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겨레21]
[레디 액션!]

뭐 서평을 쓰자고? 세상살이에 바빠 책 한 권 읽기도 힘든 마당에 책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고? 이거 너무 무리한 ‘레디 액션’이 아닌가. 맞는 말이다. 독서다운 독서를 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책읽기를 넘어 서평을 써보자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온라인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책은 부차적인 정보취득원일지 모른다. 간단한 키워드 검색만으로도 평생 섭렵할 수 없는 자료가 쏟아져나오는데 해당 정보를 찾으려 굳이 책장부터 뒤적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수갑’처럼 콱 쥔 스마트폰은 또 어떤가?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어지러운 온라인 지식을 걸러내고, 심도 있는 정보를 구체화하는 데 아직 책보다 더 뛰어난 지식의 도구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까? 앞서도 언급했듯이 서평을 쓰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서평을 쓰면 적극적으로 책읽기를 하게 된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라도 밑줄을 긋거나 메모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능동적인 독서 행위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능동적으로 독서에 임하다보면 책에 더 집중할뿐더러 지은이가 말하는 바를 잘 깨닫게 된다.

 

 

 

 

 

 

 


 

독자가 천재가 아닌 이상, 아무리 재밌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책장을 덮을 때부터 한줄 한줄 사라지다 나중에는 자신이 그 책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가물가물해진다. 하지만 서평을 쓰다보면 구체적인 문장은 사라질지언정 저자가 말하는 큰 틀은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서평쓰기는 바다에 던지는 그물과도 같다. 작은 물고기는 놓치더라도 큰 녀석만큼은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서평쓰기에는 특별한 격식이 필요 없다. 전문적인 평론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이 가는 대로 작성하면 된다. 예를 들어 책 내용 중에 중점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부분을 기술하고, 왜 그 부분을 부각시켰는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 된다.

잘 작성된 서평을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게재해보자. 그러면 지식나눔이 되는 것이다. 그 서평을 통해 네티즌과 알차게 소통할 수도 있다. 누가 아는가? 서평을 열심히 쓰다보면 인터넷 서평꾼 ‘로쟈’처럼 되어 이름을 날릴 수도 있을지. 물론 그렇게 되려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지만 말이야.

 

곽동운 독자


*‘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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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파묻은 진실 발로 뛰며 파헤쳐
[한겨레 2006-08-25 14:54]    

 

 

[한겨레] 나는 이렇게 읽었다/<전선기자 정문태 16년간의 전쟁기록>

 

 

 

 

이 책에서 독자들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건 ‘전선기자’라는 말일 것이다. 지난 16년간 전쟁터를 누빈 정문태는 종군기자라는 통상적인 호칭을 과감히 거부하고 자신을 전선기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부분은 미군의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록이었다. 2005년 11월, 미 해병대에 의해 발생한 이라크 하디타 학살이나 최근 공개된 1950년 당시 미국 대사였던 무초의 편지글은 정문태가 기록한 민간인학살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미군의 전쟁범죄는 1950년대나 지금이나 작동방식이 같다는 말이다. 즉 무차별적인 학살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상을 잘 모른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대표적이다. 폴포트의 크메르루즈 집권시 200만명이 죽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1984년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킬링필드>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영화 <킬링필드>는 75~79년까지 집권세력인 크메르루주가 동족 200만명을 학살했다는 걸 토대로 삼았다. 그러나 정문태는 킬링필드가 69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베트남과 국경이 맞닿은 캄보디아는 당시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무려 60만명 이상이 죽었다. 미군은 네이팜탄 등과 같은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폭탄으로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폭격 임무를 안고 날아갔으나 어디에도 군사 목표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장을 공격 목표물로 삼았다.” 당시 폭격임무를 수행한 B-52폭격기의 파일럿이 오죽했으면 이런 증언을 했겠는가.

  

 

놀랍지 않은가? 우리 일반사람들 인식 속에 69~75년 기간의 1차 킬링필드는 인지조차 안 되고, 오직 2차 킬링필드에만 초점이 맞춰진 터라 미군의 전쟁범죄는 ‘내 머릿속 지우개’가 돼 버린다. 현재도 국내 언론들의 킬링필드에 대한 보도 관행은 영화 <킬링필드> 수준이다. 크메르루즈의 학살 책임을 묻는 만큼 미군의 학살책임도 짚고 넘어가야 옳은 일이 아닐까?

   

 

미군에 의한 학살은 이렇듯 무차별적이었고 미디어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면 목표물이 적대행위 대상자든 민간인이든 그건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은 어땠을까? 노근리는 단면에 불과하다. 무차별 폭격과 사격이 특정지역에서만 발생했겠는가? B-29로 융단폭격을 가한 익산역 폭격, F-86으로 공격한 단양 곡계굴 폭격, F-80으로 기총사격한 사천 조장리 난민캠프 학살…. 이 외에도 수많은 곳에서 미군학살이 발생했다. 이라크, 캄보디아, 베트남에 비해 더하면 더했다.

 

 

한국전 당시 이렇게 많은 학살이 있었음에도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미디어 ‘덕택’이다. 그런 면에서 “심지어 자신을 전장으로 보낸 언론사도 배신하고 시민 편에 서야 된다”는 말까지 하는 정문태 기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연호 기자가 90년대 내내 노근리에 대해서 알리고 또 알렸지만 눈길 한 번 안 주다가 AP 통신에 의해 노근리가 밝혀지니 그때서야 열심히 취재경쟁에 나섰던 국내 언론사들의 한심한 작태를 상기하면서 <전선기자 정문태 16년간의 전쟁기록>을 읽는다면 더욱더 감칠 맛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곽동운/자유기고가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앗! 2006년 8월에 기고한 글이네요. 곽작가, 제 사진이 저렇게 걸려 있네요. ~ㅋ

 

 

 

 

 

 

 

 

 

 

 

 

 

 

 

 

 

 

 

 

 

 

 

 

공선옥,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의 표지

 

 

 

 

 

*** 예전에 기고했던 기사를 여기다 올려봅니다. 날짜를 보니 벌써 7년 전이군요!

에궁~ 이제 한 달 후면, 2013년인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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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오마이뉴스 곽동운 기자]안녕하세요? 공선옥 작가님!

 

녹음이 짙어지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평안하신지요? 지금 춘천은 참 아름답겠네요. 아아! 곧 전주로 이사를 간다고 하셨지요. 전주도 참 멋들어진 곳이지요. 비빔밥도 맛있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형식에 대해 한마디 합니다. 서평을 이렇게 편지글 형식으로 작성해 보는 게 처음입니다. 서평을 편지 형식으로 쓴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은 없겠죠? 객관성을 중시하며 각종 자료들이 동원되는 서평 글은 서평자의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 균형감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딱딱한 문체가 별로죠. 서평을 꼭 논문 쓰는 것처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 공선옥 산문집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 표지
ⓒ2005 당대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전편에 흘러넘치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작가님의 시선은 너무나 따사로웠습니다. 그 품에 안기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카드 빚에 내몰리고, 재개발에 내몰리고, 가정 파탄으로 내몰리고… 우리네 고단한 서민들의 아픔을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당신의 착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작가님은 '아름다운 노래 따위 나는 부를 수 없다'고까지 하셨지요. 작가님은 "나도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 예술 한번 하고 싶었다. 예술. 그러나 나는 그렇게도 소원이던 예술을 이제와 포기하여 한다"며 괴로워하셨지요. 또,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아, 백죄 그러지 말아라.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아, 입 좀 닥쳐라"라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그건 소외받은 이웃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절대 외칠 수 없는 절규입니다.

 

 

<사는 게...> 중에서 제가 가장 숨죽이며 읽었던 부분은 "사랑은 가고 '러브'만 남은 이 휘황한 밤에"였습니다. 가난한 열여덟 살 청년이 택시기사의 사납금 10만원을 뺏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또 이혼한 장애 여성이 단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하는 부분에서는 제 입술을 깨물어야 했습니다.

 

 

 

 

이 책 전반에 흐르는 키워드는 빈곤과 소외, 그에 따른 고단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 이외에 사람들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더군요. 뭐 작가님 자신과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몇몇 분이 계시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사는 게...>는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 속에서도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들도 꿈틀거린다고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서평이라고 할 수 없겠죠. 책에 대한 냉엄한 평가는 오간데 없고, 칭찬 일색이니. 일반독자에 의한 주례사 비평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음 부분부터는 작가님을 위한 제 나름대로의 쓴소리를 적어보았습니다. 작가님과 제가 사회를 보는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이 책을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신문 사회면 중에서 '경악스러울'만한 팩트를 추리고 거기에 '좋은 생각'을 접목해 놓은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고통스런 환경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대미를 장식하는 식이지요.

 

 

여기에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 고단한 이웃들의 삶 자체가 사색의 대상이 되는 만큼 그에 따른 합당한 대안 제시도 필요합니다. '그게 지식인의 책무'라는 말은 너무 흔하죠?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자는 작가님에게 빈곤을 이용해먹는다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전 작가님이 그 비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 못지않게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끈을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생생한 현장 기록들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또 전 결코 대안 지상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작가님에게 합당한 대안 제시를 요구하는 건, 대안이 빠진 <사는 게...>의 내용은 자칫 신문 사회면의 동어반복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그 나름대로의 생명력이 충만함에도 작가님의 기록들과 사색이 2% 부족 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모습은 빈곤에 대한 지식인의 알량한 연민으로 내비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그렇게 꺼리는 '예술'을 하고 있다고 오해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한 이야기만 더 할게요. 작가님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인정미가 넘치는 당신의 어린 시절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그 시절은 항상 아름답게 떠올리셨어요. 그러나 그런 유년시절의 시골풍경들이 2005년에 휘돌고 있는 수많은 복잡한 일들의 안식처가 될 수 없습니다. 복잡하고 골머리 썩이는 현실이 싫다고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시선들로 독자들의 시야를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한 비판들이 작가님에게는 섭섭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서운해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저 한 독자의 애정 어린 비판으로 받아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건강조심하시고요.

 

 

건필 하십시오!

/곽동운 기자

 


덧붙이는 글
서평전문 사이트 리더스 가이드에도 올립니다(www.readersguid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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