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12월 11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및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세고비야 수도교





*여행 48일차: 2019년 1월 27일 일요일 맑음

1. 이제 마드리드로 이동할 일만 남았다. 버스터미널인 barocelona nord estacion은 호스텔에서 가까웠음. 마드리드까지는 버스로 약 7시간 30분 정도 걸렸음. 이제 장거리 버스는 별로 타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타야지!

2. 오늘은 그냥 이동일로 잡았음. 마지막 여정을 소화하려면 이정도의 수고는 해야하지 않겠나?

3. 버스 안에서 서로를 격정적으로 사랑하는 레즈비언 커플을 봤음. 뭐그리 입박치기를 격렬하게 해대는지... 무슨 야동 찍는 것도 아니고! ㅋ 애정에 휩싸인 남녀커플도 있었지만 그 레즈비언 커플에 비하면 약과였음. 버스는 공공장소 아닌가?

4. 7시간 30분 이상이 걸려 마드리드에 도착했음. 오전 10시 30분 버스를 탔는데 오후 6시 넘어서 도착했음. 그래도 버스에서 계속 졸아서 좀 지루한 감은 덜했음. 버스 요금은 약 33유로였음.

5. 이제 마드리도 인근 지역 일정만 소화하면 귀국이다. 남은 여정 잘 마무리합세!




* 세고비야 수도교: 면석에 구멍이 뚫려 있다. 




* 가위 크레인(?): 저 가위처럼 생긴 것으로 돌을 들어올렸다. 





*여행 49일차: 2019년 1월 28일 월요일 맑음

1. 전날 잡은 mad4you hostel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음. 이곳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는데 1층과 2층 침대 사이가 너무 낮았음. 1층 침대에 앉아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음. 그래서 새로운 호스텔로 이동함. 침대 좀 잘 만들지!

2. bastardo hostel이라는 곳에 체크인 했음. 이곳은 새로 지은 호스텔인 듯했음. 그래서 시설이 상당히 좋았음. 귀국일인 1월 31일까지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음. 가격도 무척 저렴했는데 3일간 총 38유로였음. 새로 지어서 그런가? 출입할 때 바코드를 찍고 들어갔음. 이거 상당히 신기했음.

3. 원래 이날 가려고 했던 아빌라는 시간관계상 가지 못하고 세고비아로 향했음. 5년 만에 다시 만난 세고비아는 정말 반가웠음. 장엄하게 서 있는 세고비아 수도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은 세고비아 대성당...

4. 5년 전에는 못봤던, 아니 그냥 눈길을 주지 못한 것이 있었음. 바위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임. 그래서 처음에는 스페인 내전 당시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음.

5. 그래서 잘난 척하는 마음에 인포메이션에 물어봤더니 면석을 쌓을 때 생긴 구멍이라고 했음. 가위같이 생인 집게가 바위를 잡아 올렸는데 꽉 물리게 하려고 일부러 면석에 구멍을 뚫었다고 함. 스페인 내전은 개뿔!ㅋ

6. 5년 만에 다시 찾은 세고비아 성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숙했음. 다른 대성당들과는 달리 고요함을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음. 성당 안 의자에 앉아 그냥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씻겨내려가는 느낌이었음.

7. 세고비아는 참 나랑 잘 맞는 도시였음. 세비야도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나는 '세'자 들어가는 도시랑 인연이 많은 건가?

8.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야로 가려면 지하철 3,6호선 moncloa역에서 내려 세고비야행 버스를 타면 됨. 왕복 티켓이 9.6유로 정도였는데 리턴 티켓은 오픈된 거라 세고비야 티켓 창구에서 승차권을 다시 교부받아야 함. 마드리드에서 발급된 티켓을 기사에게 보여줬더니 세고비야 터미널 티켓 창구를 가리키며 다시 교부받으라고 했음. 

9. 오후 9시경 숙소에 도착함.

 


* 수도교: 수도교의 물길. 가운데 네모난 홈으로 물이 흘러나갔다. 




* 세고비야 성당




 

 

세고비아의 자랑, 세고비아 성과 세고비아 성당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12편] 세고비아 2부

 

15.01.30 14:38 최종 업데이트 15.01.30 14:38

 

 

 

 

 

 

 

 

 
▲ 세고비아 성 일명 백설공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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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교의 지상 구간 관찰과 원거리 수원지 조망 등등... 세고비아 신시가지 일대 탐방은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친김에 '호랑가시 숲'이라고 불리는 수원지까지 가서 시작점을 직접 관찰해 보고 싶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대충이나마 시작점을 조망했으니 이제 종료점을 향해 가야 할 차례였다. 수도교의 종료점은 일명 '백설공주성'이라 불리는 세고비아 성(Alcázar of Segovia)이다.

 

 



'큰 시장'보다 더 북적거리는 '작은 시장'

 


세고비아 성은 구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그곳을 가려면 수도교와 아조구에호(Plaza de Azoguejo) 광장을 다시 거쳐 가야 했다. 스페인어로 '아조구에호(azoguejo)'는 '작은 시장'을 뜻하고, 마요르 광장(Plaza de Mayor)할 때 '마요르(mayor)'는 '큰 시장'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조구에호 광장보다 마요르 광장이 더 크고 북적거려야 하지만 세고비아에서는 좀 달랐다. 수도교 때문인지 '작은 시장'이 '큰 시장'보다 사람들이 더 붐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가는 데 돈 간다고, 실제로 작은 시장 쪽이 상권도 더 발달했다. 그러고 보면 건축물에도 새옹지마라는 속담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수도교를 두고 옛날 세고비아 사람들은 악마의 작품이라고 의문을 표시하며 경원시했지만 지금은 세고비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수도교가 잘 보이는 그 작은 시장에는 '코치니요'로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코치니요는 새끼 통돼지 요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통구이라면 고기를 나무꼬치에 꽂아 돌리는 것을 생각하지만 코치니아는 화덕에다 구운 요리다. 이 요리는 세고비아에 가면 꼭 한 번은 맛보아야 할 이 지역의 명물이라고 한다.

 

 

 


 
▲ 세고비아 성당 마요르 광장 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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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집 앞에서 필자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순례팀과 재회를 한 것이다. 순례팀은 막 점심식사를 하려는 순간이었고 필자는 광장을 가로 질러 그 맛집 앞을 지날 때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여기서 또 만나네요. 역시 만날 사람은 만난다니까요!"

헤어진 지 겨우 3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반가웠다. 단체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뚝 떨어져 나가듯 단독여행을 했으니 더 그 외로움이 더 컸고, 그래서 더 반가웠던 것이다. 순례팀도 마드리드 인근 도시를 탐방 중이었다. 마드리드 민박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인근 세고비아나 톨레도 같은 인근 도시들을 당일치기로 여행하고 있었다.

필자도 자리를 꿰차고 앉아 고기를 뜯고 싶었지만 이미 식사를 한 터라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대신 그날 밤에는 필자도 마드리드 민박집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밤에 봬요! 집에서!"

 

 


 
▲ 세고비아 성당 세고비아 성 방면에서 바라본 모습. 아래쪽에는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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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들의 놀이터 세고 비아 성당

 



세고비아 성을 가기 위해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마요르 광장에 있는 세고비아 대성당이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은 1525년부터 1577년까지, 52년 동안 건축된, 규모가 상당히 큰 성당이다. 노을이 질 무렵, 작은 첨탑들이 황새들의 놀이터로 이용될 만큼 세고비아 대성당은 뾰족한 고딕양식이 일품인 곳이다. 

현재의 세고비아 대성당은 옛 성당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옛 성당은 세고비아 성 인근에 있었는데 1520년에 발발한 코무네로스(Comuneros) 반란 때 파괴됐다. 코무네로스 반란은 당시 집권자인 카를로스 1세의 과중한 세금 부담 등에 반대하여 세고비아, 톨레도, 바야돌리드 등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봉기한 사건을 말한다. 이들 도시에서는 자치조직인 '코무니다드'가 만들어졌는데 그 구성시민들을 '코무네로스'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따서 코무네로스 반란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반란군들은 옛 성당을 접수하여 세고비아 성의 성벽부근을 방어하고 있는 카를로스 1세군을 격파할 생각이었다. 그런 공방전 끝에 옛 성당은 파괴되고, 5년 후 현재의 자리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듯 현재의 대성당은 건축 당시에는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자 지어졌고, 지금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대성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성당을 위에서 보면 3층짜리 아치형 지붕이 층층이 쌓아 올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스테인글라스들이 성당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에서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높이가 90m인 종탑이다. 이 종탑은 1614년에 세워졌는데 멀리서 보면 왕관을 올려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세고비아 시내를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 세고비아 좁은 세고비아의 구 시가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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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였던 세고비아  성

 



대성당을 뒤로 하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일명 '백설공주 성'이라고 불리는 세고비아 성을 향해갔다. 세고비아 성은 월트디즈니사의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됐다고 해서 그런 별명을 얻게 됐다.

애니메이션의 배경 모델이 될 만큼 세고비아 성은 매우 아름다웠다. 또한 독특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그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성이 들어서기 전에는 요새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 기원은 로마 점령기 이전의 셀티베리안(Celtiberians)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이곳은 수도교의 종착점이 될 정도로  로마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전략적 요충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즉, 거의 2000년 전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쓰였다는 뜻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무네로스 반란 때에도 이 일대는 격전지였다.

 

 

 


 
▲ 해자 세고비아 성의 해자.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변을 판 후 물을 채워넣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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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 성을 두고 안내책자에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 성이 '붕' 떠 있다는 것이다. 에레스마 강(Eresma)과 클라모레스 강(Clamores)이 휘돌아나가는 작은 협곡에 위치해 있는 이 곳은 연결다리를 폐쇄시키면 외부와는 격리가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였던 셈이다. 한편 그 옆을 흐르는 강들은 유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수도교를 건설해 그 먼 곳에서 물을 끌어 왔던 것이다.

그렇게 협곡 요새로 기능하던 곳이 13세기 이후부터는 왕이 거주하는 왕궁으로 변모 했고, 그 이후부터 수세기동안 증개축이 거듭되었다. 세고비아 성은 감옥으로도 쓰였는데 마드리드에 있던 왕실 법정이 옮겨옴에 따라 죄수들을 격리할 공간을 마련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세고비아 성은 1862년에 발생한 큰 화재로 거의 모든 게 파괴되는데, 20년 후 대대적으로 복원 공사에 나서게 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은 1882년에 재건축된 것이다. 한편 세고비아 성은 현재 왕립 포병학교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한쪽 면에는 각종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세고비아 성 성 앞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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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면 고생, 하지만 떠나야 하는 운명

 



세고비아 탐방을 마친 후 필자는 마드리드행 버스를 탔다. 이제 순례팀이 묵고 있는 한인 민박집을 향할 차례였다. 한인 민박집에서 순례팀을 다시 만나니 마치 가족들과 상봉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와중에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집 나가니까 고생이지?"

필자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떠나야지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게 우리의 운명이잖아요!"

 

 



 
▲ 세고비아 성 세고비아 성에 전시된 중세 기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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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는 약 90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2. 추천여행 노선: 터미널 → 수도교 → 세고비아 성당 → 세고비아 성
천천히 둘러보면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3. 시간이 되신다면 신시가지 방면에 있는 수도교 지상 구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정수장 안쪽의 정수시설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세고비아 수도교에서 느낀 절대음감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11편] 세고비아 1부

 

15.01.28 11:09   최종 업데이트 15.01.28 11:09
곽동운(artpunk)

 

 

 

 

 

 

 

 

 

 
▲ 수도교 구시가지 방면에서 본 수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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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와 '세고비아'는 무슨 관계?

 


평생 그곳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도시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 <카사블랑카> 때문에 유명해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재즈의 발상지인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 등등. 필자도 그런 도시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세고비아가 바로 그곳이다. 

예전에 통기타가 하나 있었다. 지인한테 물려받은 것인데 아무리 조율해도 그 음이 그 음 같은 그런 통기타였다. 그래도 열심히 튕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유시인까지는 못되더라도 좋아하는 후배 앞에서 폼 좀 잡아보겠다고... 그때 튕기던 기타가 바로 '세고비아 기타'였다. 그런 기억 때문에 세고비아는 필자에게 전혀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세고비아 기타는 유명 기타리스트인 안드레아 세고비아의 이름을 따서 상품명으로 삼았다. 안드레아 세고비아는 다른 악기용으로 작곡된 음악들을 기타 연주에 적합하게 편곡을 하는 등 현대 기타 연주의 대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안드레아 덕택에 '세고비아 기타'가 이름을 얻게 됐고, 그 상품명 덕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가 우리 귀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세고비아에 가면 안드레아와 관련된 기타 박물관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시 세고비아와 안드레아 세고비아와는 별 관계가 없다. 그는 남부인 안달루시아 출신이고 데뷔도 안달루시아에서 했다. 그냥 그의 이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 이름이 들어간 것뿐이다. <강철군화>의 저자 잭 런던처럼 그냥 사람 이름에 도시명이 포함된 것이다.

 


 
▲ 수도교 야경 상상력을 고조시켰던 수도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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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교와 절대음감

 


2014년 11월 17일, 여행 15일째

오후 6시에 발라돌리드에서 세고비아행 버스를 탔다. 두 도시의 직선거리는 90km도 채 되지 않아 늦어도 1시간 2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다. 그래서 세고비아에서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행이 계획대로만 진행되는가? 버스가 인근 동네 구석구석을 다 정차하고 다녔다. 심지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더 가관인 것은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는 점이다. 옆쪽에 있던 마드리드 청년이 일러주지 않았으면 아마 다른 행선지로 갔을지도 몰랐다.

결국 오후 8시가 넘어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긴장을 했는지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세고비아의 명물이라는 수도교(aqueduct)를 찾아갔다. 어차피 갈 거 미리 알아두고 다음날 꼼꼼히 살펴보자는 속셈이었다.  

"이야, 정말 환상적이네"

수많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수도교의 장엄한 모습이 화려한 조명 빛을 받아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책에서나 보던 로마시대의 수도교를, 그것도 조명이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밤 중에 보는 수도교의 아치는 리듬감이 살아 있는 듯했다. 로마네스크 기둥을 타고 오르는 선율이 아치에서 곡선을 그린 후 위층으로 올라가 고음을 잡는 그런 모습... 그렇게 아치 기둥을 타고 나온 음악은 어떤 것일까? 한 밤의 세레나데일까 아니면 카이사르 군대가 불렀을지도 모를 행진곡? 세고비아에 세고비아가 없다지만 필자에게는 수도교가 '절대음감'처럼 보였다. 시각의 청각화를 통한 음악 연상해보기! 어쩌면 이런 것도 여행의 재미다. 해당 유적에 상상력을 더해 본다.

 

 



 
▲ 수도교 신시가지에서 바라 본 수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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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의 기술력이 집약된 거대한 수도교

기둥: 120개
아치: 167개
관로: 25*30*30cm
총길이: 16,220km
최고높이: 28.10m
교량구간: 728m

수도교의 스펙이다. 수도교는 로마시대인, 기원 후 1~2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인들은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는데 세고비아도 그 중 하나였다. 정착지는 세워졌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세고비아는 넓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터라 대규모로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수원지와 거리가 멀었다. 수도교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로마인들은 외곽에 있는 프리오 강(Rio Frio)에서부터 중심부까지 수로(水路)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무려 16km에 달하는 수로가 만들어졌다.

수도교는 그 수로의 교량구간이다. 즉 16km 송수관 중 728m 정도가 아치형 다리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왜 수도교라는 교량을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냥 수로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하물며 시멘트도 없던 시대에 그런 거대한 구조물을 축조한다는 건 엄청난 공사였기 때문이다.

수도교를 잘 즐길 수 있는 곳은 아조구에호(Plaza de Azoguejo) 광장인데 그곳을 중심으로 양 옆쪽을 보면 왜 로마인들이 거대한 아치형 교각을 세웠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양 옆의 언덕으로 인해 광장은 협곡 형태를 띠게 된다.

이제껏 수로를 타고 온 물이 협곡으로 떨어지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 것이다. 협곡을 넘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인위적인 구조물을 연결하여 최종목적지까지 물을 도달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양편을 이으려고 하니 거대한 구조물이 나타났고, 교량 형식이니 아치가 그려졌다. 또한 협곡의 높이가 있으니 복층까지 올려 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고비아의 수도교가 탄생됐던 것이고, 그 가치를 높이 사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른다.

 



 
▲ 세고비아 세고비아 외곽에서 바라본 사진. 뒤쪽에 보이는 산에서 물길이 시작된다. 전날에 눈이 왔는지 봉우리에 눈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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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만든 수도교?

옛날 옛적에 이 거대한 교량은 악마의 구조물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접착제도 없이 큰 돌조각들이 무지개를 그리며 놓여 있으니, 눈앞에서 보고도 그런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전설이 하나 있다.

 

매일같이 물 주전자를 들고 비탈진 길을 오르내려야 했던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일이 고된 나머지 소녀는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자신의 집까지 물길을 내주겠다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기에 이른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소녀는 비극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열렬히 기도를 하게 된다.

그동안 악마는 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태풍이 발생하여 일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새벽닭이 울게 됐는데 그때 악마는 돌조각 하나만을 세우지 못한 채 건축물을 다 완성시킨 상태였다. 돌조각 하나 때문에 거래는 무산됐지만, 수도교는 온전히 그 자리에 생성됐고 소녀의 영혼도 빼앗기지 않게 됐다.

소녀는 마법 같았던 지난밤의 일을 세고비아 시민들에게 실토하게 됐고, 이에 사람들은 아치를 통과한 물은 유황 성분이 제거된 성수라고 여기며 새로운 건축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전설에도 내포되어 있듯이 옛날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대한 수도교가 경외적인 존재였을지 모른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축조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수도교가 자신들의 식수를 공급해주고 있으니, 그 존립 자체를 인간 영역 밖에서 끌어오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도교를 두고 거대한 '마법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고비아 시민들은 19세기 중반까지 그 '마법덩어리'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 수로 수로의 지상구간. 수도교의 맨 위쪽에도 이런 관로가 놓여 있다. 사진 중앙, 관로가 끝나는 부분에 있는 건물이 정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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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 시설까지!

기둥들을 따라서 가봤다. 수로의 지상구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세고비아는 수도교를 중심으로 그 안쪽은 구시가지이고, 그 밖은 신시가지로 분류된다. 수로의 지상 구간은 신시가지쪽에 있었다.

한 10분 정도를 걷다보니 정수장과 함께 드디어 지상구간이 나왔다. 전설에 유황이 제거됐다고 언급됐듯이 정수장도 수도교와 함께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정수는 이물질을 물에 침전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정수장에는 심도가 깊은 물탱크를 만들었는데 그 물탱크에 모래나 황 같은 불순물들을 침전시키고, 깨끗한 윗물만 빠져나가는 식으로 정수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다. 간단한 구조였지만 그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상 구간의 수로는 말 그대로 수로였다. 화강암을 깎아내고 그 위에 25*30*30cm 규격의 홈을 파 내 관로를 삼은 것이다. 수도교의 맨 위 부분도 그렇게 관로가 놓여 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던 대목이었다.

지상 구간을 탐방하다 길을 잃고 말았다. 궁금했던 것들이 풀려나가는 재미에 빠져 있다 보니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덕분에 세고비아의 신시가지를 갈지(之)자로 마구마구 돌아다녔다. 그렇게 다니다보니 수로가 시작되는 산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눈이 왔는지 산봉우리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전날에는 수도교에 상상력을 더했다면, 그날은 수도교를 더 면밀하게 탐구한 날이 됐다. 문화유적 앞에서 멋지게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그 문화유산에 상상력도 더해 보고, 더 꼼꼼히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다. 여행의 큰 재미. 세고비아 여행은 다음편으로 계속 이어진다.   

 

 

  

 
▲ 정수장 신 시가지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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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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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하고 경찰서 가고... 그렇게 스페인에 왔다

 

[22일간의 스페인 여행기①] 산티아고 순례길, 확 질러버렸다

 

14.12.13 20:46  
최종 업데이트 14.12.13 20:46
곽동운(artpunk)

 

 

 

 

 

 

 

 

지난 11월 3일~25일까지, 22일 동안 스페인과 핀란드를 여행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수도 마드리드와 그 인근에 있는 도시들을 방문했습니다. 스톱오버로 방문한 핀란드에서는 헬싱키를 탐방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약 10회에 걸쳐 담아보려고 합니다.... 기자말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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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그 곳을... 그 돈이면 국내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돈인데...'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을 제안 받았을 때 필자는 좀 멈칫했다. 도보여행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제안 받았는데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트레킹 '바닥'에서 먹고 살려면 분명히 한 번 이상은 가야 할 곳이고, 버킷리스트에도 상위에 링크돼 있는 그 산티아고 순례길 트레킹을 확 낚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인생사 타이밍, 갈 수 있을 때 가자!


왜? 일단 돈이 없어서 그랬다. 달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카드 귀신'을 물리치기도 역부족인데 해외여행이라니! 또한 아직 국내도 가본 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은 터라, 국내에서 내공을 많이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국내와 서로 비교대조를 하면서 길을 걸어야 할 테니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갈 수 있을 때 가! 나중에는 여건이 돼도 못 갈 수도 있어!"   

주저하는 필자에게 여행 제안을 했던,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 일침을 가했다.

그 말이 맞다. '인생사 타이밍'이라고, 이거다 싶으면 확 낚아채야 한다. 질질 끌다가는 손에 남는 건 그저 허송세월뿐이다. '카드 귀신'이야 허리띠 졸라매면서 틀어막으면 되는 것이고, 국내와의 비교대조는 그간 역사트레킹 리딩을 하며 익힌 지식을 써먹으면 될 테니까!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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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일.


필자는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여정이라 비행기에서만 약 15시간 정도 머물러야 했다. 좀이 쑤시고, 발이 저려오는 것을 참으며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을 찾고, 화장실을 가고 했더니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스페인이 남부유럽이라고 하지만, 11월 마드리드의 밤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필자의 마음속에도 찬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될 판이었기 때문이다. 손성일 대장을 위시한 본진들은 그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도착할 예정이었고, 필자는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홀로 선발대(?)가 되어 공항 벤치에 자리를 깔아야 했다. 픽업을 해주는 한인민박집에서 1박을 하면 만사 '오케이'가 되겠지만 첫날부터 과소비(?)를 할 수는 없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마드리드 공항에서 노숙을


공항보안 요원들이 필자의 앞을 지나다니며 '쑥떡쿵' 거리기는 했지만 못 본 척하고 그냥 자리를 깔았다. 공항 내부는 춥지가 않아 그럭저럭 버틸 만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벤치에 있는 손잡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벤치를 침대처럼 쓸 생각이었는데 칸칸이 있는 손잡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몸을 옆쪽으로 꾸부정하게 만들어 배낭을 앉고 잠을 청했다. 

11월 4일.

필자는 터미널 4(T4)에서 노숙을 했는데, 이 T4는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Richard George Rogers)의 작품이다. 리처드 로저스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1977), 영국 그리니치 밀레니엄 돔(1999)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들을 많이 설계했다.

 

 


 
▲ 마드리드 공항 마드리드 공항에서 자리를 깔고 노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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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완공된 T4는 매우 독특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건물 전체를 '통유리'로 감싼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연광을 듬뿍 받을 수 있을 뿐더러 유리 너머로 이착륙하는 항공기들도 감상할 수 있게 설계됐다. 로저스의 건축 철학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반영되어 T4는 시야가 확 트인 공항청사로 태어난 것이다. 


'사람'을 우선시한 로저스의 건축 철학 때문인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너무 맛있게 잠을 자서 예정시간보다도 더 늦게 일어날 정도였다. 그래서 서둘러 본진이 도착하는 터미널 2(T2)로 이동해야 했다.

EU 지역은 하나의 존(zone)으로 묶여, 나라가 다르더라도 국내선 개념으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 T4는 국내선 청사로 분류되었는데 그래서 필자는 별다른 절차 없이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보안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너무 쉽게 게이트를 빠져나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핀란드 헬싱키에서 스페인 입국심사를 받았던 것이다. 핀란드 출입국 직원이 차가운 음성으로 '왜 스페인과 핀란드를 방문하냐'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그렇다 쳐도 스페인은 지가 무슨 상관이야? 지가 핀란드 사람이지, 스페인 사람이야?"

그때는 이렇게 투덜댔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진이 도착할 T2는 비유럽권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도착하는 터라 따로 입국수속을 밟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은 단일청사라 항공편에 따라 터미널을 이동하는 불편이 없어서 좋다. 공항 벤치에 개별손잡이가 없어 노숙하기도 편하고.

 

 


 
▲ 마드리드 지하철 전동차 내에 광고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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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가 있는 마드리드 지하철

 


늦잠을 자서 그랬는지 본진과 합류하여 지하철을 탔을 때는 한창 출퇴근 시간에 걸리고 말았다. 우리 일행이 가야 할 곳은 마드리드 북쪽에 위치해 있는 차마르틴(Chamartin)이었다. 그곳에는 차마르틴 역이 있는데 거기서 기차를 타고 사리아(Sarria)로 가야했다.

우리나라 지하철과 달리 마드리드 지하철은 광고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성형광고들로 점령(?)된 우리나라 전동차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짭짤한 광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간을 그냥 여백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며 성형수술을 '권장'받는 한국인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혼자 속삭였다.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지... 외모가 전부냐!'

드디어 차마르틴 역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에서 우리의 서울역에 해당되는 곳은 중앙역이라 불리는 아토차(Atocha)역이고, 차마르틴 역은 청량리역 정도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 역은 주로 스페인의 북부지역과 연결된다.

 

 


 
▲ 스페인 경찰서 스페인에서는 경찰을 폴리시아(policia)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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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부터 스토리를 만들었다!


"어, 내 스마트폰?"

시차적응이 안 된 건지, 아니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게 한 것인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분실했다. 배낭까지 다 들어내서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 곳이 좀 도둑이 들 끊는 마드리드라는 사실을, 더군다나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허둥지둥 대는 필자에게 손성일 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첫날부터 스토리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빨리 잘 찾아봐!"

그 말대로 스토리를 만들고 말았다. 그냥 소매치기들한테 스마트폰을 헌납할 수가 없어 경찰서를 찾아갔다. 스페인어도 못하면서 그냥 찾아갔다. 그냥 분실신고서 하나 작성하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들어간 것이다.

사무실에 있던 현지 경찰관은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돌려,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순간 긴장했다.

'나도 영어 못하는데!'

전화를 받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 전화상으로 심문을 받는 듯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스페인 경찰의 한숨 소리가 이렇게 들리는 듯했다.

'어이 동양친구, 왜 이리 영어를 못 해. 너 영어실력 다 바닥났어!'

결국 스마트폰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 내내 필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답답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조차도 적응이 되었다.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만큼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보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첫날부터 스토리가 작성됐다. 하지만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필자 앞에 펼쳐졌으니까.

 

 


 
▲ 스페인의 땅끝 스페인의 대서양쪽 땅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Fist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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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교 로마시대에 건립된 수도교. 마드리드 인근인, 세고비아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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