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티아고순례길

 

 

 

<재미난 스페인 5편> 산티아고 순례길

도대체 순례길이 무엇이기에!

 

 

"왜 순례길에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죠?"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였다. 순례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외곽에 있는 산티아고 공항 부근을 걷고 있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온 미국인 순례객 부부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얻어마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남편분이 보온병에서 차를 따르며 저렇게 물으셨던 것이다.

답을 좀 망설였다. 솔직히 필자 스스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여기를 왜 오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또 뭐야?

"한국은 스트레스 사회입니다. 그래서 힐링이 필요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힐링을 합니다."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했는데 다행히 필자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떡이셨다. 이후로도 스페인을 여러번 갔었는데 갈 때마다 순례길을 걸었고, 그런 필자를 붙잡고 외국인들은 또 비슷한 질문을 했다. 왜 순례길을 걷는 한국 사람들이 많냐고?

그들이 보기에 필자는 전형적인(?)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딱봐도 엄청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단독으로 움직이며, 외국인들과도 스스럼없이 인사하는 모습이 여타 한국인들과는 다른 모습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답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저런 물음들 속에는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들을 좀 언짢게 생각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어떤 유럽에서 온 순례자는 필자에게 '한국인들이 꺼려진다'는 말을 직접 건네기도 했었다. 도대체 산티아고 순례길이 무엇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인가? 왜 일부 한국인 순례자들은 그 먼 스페인 땅까지 가서 회피의 대상이 되는가?

 

 

 

* 순례길표식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 접하는 분들도 있을테니 산티아고 순례길의 연혁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지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을 말한다. 산티아고(Santiago)는 스페인어로 야고보를 뜻하는데 예수의 12제자 중에 한 명이었다. 야고보는 현재의 스페인(에스파냐)과 포르투갈이 위치해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고향으로 돌아온 야고보는 헤롯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를 당하게 됐다. 12제자 중 첫 순교자가 야고보였던 것이다. 야고보에게도 제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스승의 시신을 돌로 만든 배에 실어 이베리아 반도로 향했다. 배 자체가 돌로 만든 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베리아반도로 온 야고보의 유해는 9세기 초반에 발견되고, 그곳에 성당이 들어서니 그 성당이 바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인 것이다.

이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3대 성지로 선포한다. 이에 유럽 각국의 순례자들이 프랑스 땅을 거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초반 순례길이 번성했던 시기는 11~15세기였는데 당시 이베리아반도에서는 국토회복운동이 진행중이었다. 이베리안반도 내에 있던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이슬람 무어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과 인적 교류가 끊길 수 있었음에도 순례길로 인해 명맥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다 16세기에 불어닥친 종교전쟁 이후로 쇠퇴하고 만다. 약 400년간 조용했던 순례길이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건 1982년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또한 5년 후인, 1987년에 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면서 순례길은 더욱더 주목을 받게 된다.

스페인 정국의 변화 요인도 한 몫 했을 것이다. 1975년에 독재자인 프랑코가 사망하고, 이후 스페인은 민주화 과정에 놓이게 된다. 히틀러와 협력하여 참혹했던 스페인 내전을 일으킨 프랑코가 아닌가? 그런 프랑코 정권 하에서는 순례길을 걷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1980년, 일부 정치군인들이 구체제 회귀를 목표로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신속하게 진압되고 만다. 그렇게 정치적인 위험 요인들이 제거됐기에 평화롭게 순례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순례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대성당

 

 

이렇게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았던 순례길은 1993년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파울로 코엘료가 걸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길은 프랑스길이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생장피에드포드(Saint-Jean-Pied-de-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를 걷는 길이다. 프랑스길 이외에도 북쪽길, 포르투갈길, 마드리드길 등등... 여러가지 순례길이 있는데 이들 모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종착점이다.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스위스에서 온 처자가 한국인 순례객들은 왜 다른나라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냐라는 물음을 해서 저렇게 답을 해줬다. 필자도 한국인이라 한국인에 대한 변호를 자임한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이 꺼려진다는 뜻일 것이다. 당시는 겨울철이라 순례객 자체가 별로 없을 때인데도 한국인들을 콕 짚어 이야기를 한 게 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혹시 그 스위스 처자는 한국인 순례객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일부 서양인들은 한국인 순례객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진 역사와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같다. 떼지어 다니고, 엄숙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떠들고... 뭐 이런 이미지로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듯하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반박을 하고 싶다.

'니들은 안 그러냐? 니들도 큰 소리로 떠들고, 엄숙하지 못하잖아. 그리고 순례길이라면서 뭘 그렇게 연애를 하고 다녀! 알베르게에서 낯뜨거운 장면들은 지들이 다 하면서...'

여기서 알베르게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를 말한다. 알베르게는 기숙사 침대같은 2층 침대가 놓여 있다. 그 좁은 침대에 남녀가 쏙 들어가 있는 경우를 꽤 여러번 봤다. 좀 낯뜨거웠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순례길: 프랑길 말고도 다른 순례길도 많다. 하지만 역시 프랑스길이 가장 메인이 된다.

 

 

 

* 순례길누렁이: 순례길의 표식인 조가비를 달고 있는 누렁이. 순한 녀석이었다.

 

 

 

또 야고보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잠들어 계신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일까? 야고보의 제자들이 돌로 만든 배에 시신을 실어 옮겼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되나? 그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지브롤터해협을 돌배로 건넜다는게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항해는 과학이자 기술이다. 그래서 '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이라는 말까지 오가는 것이다.

썩 달갑지 않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을수도 있다는 의문이 있으면서도 또 순례길에 발걸음을 하는 이유가 있다. 걸을수록 마음의 평화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로까지 확장되는 느낌까지 받았다.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화합의 악수가 건내지길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진정한 정신이 아닐까?

  

 

* 순례자의 그림자

 

 

 

* 순례자동상

 

 

 

* 산티아고순례길: 프랑스길

 

 

 

 

* 수녀원 알베르게: 성탄절 이브에 미사를 함께 보고, 작은 파티를 함께 즐겼다. 저기서 한국말로 '징글벨'을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데 이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것이다. 징글벨이 한국 노래가 아니었나?ㅋ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Carrion de los condes에 있는 Iglesia de Santa María del Camino 성당

 

 

 

 

* 2023년 12월 24일 일요일: 11일차 / 안개

- Carrion de los condes 알베르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루시아님은 여기서 약 30km 떨어진 Moratinos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난 여기서 Leon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 새벽 시간이었다. 속이 매시꺼우면서 울렁거렸다. 위장약을 꺼내 먹고 누웠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어 다시 소화제를 먹고 누웠다. 그래도 울렁거림은 여전했다. 화장실을 갔더니 구토 증상이 있어 크게 카~악을 했다.

- 솔직히 저녁에 뭐를 크게 잘못 먹은게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순례길 걷기는 여기까지... 라는 하늘의 계시인거 같았다. 구토를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뱃속에서 가스가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용트림 같은 카~악으로 뱃속이 편해지다니... 그것도 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용인가?ㅋ

- 새벽 6시 30분 경이었다. 루시아님은 Moratinos를 가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루시아님과 더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제 난 스페인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 Carrion de los condes 도착했을 때 분명 레온(Leon) 가는 버스가 있다는 걸 봤다. 그런데 이날은 없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배차가 있는게 아니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있는 거다. 더군다나 이날이 성탄절 전날이 아닌가! 당연히 버스가 없는 것이다. 알고보니 버스는 26일 화요일에 있다고 했다.

- 별 수 없었다. 나아갈 수도 없고, 그냥 수녀원 알베르게에 머무를 수밖에... 성탄절 주간을 이곳 수녀원 알베르게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오후 8시에 인근 성당에서 성탄 미사가 있어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참가를 했다. 사찰만큼이나 성당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 미사가 끝난 후에 알베르게에서 수녀님들이 작은 파티를 열어주셨다. 수녀님들이 '코리안 캐롤'을 부르라고 해서 '징글벨'을 한국말로 불렀다. 어쨌든 함께 박수를 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수녀님이 따라주신 샴페인도 맛났다.

- 이렇게 타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서로 격려해주고, 보듬어주고... 각박한 우리 삶에 한 박자 쉼표같은 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이다.

 

 

 

* Iglesia de Santa María del Camino 성당의 내부

 

 

 

 

 

* 2023년 12월 25일 월요일: 12일차 / 안개

- 크리스마스 당일이라 레온 가는 버스가 없었다. 그래도 바르(bar)는 열렸다. 성탄절에 바르가 열려 무척 고마웠음.

- 크리스마스였음에도 순례자들은 계속 Carrion de los condes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그 중에서 커피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 청년이 있었는데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칼디커피'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그 청년은 고향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 프랑스 리옹 출신 순례자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요리사란다. 이 요리사 순례자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다. 알베르게에서 프랑스 출신 셰프가 해주는 요리를 먹다니! 이 알베르게에서는 좋은 일들만 계속 일어났다.

- 나를 제외하고 총 5명의 순례객이 있었는데 이들은 프랑스 4명, 스위스 1명이었다. 이들이 한국인 순례객을 좀 꺼려한다는 말을 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난 한국인들을 변호했다. 영어나 스페인어가 안 되니 그런 거다.

 

 

 

* 프랑스 아재: 순례길 마니아인 그의 크레덴셜. 이 프랑스 아재는 순례길만 수십 차례 완주했을 정도로 순례길 마니아였다.

 

 

 

* 셰프: 프랑스 리옹 출신 셰프. 세프가 해주는 요리라서 그런지 맛이 달랐다. 싹싹~ 긁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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