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아버지의 18년간의 기록

일기를 쓴 박일호는 '한국시사만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박재동 화백의 아버지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됐을 때, 필자는 '일기장'이라는 부분에 눈길을 두었다. 그래서 박재동 화백이 자신의 일기장을 세상에 공개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어쩌다 박재동 선생 부친 되시는 어른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은 박일호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만화가게, 분식점 그리고 문방구 주인이었고, 또한 30년간 병마에 시달린 무명인의 일상적인 기록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백할 것이 하나있다. 사실 필자는 이 책을 박일호 선생이 아닌 박재동 화백의 시선으로 읽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한 무명인의 일기를 엮은 책을, 흔쾌히 돈을 주고 구매하는 책벌레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독서 실력이 하찮은 필자 같은 독서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필자는 박일호 옆에 적힌 박재동이란 이름 석 자가 없었다면 이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기를 쓴 박일호 선생은 1929년 경남 울산 범서읍(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면)에서 태어나 언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해방 직후 교편을 잡았다. 당시에는 교사가 부족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교단에 섰다고 한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는데 군 당국이 관련 서류를 분실하여 재징집이 되어 군대를 두 번이나 가게 됐다고 한다.

제대 후에는 양사초등학교로 복직을 하게 됐고, 23세에 박재동의 모친인 신봉선 여사와 혼인을 하게 된다. 교단에 다시 선 박일호는 열정적으로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과로까지 해가며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다.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며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맡은바 소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수업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과로가 쌓이다보니 폐결핵이 발병했고, 그 폐결핵 때문에 교단까지 떠나야 했다. 그렇게 병치레를 하다 간경화까지 얻게 된다. 그렇다. 박일호의 젊은 시절은 설상가상처럼 불운의 연속이었다.

 

 

 

 

 

* 두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아버지의 일기장>은 닮은 구석이 많은 책들이다. 둘 다 극한의 상태에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했던 책들이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03년도판이다.   

 

 

 

 

 

 

질병과 가난을 극복하게 해 준 가족사랑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다보면 건강, 질병, 병간호에 대한 언급이 꾸준히 나타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돈이 많이 드는 법! 더군다나 박일호는 교편을 떠나야 하지 않았던가. 산 입에 풀칠을 할 수 없었기에 박일호와 신봉선은 팔을 걷어 붙여야 했다.

부산으로 이주한 그들은 연탄배달, 풀빵장사, 팥빙수장사에 손을 댔다. 그러다 집주인이 하던 만화방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을 탄생시킨, '천국의 도서관'인 그 만화가게를 넘겨받은 것이다. 이렇듯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1970~1980년대 한 가난한 도시 서민의 삶의 투쟁(?)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 책의 한 축이 박일호의 투병이었다면, 또 한 축은 생활고였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필자가 나열한 두 축을 기본으로 삼으면 이 책은 그저 '글루미 선데이'같은 우울한 기록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겹고, 익살스러운 박재동의 삽화와 코멘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그랬기도 했지만, 그보다 투병과 생활고를 뛰어넘는 세 번째 축이 굳건히 서있었기에 필자는 즐거운 기분으로 책장을 사뿐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럼 그 세 번째 축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애(愛)였다.

오늘 재동이가 군복무 중 화실에 나가 받은 보수(월 4만원)를 내 약대(藥代)로 내놓았다. 난생처음 자식에게 받은 돈에 얼떨떨하다. 불효자인 내가 자식의 효심에 새삼 감동한다. 부디부디 재동에게 서광이 비치길 빌고 또 빈다. '자식에게 받은 돈' 1976년 6월 14일자, 78페이지.


 

 

 

 

* 박재동 화백: 오마이뉴스에서 강연 중인 박재동 화백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청년 박재동이 등장한다. 1976년 당시 방위 복무를 했던 박재동은 낮에는 자택 인근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밤에는 화실에 나가 학생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약값에 보태라고 내놓으니 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특했겠는가.

이외에도 책 곳곳에서는 가족애가 넘쳐났다. 박일호 선생은 어버이날 딸(명이)이 달아준 카네이션에 환한 미소를 지었고, 둘째 아들(수동)이 달라는 동문회비를 주지 못해서 가슴을 쳐야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장서방(명이의 남편)의 칭찬에 침이 마를 정도였고, 큰 며느리(박재동의 부인)와 작은 며느리(수동의 부인)의 정성에 감동했다. 그렇다. 병치레의 고통과 저조한 매상 같은 암울한 기록들도 책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행복한 기록들이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만발하고 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