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장군폭포

 

 

 

 

 

 

 

* 구장군폭포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전날 광주에서 밤늦게 전라북도 순창으로 이동을 했다. 유명한 강천산 일대를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읍내에 늦게 도착해서 모텔을 잡았는데 5만원이었다. 좀 움찔했다. 주중, 그것도 월요일인데 5만원이라...

뭐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다른 모텔도 다 그 가격이라고 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들이라면 차라리 유스퀘어광주터미널 인근 숙소에서 1박을 하고 순창으로 이동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광주터미널 인근 숙소는 주중에 2만 5천원이었다. 광주시내에서 순창읍내까지는 거리가 가까워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또 광주에서 강천산입구까지 직행 버스도 있다. 물론 자주는 없지만...

 

터미널 인근이라 주위가 유흥가 분위기가 나지만 가성비가 괜찮은 숙소가 있다. 돈 없는 배낭여행자들은 환락가에서도 잘 수 있어야 하고 공동묘지에서도 잘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배낭여행자의 모습이다. ^^

 

용천산이라고도 불리는 강천산은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을철 단풍 여행지로 손꼽히는데 그 풍광이 아름다워서 그랬는지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다. 여기서도 또 금강산이 소환된다.^^ 어쨌든 강천산은 해발 고도가 583미터로 크지 않은 산이지만 명산이 지니고 있어야 할 아이템들은 다 갖추고 있다. 바위, 폭포, 계곡, 숲길, 역사 등등... 그래서 1981년, 우리나라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600미터도 안 되는 산이지만 강천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폭포다. 탐방자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거대한 폭포 6개가 강천산 계곡을 따라 줄지어 자리잡고 있다. 돌산이 폭포를 어떻게 용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병풍폭포

 

 

 

 

 

 

 

 

*남근석

 

 

 

 

 

 

 

매표소를 지나면 가장 먼저 병풍폭포를 만나게 된다. 병풍바위에 물을 흘려보내 병풍폭포가 되었다. 그렇다. 병풍폭포는 인공폭포다. 인공폭포지만 높이 40미터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줄기가 이색적이다. 높이가 있다보니 물줄기가 잘 늘어나는 피자치즈처럼 길다란 형상을 보인다. 병풍바위는 강천사에 가기 전에 만나는데 이 바위를 지나는 사람은 병풍바위의 위엄있는 모습 때문인지 자신의 죄를 참회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밑을 지나는 이들은 다 순수해진다나 뭐래나...^^

 

병풍바위를 지나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계곡 숲길이 시작된다.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와 울창한 숲을 따라 흙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거북바위나 남근석 같은 특이한 형상의 바위들을 관찰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특히 남근석은... 음... 참 거시기하다.ㅋ

 

그렇게 숲길을 걷다보면 삼인대라는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순창삼인대에는 비석이 세워져있고, 그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비각이 세워져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순창삼인대비의 비문을 읽어보면 조선 중종시대에 일어난 일들이 언급되어 있다. 필자가 그 어려운 한자들을 다 읽어냈을까?ㅋ

 

1506년(연산군12)에 연산군을 몰아내고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옹립하게 된다. 유명한 중종반정이다. 이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진성대군의 부인인 신씨의 아버지가 그 문제의 원인이었다. 신씨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이었던 것이다. 연산군 치하에서 좌의정으로 있던 신수근이 반정군에 의해 제거된다. 이때 왕으로 등극한 진성대군은 신씨 부인을 그대로 왕후로 삼을 생각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조강지처인데 어찌 버릴 수 있겠소!"

 

하지만 조강지처를 버리게 된다. 반정세력들이 신씨의 왕후 옹립을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신씨가 왕후가 된다면 왕을 또 바꿔버리겠다는 소문이 궁궐 내에서 나돌 정도였다. 결국 신씨는 궁궐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슬이 좋은 부부여서 그랬는지 중종은 경복궁 옆 인왕산을 보며 신씨를 그리워했고, 이를 안 신씨는 궁궐을 향해 시집갈 때 입은 다홍치마를 흔들어댔다고 한다. 인왕산 정상부는 치마바위라고 불리우는데 중종과 신씨(단경왕후)에 대한 이야기가 지명에 묻어있는 것이다.

 

 

 

 

 

 

* 순창삼인대

 

 

 

 

 

 

 

* 강천산숲길

 

 

 

 

 

 

 

그런데 삼인대랑 단경왕후, 신씨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신씨가 궁궐을 나간 후 왕비가 된 이는 장경왕후였다. 장경왕후는 중종과의 사이에서 인종을 낳는다. 인조말고 인종이다. 인종은 중종 다음으로 왕위에 오르는데 조선의 왕들 중에서 가장 재위 기간이 짧았다. 9개월이었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은 후 산후통에 시달리다 6일 만에 숨을 거둔다. 이때가 1515년(중종10)이었다. 중전의 자리가 공석이 되자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담양부사 박상, 순창군수 김정, 무안현감 유옥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상소문을 올리기로 했고, 그 결의의 뜻으로 강천산 계곡의 한 나뭇가지에 자신의 관인을 걸었다. 세 명이 자신의 관인(직인)을 걸었다고 해서 삼인대라는 불리는 것이다.

 

삼인대의 결의는 성공을 했을까? 장경왕후 다음에는 그 유명한 문정왕후가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 그렇다고 삼인대의 결의가 완전히 실패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1740년(영조20)에 신씨가 단경왕후로 복위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 후인 1744년(영조24)에 지금의 비석이 세워지게 된다.

 

이제 천년고찰인 강천사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천년고찰이라는데 많이 허한 느낌이다. 강천사는 887년(진성여왕1)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다. 이후 중창을 거듭하며 큰 사찰로 변모한다. 하지만 조일전쟁(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사찰 건물들은 근래에 지은 것들이다.

 

 

 

 

 

 

 

* 강천사 대웅전과 오층석탑

 

 

 

 

 

 

* 강천사 오층석탑

 

 

 

 

 

 

 

그나마 대웅전 앞에 있는 오층석탑이 강천사의 옛 시간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길쭉한 모양의 오층석탑은 전라북도 유영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후기인 1316년(충숙왕3)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탑에 손상이 많다. 지붕돌인 옥개석 곳곳이 깨져있다. 누가 소중한 문화재에 손을 댔는가! 총탄 자국이다. 강천사 오층석탑은 한국전쟁 때 총탄을 맞아 훼손됐다. 그러고보면 강천사에는 아직까지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듯하다. 이처럼 전쟁은 문화재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빨간 페인트로 칠해진 강천산 구름다리를 건넌 후, 구장군폭포를 향해간다. 구장군폭포는 강천산 탐방의 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장군폭포는 삼한시대 전쟁에서 패한 아홉명의 장군이 자결을 하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있는 힘껏 다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구장군폭포는 그 스케일에서 이전에 봤던 폭포들을 앞도한다. 높이 120미터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은 보기만해도 정말 시원할 정도니까.

하지만 구장군폭포도 앞서 언급한 병풍폭포처럼 인공폭포다. 2005년도에 인공폭포가 조성됐다고 한다.

 

자연폭포가 아니어서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암반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인공이어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시원시원한 맛에 많은 이들이 구장군폭포 아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필자도 무척 즐거웠다.

 

이렇게하여 강천산 탐방이 종료가 됐다. 사실 강천산은 단풍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가을이면 단풍을 보려고 많은 이들이 강천산을 찾는다. 너무 많이 찾아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필자는 강천산을 여름에 간 것이다. 여름에 가도 좋네! 역시 명산은 명산이야!

 

 

 

 

 

 

 

* 구장군폭포

 

 

 

 

 

 

* 강천산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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