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8편> 불암산이 부처님 산이라고? _ 불암산 역사트레킹

 

 

 

* 불암사 뒤편 마애삼존불: 12지상이 호위하듯 서 있다.

 

 

 

 

 

 

 

- 목적없이 그냥 트레킹을 하는 것이 좋으신가, 아니면 주제성이 확실한 테마트레킹이 좋으신가?

 

수강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테마트레킹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계신분들은 어떤 것이 좋으신가?

 

역사트레킹은 역사를 중심에 둔 테마트레킹이다. 역사트레킹이 거듭될 때마다 점점 더 큰 욕심이 생겼는데 테마의 강도를 더 높이고 싶은 욕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맨 처음 구체화한 것이 내사산(동: 낙산, 서: 인왕산, 남: 남산, 북: 북악산) 테마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외사산(동: 아차산, 서: 덕양산, 남: 관악산, 북: 북한산)으로 확장시켰다. 내사산, 외사산의 테마가 종료되니 새로운 주제에 대한 갈증이 일어났다. 그러다 목탁을 치듯 무릎을 쳤다. 사찰이 있었던 것이다.

 

 

 

 

 

 

* 불암사 일주문

 

 

 

 

 

 

● 부처님의 형상을 한 불암산

 

이번에는 불암사 역사트레킹이다. 불암사는 불암산에 있는 사찰로 동불암(東佛巖)으로도 불리는 서울근교의 4대 명찰이다. 4대 명찰을 알기 쉽게 정리를 해보자. 동쪽 - 불암사, 서쪽 - 진관사, 남쪽 - 삼막사, 북쪽 - 승가사.

불암산 역사트레킹은 서쪽편인 서울시 노원구에서 시작하여 동쪽편인 경기도 남양주시로 넘어간다. 그러니 불암산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는 게 먼저다.

 

필암산이라고도 불리는 불암산(해발508미터)은 이웃한 수락산과 더불어 바위가 많은 산이다. 거북바위, 해골바위, 백바위 등등... 형형색색의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불암산이라는 명칭도 바위의 형상에서 도출됐다. 정상부 바위의 모습이 마치 송낙을 쓴 부처님의 모습처럼 보인다하여 불암산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송낙이 뭐지? 어려운 명칭이 나왔으니 잠시 정리하고 가자. 송낙은 송라립(松蘿笠)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여승들이 쓰는 모자를 말한다. 이 송낙은 소나무의 겨우살이인 송라를 엮어서 만드는데 얼핏 보면 지푸라기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양은 전체적으로 고깔모자처럼 생겼으나 맨 윗부분은 두상에 맞춰져 평평하다.

 

이렇게 설명해도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조각 피자를 생각해보시라. 먹음직스러운 조각 피자를 먹으려고 딱 준비를 했는데 누가 냉큼 한 입 베어 먹은 것이다. 조각 피자의 삼각뿔이 없어지고 마음은 아프고... 송낙을 쓴 부처님의 형상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곳은 불암산의 동쪽편이다. 그러고 보면 불암산은 부처님 자체인 거 같다.

 

“불암산, 불암산 하는데 이 산이 최불암 산이에요?”

“그럴 수도 있어요. 최불암 선생이 이 산의 명예 산 주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최불암 선생님은 좋겠어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도 하고, 산 주인도 하고요.”

“저도 정말 부러워요. 하하하”

 

 

 

 

 

 

* 불암사 가는길

 

 

 

 

 

 

 

● 불암산의 다른 이름, 필암산

 

불암산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마다 꼭 나왔던 말들이다. 물론 최불암 선생의 본명은 따로 있다. 최영한. 하지만 우리에게 최불암은 최불암이다. 송해 선생이 본명인 송복희가 아닌 송해로 우리에게 각인된 것처럼.

앞서 언급한 필암산(筆巖山)이라는 명칭도 살펴보자. 필(筆)자는 ‘붓필’인데 이 일대는 문방사우와 관련된 지명들이 나타난다. 인근에 있는 중랑구 묵동이 대표적이다.

 

묵동은 먹(墨)을 만드는 동네라고 하여 먹골로 불렸다. 먹골배가 생각나시나? 먹는다고 먹골배가 아니라 먹을 만든다고 먹골이었던 것이다.

 

노원구 월계동에는 ‘벼루연(硯)’자를 쓴 연촌(硯村)이 있었다. 이 곳은 ‘벼루말’이라고도 불렸는데 동네에 벼루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종이, 붓, 벼루, 묵. 문방사우(지필묵연) 중에 종이만 빼놓고는 다 나왔다. 기왕이면 종이와 관련된 지명까지 만들어서 완전체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일부러 완전체를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문방사우와 관련된 지명을 배치했다면 종이지(紙)와 관련된 동네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가 가장 먼저 나오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필, 묵, 연의 지명을 쓴 건 이 일대의 지기(地氣)를 꺾기 위한 풍수적인 의도였다는 설도 있다.

 

 

 

 

 

 

* 불암산

 

 

 

 

 

 

 

● 숲길이 좋은 불암산

 

서론이 길어졌다. 불암산 역사트레킹은 4호선 상계역에서 시작한다. 바위가 많은 산을 골산(骨山), 흙이 많은 산을 육산(肉山)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따르면 불암산은 골산이다. 설악산이 대표주자로 많이 언급되듯이, 골산은 ‘악’자가 많이 따라붙는다. 치악산, 관악산, 월악산 등등... 이런 산들은 입에서 ‘악’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골산임에도 불암산은 어렵지 않게 탐방할 수 있다. 해발고도가 508미터로 그리 높지 않기도 하지만 딱히 ‘악’ 소리를 입에 달고 오르는 구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트레킹은 정상을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악’ 소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현재 불암산의 서쪽은 서울둘레길 1코스(수락불암)에 포함되는데 완경사를 따라 걷는 길이 참 좋은 곳이다. 숲도 울창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많은 이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곳이다. 숲이 우거진데다 흙길도 잘 정비되어있어 명품 숲길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숲길을 따라 걷다 둘레길 전망대에 올라 불암산 정상쪽을 바라보자. 암반면이 노출된 암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위들이 정말 매끈하지 않습니까? 저 위에서 쭈욱따라 미끄럼 타고 싶어요.”

“그래요. 말 나온 김에 시범을 보여주세요.”

 

재치 9단인 수강생들 앞에서는 농담도 조심해야한다.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저기보세요. 저 높은 바위에 뭐가 매달려있어요. 그리고 또 움직여요.”

“정말 그러네요. 저거 사람이에요? 어떻게 저길 올라갔데요.”

 

그곳은 학도암장이다. 그렇게 움직이는 이들은 암벽등반을 하는 이들이다. 로프에 몸을 싣고 암벽을 타는 이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 멋있어 보인다. 필자는 암벽을 탈 용기가 없다. 그냥 걷는 게 좋다. 그래서 트레킹을 한다. 참고로 학도암장 정상부에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신라 시대에 만든 불암산성을 만날 수 있다.

 

바위가 많은 산은 사람들을 상상의 날개를 펴게 만든다. 바위의 형상이 조금이라도 무언가와 비슷하다면 해당되는 이름이 붙게 된다. 해골바위, 거북바위, 범바위 등등... 거시기한(?) 바위도 있다. 남근석이나 여근석이 바로 그것이다. 불암산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는데 그 모양새가 꽤 사실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군다나 두 바위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여 음양의 조화를 제대로 펼치고 있는 모양새다. 다른 지역에는 남근석만 있거나 반대로 여근석만 있어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불암산은 그걸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천보사: 대웅전과 코끼리바위

 

 

 

 

 

 

 

 

● 하늘의 보물을 품은 천보사

 

이제 천보사 방면으로 이동한다. 불암산은 필암산 이외에도 천보산(天寶山)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천보산이라는 명칭은 세조가 지었다고 한다. 세조가 이 일대를 유람하다 아름다운 풍광에 매혹되어 천보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물음표부터 떠오른다. 불암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천보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산이 두 개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명한 회암사지가 자리 잡고 있는 양주의 천보산이고, 다른 하나는 의정부의 북쪽에 위치한 천보산이다. 이 둘은 하나의 맥으로 연결되어 있긴 한데 그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다.

 

해발고도도 다르다. 양주의 천보산이 432미터이고, 의정부 천보산이 337미터이다. 이미 기존에 천보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산이 있는데 굳이 세조가 또 천보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가람을 품고 있는 산의 명칭이 어찌됐든 천보사는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사찰이다. 하늘의 보물을 품고 있는 있다는 뜻 아닌가.

 

천보사는 천연보궁(天然寶宮)이라고 불린다. 법당 뒤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코끼리바위가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풍바위처럼 비교적 평평한 암석면에는 마애불을 그려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창 선운사 마애불을 생각해보시라! 하지만 천보사는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암석을 부처님으로 보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천연보궁이라고 칭한다.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한 번 바라보세요. 저 바위에 부처님이 깃들어 계신데요.”

“잘 안 보이는데요.”

“마음속에 불심이 없으셔서 그런 거에요. 불심이 있으면 보입니다.”

“곽작가님은 보이세요? 설명 좀 해주세요.”

“아니... 제가 사실은 제가 시력이 안 좋아서...”

“피이... 자기도 못 알아보면서.”

 

그랬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더라도 부처님이 보이지 않더라. 물론 근래에 새겨놓은 석불좌상은 잘 보였다. 하지만 천연보궁에 깃든 부처님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필자에게는 부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불심이 없었던 것이다.

 

- 모든 돌은 그 내부에 조각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조각가의 일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말이다. 이 말에 의하면 모든 바위는 부처 바위가 될 수 있다.한낱 중생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다. 천보사 코끼리바위에서 육안으로 부처님을 찾기보다는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게 더 좋을 거 같다. 아니면 바위에 ‘자비’ 두 글자를 그려 넣어도 좋을 것이다. 조각이든 글씨든 뜻이 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코끼리 바위를 품고 있는 천보사는 그 자체로 절경이다. 그 아름다운 사찰에서 내려 보는 풍광도 아주 시원스럽다.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의 보물을 품고 있는 사찰이 맞다. 사찰을 떠나기 전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천보사 5층 석탑을 꼭 보고 오자. 천보사의 역사가 짧지 않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천보사

 

 

 

 

 

 

 

● 서울이 4대 명찰, 불암사

 

이제 마지막 탐방지인 불암사(佛巖寺)로 향한다. 천보사에서 불암사까지는 산길로 연결이 되어 있다. 좁은 오솔길을 걷는 맛이 참 좋다. 그런데 좀 위험한 구간도 있으니 발걸음을 조심하자.

 

불암사는 지증대사가 후기 신라시대인 헌덕왕 16년(824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불암사는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동불암이라고 불렸다. 서울 근교 4대 명찰은 세조의 명에 의해 지정된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재위 기간에 자신의 아들(의경세자)과 손자(인성대군)가 죽는 등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자신도 여러 가지 병치레를 했는데 금강산이나 오대산 같은 강원도 지역의 명산들에서 요양을 했기에 반드시 서울의 동쪽 지역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조가 천보사의 명칭을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세조는 그런 시련을 불심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도성밖 사방에 왕실의 발전을 기원하는 4대 명찰을 지정하게 된다. 동쪽 - 불암사, 서쪽 - 진관사, 남쪽 - 삼막사, 북쪽 - 승가사.

 

불암사에는 보물 제591호 불암사경판이 전해 내려온다. 이중 <석씨원류(釋氏源流)>라는 책을 찍은 목판이 있는데 이 <석씨원류>는 조선 후기 불교의 대중적 확산에 공헌을 했다고 한다. <석씨원류>는 중국에서 간행된 책으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일반 민중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중간에 그림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이 책은 1631년(인조9년), 정두경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 가져왔는데 승려 지습이 1673년에 불암사에서 판각했다. 이후 <석씨원류>가 퍼져나갔고, 사찰 건물의 내외부에 부처님의 행적을 담은 불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그림만큼 좋은 교화 도구도 없었을 것이다. 성당에 그려진 성화들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1989년 불암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게 된다. 태국에서 3과, 스리랑카에서 4과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진신사리보탑을 건립하게 된다.

 

- 머리에 송낙을 쓴 부처님의 형상

- 부처님의 행적을 담은 <석씨원류> 목판

- 부처님의 사리를 담은 사리탑

 

서울의 4대 명찰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귀한 것들이 많기에 동불암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하산을 할 시간이다. 제월루 앞에 있는 천보산불암사사적비도 놓치지 말고 보고 가자. 사적비는 1731년(영조7년)에 만들어졌다. 1994년에 만들어진 일주문에도 천보산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하여 불암산 역사트레킹이 종료가 됐다. 좋은 숲길을 걸으며 귀한 문화유산을 만나서 그런지 마치 하늘에서 보물을 선물 받은 거 같다. 덕분에 즐겁게 역사트레킹을 행했다.

 

 

 

 

 

 

* 불암사

 

 

 

 

 


 

 

 

 

 

 

■ 불암산 역사트레킹

 

1. 코스: 전망대 ▶ 남근석 ▶ 여근석 ▶ 천보사 ▶ 불암사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4시간(휴식시간 포함)

4. IN: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 / OUT: 불암사 ☞ 202번 버스종점에서 6호선 화랑대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음.

 

 

 

 

 

* 불암산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