로변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동네 주민분을 만났는데 그쪽 일대가 '멧돼지 소굴'이라고 일러주더군요. 한마디로 저는 겁도 없이 홀로 멧돼지 소굴에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이번 추석 명절은 아주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습니다. 그 고사상 돼지머리 같은 녀석 때문에 제 안에 잠재되어 있던 초인적인 능력이 제대로 발현이 됐으니까요.^^; 

전 기회되면 그 멧돼지 소굴에 다시 가서 고사상 돼지머리 녀석을 때려잡을 생각입니다. 휴대용 야삽을 가지고 갔으면 한 방에 때려잡을 수 있었는데... 그때 안 가지고 가서...ㅋ  때려잡으면 삼겹살 파티해요! 고기는 제가 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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