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 아내는 슈퍼우먼

이 책을 읽다보면 강한 부부애도 느껴진다. 부부의 인연이 이렇게도 강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박일호와 신봉선은 찰떡궁합이었다. 이들에게는 연리지나 비익조 같은 수식을 붙여도 될 정도였다. 연리지는 한 나무의 가지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있다는 뜻이고,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이 각각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이루지 못하면 날 수 없다는 상상속의 새 이름이다. 연리지와 비익조는 둘 다 금실 좋은 부부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들이다. 그런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부부는 서로에게 좋은 동반자였다.

병든 남편을 위해 신봉선은 매일 같이 보양식을 준비했고, 장사도 도맡아 했다. 신봉선은 '슈퍼우먼'이었는데 연탄배달, 빙수 만들기, 떡볶이 조리, 문구류 판매까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거기다 남편을 대신해서 파출소까지 끌려가야 했다. 당시는 '불량식품' 근절이니 '유해만화 단속'이니 하는 강압적 단속이 철마다 시행됐는데 병든 남편을 대신하여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고달프고 힘겨운 생활이었지만 신봉선의 다짐은 '강철'과도 같았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박일호의 일기 이외에 첨언 식으로 박재동과 신봉선의 기록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와 관련된 기록을 한 번살펴보자.

천한 장사한다고 사람까지 천하게 보는 일이 허다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이 만화책을 빌려왔다고 열 권이 넘는 책을 불태워버린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만화책이 살림 밑천인데 서슴없이 찢어서 불태워버린다고. 어떤 이는 우리집 양반이 옳은 소리를 하면 만화방 하는 주제에 하고 무시하고, 평생 만화방이나 해먹으라고 악담까지 한다. 내 자식만은 당신들 뒤지지 않게 훌륭하게 키우리라. 세상 사람들이 얕보고 무시할 때면 내 마음은 강철같이 다져진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세 아이다. 76페이지.

 

 

 

 

* 박재동 화백: 독자들을 위해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는 박재동 화백. 

직접 만나보면 실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자세히 보면 '청년' 박재동이다.   

 

 

 

 


이렇게 가족을 위해 아내는 희생을 했고, 그런 아내를 박일호는 극진히 사랑하였다. 그런 부부애가 통했던 것일까? 발병 당시 얼마 못 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박일호는 3남매를 다 시집·장가 보냈고, 손자·손녀까지 안아 봤다. 또한 아들 박재동의 손을 거쳐 자신이 18년간 써온 일기장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박재동은 '타임머신'을 타고 청년 박재동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아버지와 대화하고 있다. 매일같이 글쓰기가 버겁다는 아버지의 일기에 아들은 힘들어도 꾸준히 써야한다고 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쓴 일기장을 통해 현재의 박재동은 '철없던' 청년기의 자신과 만나고, 그 '철없던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아버지를 만나고 있던 것이다.

 

 

 

 

 

 

* 캐리커처: 필자의 캐리커처를 그려준 박재동 화백에 대한 답례로 박재동 화백의 캐리커처를 그려보았다. 박 화백이 그려준 그림에 필자의

그림을 덧붙였으니, 박재동 화백과 곽작가의 공동작업이 되는건가?  박재동 화백을 그린 캐리커처는  <손바닥아트>에 나온 모습을 응용해서 그려보았다.

 저 그림 그리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이 참에 그림 공부 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시화전을 열어보고 싶다. 시화전도 나의 꿈이다.      

 

 

 

 

 

 # 아버지의 꿈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었다. 특용작물을 기르는 농장 경영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재동의 할아버지는 박일호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지게를 만들어줬지만 박일호는 그 지게를 부숴버린다. 자신에게는 꿈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하지만 아버지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젊은 시절 들이닥친 병마 때문에 모든 것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꿈은 고스란히 자식 세대로 넘어갔다. 부모세대의 꿈과 관련하여 박재동은 오마이뉴스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녀들의 꿈이 중요하듯 부모들의 꿈도 중요합니다. 자식들의 꿈을 위해 부모들이 자신의 꿈을 접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식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은 전후로 필자는 꿈이 하나 실현됐고, 새롭게 꿈이 하나  생겼다. 실현된 꿈은 평소에 존경했던 박재동 화백을 직접 만났고, 박 화백이 직접 필자의 캐리커처를 그려주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생긴 꿈은 결혼이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결혼 생각은 엄두도 안 났지만 이 책을 읽으니 당장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로생활도 좋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면 솔로 때와는 다른 희로애락이 생길 것이다. 그런 희로애락을 거치다보면 부모만이 깨달을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캐리커처: 박재동 화백이 직접 그려 준 필자의 모습. 그런데 필자의 모습이 좀 껑뚱하게 나온 것 같다.

박 화백께서는 이 그림을 불과 30초 만에 완성하셨다. 놀라울 정도의 속작 능력이다.

 

 

 

 

 

 

 

#  <아버지의 일기장>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앞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 내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두 책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둘 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미소를 머금고 읽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30년 동안 병마에 시달린 사람의 기록이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사람의 기록이었다. 병마와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기록했던 두 분께 박수를 보낸다. 또한 좋은 기록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 준 박재동 화백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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