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빌라성: 둥그런 타워가 도열하듯 서 있다. 푸른하늘과 흰구름, 그리고 제비들이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다.

 

 

 

<재미난 스페인 14편> 아빌라성과 한양도성

성곽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어?

한참 성곽 답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일단 집과 가까운 한양도성을 주로 탐방하며 ‘답사 근육’을 길렀다. 서울 안쪽에 있는 4개의 산을 둘러 만든 한양도성은 그 길이가 무려 18.6km에 달한다. 그 4개의 산은 북쪽 북악산, 서쪽 인왕산, 남쪽 남산, 동쪽 낙산이다. 낙산은 처음 들어보시는가? 일품 야경을 자랑하는 낙산공원이 있는 곳이 바로 낙산이다. 모두 다 산책하기에 좋은 산들이라 필자가 행하는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프로그램의 에이스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한양도성 트레킹이 종료가 되면 다음으로는 북한산성, 아차산성, 탕춘대성, 호암산성 같은 서울에 소재한 산성들을 탐방했었다. 이렇듯 서울의 성들을 탐방하면서 종종 이런 대화들을 했었다.

“서울에도 성이 꽤 많네요.”

“그렇죠. 우리나라로 넓혀보면 더 많아요. 무려 이천 개나 됩니다.”

“네? 이천 개요?”

“그래서 우리나라를 성의 나라라고도 부를 수 있답니다.”

이 대목에서 수강생분들은 한결같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신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성들이 많이 축조된 건 역사적으로 전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페인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성(城)이 많은 곳이다. 특히 중앙에 자리 잡은 카스티야(Castilla)는 명칭 자체가 ‘성’을 뜻하는 카스티요(castillo)에서 나온 것이다. 11세기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던 부르고스(Burgos)도 이름 자체가 ‘성’이다. 카스티야 지역은 광활하게 펼쳐진 메세타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 아빌라: 아빌라 외곽 지역을 바라본 모습. 아빌라는 스페인 중부지역에 있다.

 

 

 

지리적으로 방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곳곳에 성을 쌓아 방어력을 높이려 했다. 더군다나 카스티야가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에서 선봉장 역할을 했던 터라 더더욱 많은 수의 성을 축조할 수밖에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아빌라(Ávila)로 이동했다. 아빌라는 마드리드에서 약 11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곳에 아빌라성(Walls of Ávila)이 있다. 아빌라성은 중세시대에 축조되어 구도심을 감싸고 있는데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성들도 그렇지만 스페인의 성들도 훼손되어 방치된 곳들이 많다. 도심지의 확장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면 성체부터 훼손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스페인의 성들은 사방이 뚫려있는 평지성들이 대부분이라 도시가 확장하려면 필연적으로 성곽을 깨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빌라성은 지금도 성문을 닫고 농성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채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사실 아빌라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어떻게 성채가 축조됐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서양의 성들은 주로 협축법으로 성채를 쌓는데 아빌라성도 협축법으로 제작되었다. 직접 올라가서 좁은 성곽길을 걸어보았다. 성곽길을 걷는데 돈을 받네! 우리 한양도성은 공짜인데!

아빌라 성처럼 평지에 만들어진 성은 협축법(夾築法)으로 축조된다. 협축법은 성벽을 큰 담장처럼 높게 쌓아 성 안팎을 확연하게 구분한다. 높은 담장처럼 쌓다 보니 위에서 내려다보면 성곽길은 좁을 수밖에 없다. 외형상 성 안쪽도 낭떠러지, 성 바깥쪽도 낭떠러지처럼 보인다. 주로 평지에 만들어진 유럽의 도시성벽들이 협축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중국의 만리장성과 충북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도 협축법으로 제작되었다.

 

 

 

*아빌라성: 협축법으로 만들어졌다.

 

 

 

 

이와 달리 한양도성은 편축법(片築法)으로 축성되었다. 편축법은 한쪽만 성체를 쌓은 것을 말하는데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 조건에 부합되는 축성 방식이다. 협축법으로 쌓인 성들이 안쪽과 바깥쪽 모두 다 낭떠러지라면 편축법은 바깥쪽만 낭떠러지다. 한쪽만 쌓으니 돈도 덜 들고, 공기도 단축된다. 얼마나 좋은가.

또한 편축법은 지형과 합치되는 방식이기에 성체가 자연의 일부로 녹아든 형상을 보인다. 편축법은 산자락을 이용하여 축조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주로 산성의 형태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남한산성, 북한산성이 그 예이다.

아빌라성 안쪽으로는 구도심이 자리 잡고 있다. 시간도 늦고 해서 아예 1박을 하기로 했다. 성북동 성곽마을을 탐방했을 때 ‘성곽을 벗삼아 하룻밤을 보내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어쨌든 성곽마을에서 잠을 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잠이 들 무렵 빗소리가 들렸다.

스페인 중부지방의 하늘이 청명하게 드러났다. 성곽 트레킹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아빌라성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처음 축조됐을 때는 1090년이었고, 12세기경에 방어에 적합한 성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로도 계속 성을 쌓았는데 그 시기가 14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 아빌라성: 성곽의 형태를 나타낸 조형물

 

 

아빌라성은 길쭉한 사각형처럼 생겼는데 총 길이가 약 2,500m에 달한다. 특이하게도 아빌라 대성당이 성곽 외벽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한마디로 대성당의 외벽이 아빌라성의 성채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 안의 넓이는 약 9만 3천 평 정도 된다. 문은 9개가 있는데 이들 중 성 빈센트 문(Puerta de San Vicente)과 알카사르 문(Puerta del Alcazar)이 확연히 눈에 띈다. 이들 문 양 옆에는 측면 타워가 나란히 붙어 있어 문의 격조을 높여주고 있다. 그 쌍둥이 측면 타워는 높이가 무려 20m에 달한다.

88개에 달하는 반원형 타워도 연이어 늘어서 있다. 누렁이가 코를 내밀 듯, 둥그스름한 타워의 모습에서 입체감이 느껴졌다. 선을 긋듯 성채가 일직선으로만 세워졌다면 교도소 담장과 다를 바 없이 밋밋했을 것이다. 그렇게 타워의 볼륨감이 아빌라성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양도성에서는 연이어 늘어선 타워를 볼 수 없기에 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성벽의 높이는 평균 12m 정도인데 6~7m 사이인 한양도성에 비하면 훨씬 더 높은 셈이다. 12m 높이의 성벽을 어떻게 오른단 말인가! 더군다나 필자처럼 똥배가 나온 사람은...

 

 

 

* 아빌라성: 성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협축법으로 지어져서 성곽길 양 옆은 낭떨어지가 된다.

 

 

 

 

아빌라성과 한양도성을 계속 묶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둘 다 시티월(city wall)이기 때문이다. 시티월은 도시성벽이라고 불리는데 왕족이나 귀족들이 거주하는 캐슬(castle), 요새로 불리는 포트레스(fortress), 성채라 불리는 시타델(citadel)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성벽 안과 밖을 엄격하게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기에 캐슬이나 포트레스, 시타델보다는 크기가 더 크다. 도시를 둘러싸는 만큼 기본적으로 사각형 형태를 띤다. 물론 지형을 따라 만드니 형태가 싹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참고로 시타델은 ‘작은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육각형의 별모양으로 축성된다. 시티월이 성벽을 한 겹으로 두른 형태라면 시타델은 겹겹이 쌓아 올린 겹성 형태다. 그래서 방어력이 훨씬 더 증강되었다. 시타델 안에 마을을 짓기도 하지만 주로 도시 외곽이나 혹은 도시와 별도로 세운다. 시티월의 방어력이 부족하다면 별도의 시타델이 함께 축성되는 식이다.

순례길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대도시인 팜플로나에는 구도심을 시티월이 감싸고 있고, 별도로 육각형의 시타델이 있다. 팜플로나 시타델이 순례길 바로 옆에 있지만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이 바뻐서인지 순례객들은 그냥 지나쳐간다. 그 모습이 좀 안타까웠다. 저 좋은 걸 그냥 지나치다니!

아빌라성의 길이가 2,500m라 약 30~4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한양도성은 18.6km이라 순성을 제대로 하려면 10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밥 시간은 둘째치고, 북악산과 인왕산 성곽길이 상당히 난코스이기 때문이다. 산을 꽤 잘 타는 사람들도 북악산 성곽길의 계단에서는 숨을 가쁘게 몰아쉴 정도다.

비가 온 뒤라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느긋하게 성곽 트레킹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둥글둥글한 타워들이 사열하듯이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흰구름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성곽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어? 우리 한양도성도 예뻐!

 

 

 

* 알카사르 문(Puerta del Alcazar): 양 옆에 측면 타워가 있어 문의 격조를 높여주고 있다.

 

 

 

* 아빌라 지도

 

 

 




☞ 지난 2018년 12월 11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및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빌라성




*여행 50일차: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맑음

1. 벌써 여행 50일차다. 이제 이 여행의 종착역이 다가온다. 

2.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내 이름이 명단에 없다는 것이다. 'booking 닷컴'의 안내문에는 분명 조식이 제공된다고 적혀있었다. 알고보니 난 아주 저렴한 요금으로 숙박을 하기에 조식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시 싼게 비지떡인가? 하긴 13유로도 안되는 돈으로 이런 시설에서 1박을 할 수 있다는게 그저 감사할 따름임.

3. 오늘은 아빌라(avila)를 탐방한다. 아빌라는 중세 시대에 건축된 성이 잘 보존된 도시다. 예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라 기대에 부푼 마음을 달래며 그곳으로 향했다. 

4. 마드리드에서 아빌라를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6호선 mendez alvaro역에서 내려 estacion sur터미널에서 아빌라행 버스를 타야했다. 왕복 티켓은 약 14유로였음.  리턴 티켓은 세고비야 때처럼 오픈티켓으로 했는데 역시 돌아올 때는 아빌라 매표소에서 티켓을 프린팅했음.

5. 아빌라에 도착했는데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댔다. 모자가 벗겨질 정도였음. 그래서 예정에 없던 아빌라 대성당에 들어가게 됐음. 

6. 아빌라 대성당은 형형색색의 스테인글라스가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음. 그곳에서 잠시 바람을 피하며 성당 곳곳을 둘러봤음.

7. 아빌라 옛 도심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특이하게도 아빌라 대성당이 성곽 외벽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음. 한마디로 대성당의 외벽이 아빌라성의 성채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뜻임.

8. 아빌라성은 분명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음. 하지만 평평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아기자기한 모습은 없었음. 지형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그런 듯싶었음.

9. 아빌라성의 성채에 직접 올라가 봤는데 멀리까지 풍광을 조망할 수 있어 좋았음.내가 오른 구간은 무료였는데 다른 구간은 5유로를 내야한다고 함. 참나 서울에 있는 한양도성은 전체가 다 공짜구만!ㅋ

10. 아빌라까지는 약 1시간 0분 정도 소요됨. 오후 5시 버스를 타고, 6시 30분경 마드리드에 도착함.

11. 솔 광장역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오는데 노란셔츠 시위를 하고 있었음. 마드리드에서도 노란셔츠 시위를 했음. 파리에서만 하는 줄 알았더니!




* 아빌라대성당




*아빌라성




*여행 51일차: 2019년 1월 30일 수요일 맑음

1. 오늘은 특별한 일정없었다. 이제 끝나는 마당에 무슨 일정이 필요한가? 그냥 마드리드를 쉬엄쉬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쇼핑도 좀 했다. 

2. 프라도 미술관을 갈까하다가 그 인근에 있는 왕립식물원을 갔다. 별로 볼 것도 없는 식물원이었는데 무슨 expo 입장까지 한다며 6유로를 받았다. 우리나라 식물원 중에는 공짜로 들어가는데도 있는데 말야! 으이그~ 이 넘의 돈벌레들...ㅋ

3. 역시 아웃도어 quecha 브랜드는 저렴했다. 신발 두 개, 배낭 두 개, 바람막이 등등... 꽤 많은 것들을 구매했는데 146유로 정도가 들었다. 다른 브랜드에서 구매했으면 최소가 200유로였을 것이다. 

4.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잘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다. 하루도 허투르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여행 특성상 '시간이 돈'이라는 개념이 매우 강하지만 꼭 그 개념에 얽매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시간을 잘 보냈고...

5. 그렇게 시간을 허투르게 보내지 않는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일상으로 복귀해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하루하루를 허투르게 보내지 않기! 그것이 바로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감흥이다!



*여행 52일차: 2019년 1월 31일 목요일 맑음

1. 마드리드발 인천행 대한항공 탑승. 오후 6시 30분 경.

2. 이베리아여행 종료



*아빌라성



*아빌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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