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싱어 김광석편>을 보고 쏟은 눈물

 

13.12.30 10:47

 

최종 업데이트 13.12.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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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히든 싱어>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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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하는 거 좋은데, 김광석 이름 팔아서 먹칠은 하지 마라. 제발 부탁이다!'

그렇게 방송이 시작될 때는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답니다. 사실 <히든싱어2 김광석>을 본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시간인 토요일 밤 11시경에는 저는 항상 잉글랜드 프리미엄리그를 시청했었으니까요. 12월 28일에는 카디프시티의 김보경과 선더랜드의 기성용이 맞붙는 '코리안 더비'를 보려고 TV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 '코리안 더비'는 다음날 새벽 2시경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일 없이 리모컨을 돌리다가 채널 15번에서 잠시 멈췄답니다.

 

 



# 김광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종편을 보게 됐다!

평소에는 종편 채널이 몰려있는 번호대를 그냥 뜀뛰기 하듯 넘어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날만큼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몰입을 하고 보게 됐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JTBC가 요즘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예능 프로그램라면 더욱더 눈을 거둘 수밖에요. 그러나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서는 그런 원칙도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히든싱어>는 원곡을 부른 가수와 여러명의 모창가수가 서로 경쟁을 하는 독특한 구조의 프로그램입니다. 무대에는 장막으로 가려진 방이 여러 개가 있는데 오리지널 가수와 모창가수들이 각 방에서 한 소절씩 원곡을 부르는 식으로 방송이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필'편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간주가 나오는데 오리지널 가수인 조용필은 3번 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1번, 2번 방에 들어간 모창가수들은 최대한 오리지널 가수처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를 것입니다.

워낙 모창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참가했기 때문에 패널들이나 방청객들은 오리지널 가수가 3번인지, 1번인지 혹은 2번인지 혼돈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신승훈'편에서는 모창 가수가 오리지널 가수를 이기는 진기한 장면까지 생성됐다고 합니다.

'김광석'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출중한 모창 실력을 가진 지원자들이라 그런지 마치 故김광석이 실제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김광석의 오랜친구인 김창기, 한동준도 번호를 잘못 누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1996년 1월에 저 먼 곳으로 가신이가 어떻게 <히든싱어>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요? 김광석의 앨범에서 음원을 추출하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김광석의 앨범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어 음원 추출이 수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음원은 뽑아내졌고 가신이도 2013년 <히든싱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신의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됐답니다.

하지만 가신이의 빈자리는 크더군요. 자신의 방문이 열리면 마이크를 잡고 서서히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모창가수들과는 달리 오리지널 가수 방은 휑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하고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가신이의 사진이라도 그 방에 걸어주셨으면 덜 쓸쓸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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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싱어 <히든싱어> JTBC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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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였다네!

저는 故김광석씨를 광석이형이라고 부릅니다. 친형도 아니고 동네 선배형도 아닌데 그렇게 부릅니다. 이렇게 '친한척'을 하지만 광석이형의 제대로 된 매력을 알게 된 건 형이 저 먼 곳으로 간 이후부터였습니다. 방송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참가자 분은 광석이형의 죽음을 군대 전역 즈음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분은 큰 충격에 빠져 광석이형의 앨범을 다 불태워버렸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비보를 군대시절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큰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가수가 한 명 먼저 갔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렀고, 저도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녹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로 들렸고, 저는 그 따뜻한 위로 속에서 단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광석이형의 노래는 점점 더 제 귀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었답니다.

옷 벗기 경쟁에 나선 걸그룹의 음악들에서는 국적 불명의 억센 향수 냄새가 나지만 좋은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싱그러운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는 추억이라는 바람을 타고 널리널리 퍼져 나갑니다. 그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기억으로 묶이게 됩니다.
'김광석 편'에 나왔던 모창 가수들도 저처럼 기억의 한 구석에 광석이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상금을 받으면 광석이형의 웃음 짓는 동상을 만드는데 쓰고 싶다는 지원자, 감수성이 많았던 청소년 시기를 광석이형의 노래로 잘 이겨냈다는 지원자... 모두다 한결같이 광석이형의 노래로 인해 '좋은 향기'를 맡았던 것 같습니다.

 

 

 


# 변호인에서 참은 눈물, 광석이형 보고 쏟아냈다!

저도 그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주르르 눈물이 흐르더군요. 특히 마지막 부분인 <서른 즈음>이 흘러나왔을 때는 좀 더 크게 훌쩍였습니다. 저는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도 눈물을 참았답니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았고 일부러 제가 감정을 억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편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눈물이 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변호인>에서 통쾌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극중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 경찰인 차동명에게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 부분에서 쾌감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광석이형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이 대목에서는 그저 눈물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러다 <서른 즈음> 나머지 부분을 따라 부르며 한심했던 제 30대를 되돌아봤습니다. 어설펐고, 그래서 욕 먹었고, 그것 때문에 아팠고. 하지만 그것보다 배신당했다는 것에 더 가슴이 쓰렸고... 생각해보니 제 30대는 그저 어둡게만 채색된 것 같습니다. 지울 수 있으면 그 시기를 지우고 싶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겠죠.

그렇게 어두웠던 제 30대도 이제 이틀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제 '서른 즈음'이 '마흔 즈음'으로 바뀔 때가 됐네요. 제 '서른 즈음'이 한심하고, 답답했다면 제 '마흔 즈음'은 활기차고 건강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어두침침한 방에서 엎퍼져 있지 말고 봄볕을 맞은 새싹들처럼 기운차게 '일어나'야겠지요! 광석이형의 <일어나>처럼요!

'~일어나, 일어나 봄에 새싹들처럼!' 

 

 

 

 

 

 

 

 

 

 

 

 

<호빗>과 <변호인>

우리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13.12.28 14:53l최종 업데이트 13.12.28 14:53l

 

 

"호빗? 그거 서울에서 안 하잖아."
"그래서 광명까지 갔다 왔어요."
"그렇게까지 가서 볼 필요 있냐? 그거 그냥 블록버스터잖아!"
"……"

선배형은 호빗에 대해서 그냥 시큰둥한 평가를 내렸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후배 녀석이 선배형을 거들면서 이야기를 했다.

"호빗 그거 난쟁이 영화 아니에요? 해리포터 같은... 전 그런 영화는 별로던데... 차라리 변호인 봐요. 그거 재밌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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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봉화산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중앙 하단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땅이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이다. 사진에서 보듯 봉하 마을은 '깡촌'이다. 이곳에 '아방궁'이 들어설 수 있겠는가? 2011년 여름, 남도횡단 자전거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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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빗>과 판타지


그렇다. <호빗 (The Hobbit : The Desolation of Smaug)>은 난쟁이들을 다루었고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영화다. 필자는 호빗들처럼 '짝달막'한데다 판타지 장르를 즐겨 본다. 그래서 멀리까지 가서 보고 온 것이다. 로맨틱코미디는 '닭살'스럽고 공포영화는 '개그콘서트' 보는 것 같지만 판타지 영화에는 팝콘의 유혹을 물리칠 정도로 몰입을 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양태와 희로애락을 신화적인 상상력 안에서 풀어내는 판타지, 필자는 그런 판타지 장르를 선호한다. 불을 내뿜는 용들이 날아다니고 천상의 요정들이 미모를 뽐내는, 그런 화면 가득한 볼거리에 정신이 팔리는 것이 아니다. 물고 물리는 복잡한 스토리 속에서 인간 내면의 '쌩얼'이 꿈틀거리기에,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호빗 2편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배급사와 영화관과의 수익배분 문제 때문에 서울에서 호빗을 보기 어려웠고, 그래서 인근에 있는 광명시까지 가서 보고 왔던 것이다.

영화 취향이 천대를 받아서 그랬는지 필자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인 존 로널드 톨킨(J.R.R.) 박사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톨킨 박사는 세계1차 대전에 참전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 솜강 전투라는 1차 대전 중 최대의 격전에 참가했던 톨킨은 현대 문명에 대해 큰 회의를 품었고, 전후 북유럽과 켈틱 신화에 대해 깊이 매료됐다. 탐욕적인 근대 문명를 크게 혐오하고 물질문명 이전세계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이런 이야기를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역시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었다.

"어차피 그거 해리포터처럼 애들이 많이 보는 거잖아?"

 

 


# 스크린의 안의 문제를 스크린 밖으로까지 끄집어낸 <변호인>

 


지난 월요일 오후. 동장군의 위세가 꺾이긴 했지만 밖은 여전히 추웠다. 찬바람이 불면 온몸이 다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변호인>을 상영하는 극장 안은 후끈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월요일 오후 4시경 영화였지만 좌석은 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필자도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젊은 커플들이 많았지만 나이가 지긋한 분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사실 <변호인>에 대한 첫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개봉 전부터 너무 떠들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에 괜한 반발심부터 앞섰던 것이다. 영화라는 매개물로 고인을 '팔아'먹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한 배우 송강호(송우석 역)와 노무현 대통령이 서로 잘 매칭도 되지 않았다. 수더분한 얼굴의 송강호를 보면 웃음부터 나오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을 보면 웃음부터 나오지는 않았기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필자의 첫 느낌은 송강호의 넉살 좋은 연기에 서서히 무너져 내려갔다. '깔깔깔' 웃음소리와 함께. 그리고는 왜 이 영화가 2013년 최고의 영화중에 하나라고 불리는지도 깨닫게 됐다. 스크린 속에 그려진 우울한 시대의 단면을 영화관 밖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그 장면들이 단지 전두환 시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크린 안에서는 끔찍한 고문과 탄압에 분노를 했을 것이고, 극장 밖에서는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극중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 경찰관인 차동명에게 사자후와 같은 열변을 토하지만, 차동명 세력'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무척 강했고 지금도 강하다. 1981년 부림 사건의 피의자들에게 '북한의 지령'이라는 죄목이 뒤집어 씌어졌다면, 2013년 진보·개혁세력에게는 '종북좌파'라는 비난이 그들에 의해 덧씌워져 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차동명 세력'은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상대편에 '종북좌파' 딱지붙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쩌면 그들은 항상 '이기는 싸움'만 해왔는지 모른다. 물론 잠깐 숨을 고른 적은 있었겠지만.

그런 '차동명 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에도 계속 자신의 반대편에게 '딱지'를 붙이고 있을지 모른다. 차동명이 부림사건 시절에는 공안경찰로 등장했다면 앞으로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라는 얼굴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공공기관 민영화라는 '스타일'로 포장될 수도 있다. 현재는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댓글로 나타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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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경작지 봉하마을에서 공동경작을 하는 논이다. 2011년 여름, 남도횡단 자전거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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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판타지에는 어김없이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일당백이 되어 악당들을 물리친다.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에서도 수많은 영웅들이 악의 세력에 맞서 정의의 칼날을 휘두른다.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는 악의 화신인 사우론과 당당히 맞서고,  꽃미남 엘프 레골라스는 거침없이 정의의 화살을 날린다. 간달프와 레골라스의 한방에 오크족과 고블린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고 결국 강성했던 어둠의 세력들은 멸망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반신반인'의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식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판타지'일 뿐이다. 최강의 포스를 가진 판타지 영웅이 나타난다고 해도 우리시대의 당면과제인 사회양극화, 청년실업, 남북문제 등을 '한방'에 풀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슈퍼맨, 베트맨, 정도령, 원더우먼, 오디세우스 등 동서양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다 등장한다고 해도 역부족일 것이다.

현실의 문제는 결국 생활인들이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기소된 송우석 변호사를 위해 이름을 올린 99명의 변호인들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안녕 대자보를 붙일 때 청테이프를 끊어 주는 친구, 그 대자보를 찬찬히 읽고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동장군의 기세를 누를 따끈한 국물이 그리운 날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국밥 한 그릇이면 속이 든든히 채워질 거 같다. 소중한 친구와 지인들을 모아 따뜻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사람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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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자전거와 내 자전거 오른쪽에 있는 자전거는 노무현 대통령의 것이다. 대통령의 자전거는 단출했지만 필자의 자전거는 무거운 짐들이 잔뜩 실려있다. 고물이고 자세도 안 나오는 내 자전거! 그래도 같이 사진 찍어주는 친구가 생겼네! 2011년 여름, 봉하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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