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무대'로 삼은 거창아시아1인극제



제9회 거창아시아1인극제 참관기


16.08.11 12:00  최종 업데이트 16.08.11 18:12

곽동운


             





    

 

▲ 양반춤 양반춤을 추고 있는 이삼헌. 뒤로 보이는 산이 삼봉산이다. 백두대간 삼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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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무대 배경으로 삼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요? 백두대간을 무대 일부로 끌어온 연극제가 있다면, 그 연극제는 어떤 멋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까요? 만약 그런 연극제가 있다면 풍류를 제대로 타는 연극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백두대간을 무대 배경으로 '쓴' 거창아시아1인극제

실제로 그런 연극제가 있었습니다. 지난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에 걸쳐 삼봉산문화예술학교에서 개최된 제9회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삼봉산문화예술학교의 다른 이름은 거창귀농학교입니다. 거창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1인극제의 무대 배경으로 백두대간 삼봉산이 쓰일(?) 수 있었던 겁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9회째를 맞이했다고 기술했지만 '아시아1인극제'는 올해로 27회째입니다. 1988년 서울 바탕골 소극장에서 펼쳐진 '아시아1인극제'가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전신이기 때문입니다.

바탕골에서 1회 대회를 치른 이후 '아시아1인극제'는 대만,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을 순회하며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그 이후 충남 공주에 있는 공주민속박물관이 주최가 되어 1인극제를 무대에 올리게 됩니다. 명칭도 바뀝니다. '공주아시아1인극제'로.



▲ 나비와 소녀 극단 마네트의 김봉석이 '나비와 소녀'라는 마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저 소녀의 옷이 걸쳐진 나무에 자석이 달린 종이 나비들이 붙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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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이 경남 거창에서 1인극제가 무대에 오르게 된 건 2007년부터였습니다. 백두대간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는 거창귀농학교에서 무대가 펼쳐지니 그때부터는 '거창아시아1인극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모노드라마(monodrama)가 백두대간 아래에서 펼쳐졌고, 벌써 9회째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올해 대회는 작년에 비해 참가팀이 많았습니다. 이틀에 걸쳐 23개 팀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거기에 더해 관람객으로 참가한, 23개 팀에 등재되지 않았던 '국악소녀'가 특별출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라 타령 한 곡조를 뽑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연극제가 풍성해질 수 있었던 건, '한국민족춤협회' 회원들의 발걸음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3월 19일, 대학로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한 '한국민속춤협회' 회원들은 이번 거창아시아1인극제에 대거 참석했습니다. 우리 민속춤을 계승·발전시키고자 발족한 한국민속춤협회 회원들 덕택에 거창아시아1인극제도 한층 빛이 났던 것입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을 소개해보겠습니다.







▲ 만신 서문정 마고당 서문정. 작두를 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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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커피 때문에 장군님이 노하셨나?

이번 연극제는 만신 서문정(마고당)의 작두굿으로 시작했습니다. 21살 때 신내림을 받은 서문정은 서해안배연신굿 예능보유자인 김금화 선생에게서 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황해도를 위시한 서해안지역의 굿은 퍼포먼스가 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서문정의 작두굿도 그런 문법에 충실했습니다. 혀 위에 날카로운 식칼을 올려놓기도 했고, 큰 작두 위에서 두 발을 쿵쾅거리며 뛰기도 했습니다.

연극제 스태프로 참가한 저는 그 작두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서문정이 작두를 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작두지기를 하다 보니 에피소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작두지기도 굿에 참가한 일원이다 보니, 굿하는 동안만큼은 다른 잡스러운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너무 더워서 그랬는지 작두지기를 하는 내내 저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생각했습니다. 
   
'아이스커피 사 먹으려면 읍내까지 내려가야 되는데... 그래도 시원하게 한 잔 했으면 ...'

작두굿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관객들 호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액운(?)이 끼었습니다. 제 휴대폰이 굿을 할 때 쓰이는 정화수에 완전히 젖었기 때문입니다. 시원하게 젖어서 전원이 나가버렸습니다.

'장군님이 노하셨나? 아직 할부도 많이 남았는데... 시원하게 물먹었네.'  



▲ 서예 퍼포먼스 서예 퍼포먼스를 펼친 김기상. 오른쪽에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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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퍼포먼스와 통영오광대 문둥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작품은 신평 김기상 선생의 서예 퍼포먼스였습니다. 김기상 선생은 몽둥이 같은 큰 붓을 들고 일필휘지의 기운으로 획을 쳐나갔습니다. 그렇게 흰 천 위에 한 획 한 획이 이어지다보니 어느 순간 한 편의 작품이 탄생되더군요. 채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작품이 완성된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완성된 작품이었지만 미적으로는 무척 뛰어났습니다. 검은 선들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나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 때문인지 김기상 선생의 작품은 다음날(30일) 공연 내내 무대 뒤편에 걸려 있었습니다. 배경막으로 쓰인 셈이죠.

이외에도 첫날 공연에는 이강용씨가 춘 문둥춤 공연이 상당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둥춤은 통영오광대 놀이의 첫 번째 마당으로 덧빼기 춤의 정수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덧빼기는 장단을 말하는 것이죠.

문둥춤에서 광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한 맺힌 삶을 춤으로 승화하려 합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식으로 내용이 전개되면 극의 분위기가 무척 가라앉았을 겁니다. 하지만 문둥춤이 오광대놀이의 첫째마당 아닙니까. 비록 광대는 흉한 모습의 탈을 썼지만 입에서는 걸출한 입담을 쏟아냈습니다. 춤에 풍자와 해학을 담아 자신의 한을 승화시킨 것이죠.



▲ 문둥춤 문둥춤을 추고 있는 이강용.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꼬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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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혼: ​우리문화연구회 타악 연주팀. 타혼.





풍류를 탔던 양반춤

1인극제는 그 다음날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둘째 날(30일)은 우리문화연구회 '타혼'의 난타 공연으로 시작됐습니다. 쿵쾅거리는 북소리가 축제의 둘째 날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장중한 북소리의 울림이 공연장 곳곳을 휘몰아친 후 백두대간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이어진 공연은 춤꾼 이삼헌의 양반춤이었습니다. 이삼헌씨는 원래 발레를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한국 무용으로 '전공'을 전환한 후 지금까지 우리 전통춤을 추고 있다고 합니다. 서양무용과 한국무용을 두루 섭렵한 것이죠.

그런 이삼헌씨의 이력 탓인지 그가 추는 양반춤은 남다른 멋이 있더군요. 흰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부채를 펼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백두대간 삼봉산이 펼쳐지니 풍류가 제대로 장단을 탔던 것이죠.



▲ 인형한마당 얼씨구 판타지 인형극 '얼씨구'를 공연중인 고규미. 2화 꽃의 환생을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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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소녀

인형극 공연과 마임 퍼포먼스도 펼쳐졌습니다. 극단 상사화의 고규미씨는 '인형한마당 얼씨구'를 통해 판타지 인형극을 선보였습니다. 인형극은 '1화 할아버지 얼씨구'와 '2화 꽃의 환생'으로 이루어졌는데 2화를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누구나 꽃처럼 오고 언젠가 꽃처럼 갑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인생들이 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극단 마네트의 김봉석씨는 마임 퍼포먼스를 펼쳐주셨습니다. '나비와 소녀'라는 마임이었는데 정신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공연이었습니다. 소녀의 옷이 걸린 나무의 등장으로 극은 시작됩니다. 그 옷을 걷어낸 자리에는 날갯짓을 하며 날아온 나비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나비들이 꽉 들어차자 나무에 불이 밝혀집니다.

'나비를 좇는 소녀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나무에 못이 박히듯 소녀의 몸은 상처로 얼룩지고 꿈은 무참히 깨집니다. 이제 살아있는 이들이 상처를 덮고 다시 소녀로 되돌려주려 합니다. 아름다운 나비의 꿈으로...'


▲ 나비와 소녀 마임 퍼포먼스 '나비와 소녀'를 펼치고 있는 김봉석. 나비가 날아온 나무에 보라색 등이 점등이 됐다.  뒤편 건물에는 동영상 프로젝트 빔을 쏘고 있다.



      



'나비와 소녀'에 대한 팸플릿의 소개글이었습니다. 관람객이 자석이 박힌 종이나비를 직접 나무에 붙여주는 등, 이 마임 퍼포먼스는 관객친화적인 공연이었습니다. 또한 위에 소개글처럼 많은 울림을 담은 공연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첫째날 작두굿 공연을 한 만신 서문정은 이런 소감을 밝히더군요.

"공연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임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마임 퍼포먼스를 펼쳐주신 김봉석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사라토 연주: ​아사라토를 연주하고 있는 일본인 켄토. 켄토는 이번 1인극제에 참여한 유일한 외국 국적자였다. 아사라토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타악기인데, 호두만한 두 개의 물체를 부딪혀 소리를 낸다. 치고, 흔들고, 불고... 그렇게 소리를 낸다. 즉흥 공연이 가능하고, 다른 악기와 협연도 쉬운게 아사라토의 장점이다. 정식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켄토의 즉흥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켄토는 아사라토 연주만 13년 째라고 한다. 저렇게 공연을 하며 전세계를 누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켄토도 풍류객인 것이다.

 







사드 반대 춤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대미는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인 장순향 선생께서 해주셨습니다. 장순향 선생은 '사드(THAAD) 반대' 춤을 추셨습니다. 원래 선생께서는 산조춤을 추시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셨을 때는 '사드 반대'라는 큰 부채를 펼치며 춤사위를 펼쳤답니다.

선생도 처음부터 저 춤을 출 계획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연을 바로 앞 둔 시점에 착상이 떠올라 즉흥적으로 춤을 추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창작춤을 이끌었던 셈입니다. 

아시아1인극제가 열린 거창은 사드 배치 후보지인 성주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사드 배치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드 반대' 춤이 주는 의미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과연 우리나라에 사드가 필요한 것인지, 만약 그 사드 체계가 설치가 된 후에 실전에서 사드 미사일이 발사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 지역은 지도상에서 지워질지 모릅니다.

사드 반대 춤을 끝으로 이틀에 걸쳐 펼쳐진 제9회 거창아시아1인극제도 무사히 종료가 됐습니다. 백두대간 삼봉산을 배경 삼아서 그랬는지 춤사위는 더 멋들어졌고, 노랫가락은 더 흥에 겨웠습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풍류를 제대로 탔던 것이죠.







▲ 사드 반대 사드 반대 춤을 추고 있는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 장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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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붓으로 '뚝딱'하고 그려낸 한반도 지도!


붓으로 그려낸 한반도 지도!





        곽동운(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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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한 편에 흰색 천을 깔고 한반도 지도를 그려나갑니다. 그러자 흰 천 위로 우리나라의 형상이 드러납니다.

일필휘지의 기운이 끝까지 이어졌던 걸까요? 힘주어 마지막 두 점을 찍고 그는 사라집니다. 그 마지막 두 점은 울릉도와 독도입니다. 이 붓그림을 그린 분은 서예가 신평 김기상 씨입니다.
 

김기상 선생은 서예 퍼포먼스로 유명한 분이라고 합니다. 몽둥이 같은 큰 붓으로 순식간에 작품을 형상화 하는 모습을 직접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저 서예 퍼포먼스는 2016년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개최된 거창귀농학교 운동장에서 행해졌답니다. 예정에도 없었는데 김기상 선생이 순식간에 그려낸 것이죠.

그러고보면 붓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듯합니다. 이렇게 퍼포먼스도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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