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비 루트에 고운 단풍... 그런데 여기가 서울?
정릉에서 김신조 루트까지, 성북동 역사트레킹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이번글은 5편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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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부터 바람이 불었다. 빗방울도 오락가락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처음 런칭하는 날인데..."
이 날은 성북동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날이었다. 성북동 트레킹은 스토리펀딩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트레킹이었다. 그래서 나름 준비도 열심히 했다.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답사도 여러번 다녀왔고, 자료를 찾는다고 책장을 분주히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당일 날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트레킹할 때 날씨가 좋으면 반을 먹고 들어간다고 하는데 보시다시피 오늘은 꽝이네요."
"그래도 좋아요!"
"이런 날씨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자리에 모인 후원자분들이 더 걱정을 해주셨다. 말씀만이라도 고마웠다. 이런 후원자들과 함께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일 테지!
▲ 정릉 세계문화유산 정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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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총애를 받은 신덕왕후
트레킹 팀이 첫 번째로 탐방한 곳은 정릉(貞陵)이었다. 정릉은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황해도 곡산 출신인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이성계의 총애를 받게 된다. 1392년, 조선이 개국했을 때 태조의 옆에 서 있던 사람도 신덕왕후였다.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가 그 전 해에, 조선의 개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결국 강씨는 현비로 봉해져 조선의 첫 번째 왕비에 오르게 된다.
조선왕조가 개창될 때 이성계의 나이는 58세였다. 그래서 즉위하자마자 세자 책봉에 나서야 했다. 현비였던 신덕왕후로서는 자신이 생산한 왕자를 세자의 자리에 앉히고 싶어 했다. 이성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녀였기에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으리라.
하지만 쟁쟁하게 버티고 있던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들이 문제였다. 방과(정종), 방원(태종) 등등... 신의왕후의 소생들은 조선 창업에 큰 공을 세운 이들었다.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신덕왕후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정도전과 손을 잡게 된다. 정도전 입장에서도 이미 다 장성한데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신의왕후 자제들보다는 아직 나이가 어린 강씨의 소생이 세자가 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재상중심의 왕도정치를 주창한 정도전이었으니까.
결국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었던 방석(의안대군)이 1392년 8월 20일에 세자로 책봉된다. 그해 7월 17일에 조선이 개국했으니 약 한 달 만에 세자가 책봉이 된 것이다. 이에 이방원(정안대군)은 격분한다.
"정릉은 조선왕조가 개국한 후 처음으로 능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왕릉들에 비해서는 좀 허술해 보이지 않나요? 봉분을 둘러싼 봉분석도 없고요."
그 말대로 정릉은 능의 격식에 맞지 않게 무언가가 빠져 있다. 여백의 미학이 아닌 인위적으로 뺄셈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뺄셈을 한 사람은 바로 태종 이방원이었다.
신덕왕후는 자신의 소생이 왕위에 등극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396년(태조5)에 눈을 감고 만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신덕왕후가 죽자 이성계는 지금의 서울 정동, 현재의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을 조성했다. 또한 흥천사라는 사찰을 지어 그녀의 명목을 빌었다.
이 흥천사를 두고 원찰(願刹)이라고 부르는데, 원찰은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진 사찰을 뜻한다. 정조대왕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융건릉 인근에 있는 용주사도 원찰이다.
▲ 정릉 봉분을 두르는 봉분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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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을 당한 정릉
1398년 8월,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무인년에 일어났다 하여 무인정사(戊寅靖社)라고도 불리는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정도전은 목숨을 잃게 된다. 세자였던 이방석도 목숨을 잃게 된다.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도성 안에 무덤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1409년(태종9)에 정릉을 지금의 위치인 성북동으로 이전시킨다. 본격적인 뺄셈이 시작된 것이다. 그 다음해에는 정릉의 봉분을 두르고 있던 석각신장 같은 석물을 광통교 건설에 쓰게 했다. 광통교는 청계천에 있는 다리다.
능에서 가져온 귀한 석재들로 돌다리를 만드는 만큼 그것들을 제대로 이용했으면 좋았으련만 이방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부러 신장석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광통교 하단을 보면 몇몇 신장석들은 머리가 바닥을 향해 있다. 이방원은 철저하게 신덕왕후를 짓밟았던 것이다.
"여기 이거 물구나무 선 거 같지 않나요?"
"진짜 그러네요."
"청계천 복원할 때 뒤집어서 복원한 게 아니고, 광통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렇게 물구나무를 세웠습니다. 광통교는 1410년, 태종 때 만들어졌지요. 이렇게 거꾸로 놓이게 된 건 제작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뜻이겠죠."
"굳이 이렇게까지..."
"그나저나 이것들은 거의 600년 이상을 이렇게 거꾸로 세상을 보고 있었겠네요."
인왕산역사트레킹 때 광통교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에 정릉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광통교도 함께 탐방할 것을 추천한다.
▲ 광통교 정릉에서 빼온 신장석이 거꾸로 세워져 있다. 무려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광통교는 청계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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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현대사를 걷다, 김신조 루트를 걷다
정릉을 뒤로 하고 트레킹팀은 본격적인 길을 나섰다. 바람이 좀 더 세게 부는 듯했다. 빗줄기도 더 강해지고 있었다. 참가자들 중에는 우비를 꺼내 입은 분들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이런 게 내 잘못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자. 오늘 가는 곳이 아픈 현대사를 담은 곳이잖아. 그러니 비를 배경 삼아 가는 것도 괜찮겠네.'
트레킹팀은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 <북악하늘길>로 접어들었다. 북악하늘길은 성북구에서 조성한 도보여행길로 총 4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트레킹 팀은 제2산책로를 '타깃'삼아 이동을 했다. 나는 제2산책로를 앞에다 두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정릉을 거쳤고, 북악스카이웨이 옆 산책로도 지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럼 거의 끝난 건가요?"
"아니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 코스를 걷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었어요."
"에이..."
"너무 해!"
▲ 북악산 하늘길 단풍이 고운 북악산 하늘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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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북악하늘길 제2코스입니다.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곳이죠."
북악산은 군사 목적으로 출입이 제한되다가 지난 2007년 전면 개방이 되었다. 그 군사적인 목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김신조 일당이었다.
"1·21사태, 일명 김신조 사건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청와대 습격 사건이라고도 부르는 그 사건이요."
나는 호경암 앞에서 입을 열었다. 호경암은 1·21사태 때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져 아직까지도 바위 곳곳에는 그날의 아픈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당시 김신조를 위시한 무장공비들은 시간당 10km 이동을 했답니다. 그것도 산길을요. 건강한 성인이 4km로 정도로 이동하니까 그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이동을 했는지 알 수 있겠죠."
구멍이 뻥뻥 뚫린 호경암을 앞에 두고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 호경암 치열했던 교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호경암. 빨간색으로 칠한 표시가 바로 총탄 자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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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기, 196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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