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이런 대형석불이? 외국 안 가도 되겠네 2

 

고려 전기시대 대형석불 테마 탐방...

가을 여행지로 여기 어떠세요?

 

14.09.30 15:51 최종 업데이트 14.09.30 15:51

 

 

 

 

 



 

 
▲ 대조사 석불 대조사 석불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작은 사찰에 10미터가 넘는 큰 석불이?

 

이제 충남 부여로 가보자. 부여군 임천면에는 대조사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도 거대한 석불이 있다. 대조사는 부여 천도를 위한 밑돌 역할을 해주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백제 성왕이 천도를 앞두고 직접 대조사의 창건을 명했다고 하는데, 사찰터를 지목한 사람은 유명한 백제의 고승 겸익이라고 한다.

현재의 대조사는 작은 사찰이다. 하지만 그렇게 작은 사찰에 10미터가 넘는 큰 석불이 있다. 바로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바로 그것이다. 대조사 석불도 고려 초기 작품이다. 그래서 정교성보다는 투박함이, 조화미보다는 개성이 넘쳤다. 얼핏 보면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인체비례로 따지면 4등신에 가깝다고 한다.

은진미륵과 대조사 석불은 지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해 있고, 또한 제작 시기나 규모가 유사하기 때문에 곧잘 같이 묶여 이야기된다. 또한 두 석상은 서로 비교가 되기도 한다. 은진 미륵이 뒷산과 좀 거리를 두고 평지 쪽으로 나와 있다면, 대조사 석불은 바로 옆쪽에 작은 언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언덕에서 뻗어 나온 소나무 가지가 석불에 우산처럼 드리운 형상을 하고 있다.

한편 석불 앞에 있는 법당에는 불상이 없다. 법당의 창문을 열면 큰 석불이 시원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도포를 두른 안동 이천동 석불?

이제는 경북 안동으로 가보자. 안동 시내에서 북쪽으로 5km쯤 떨어진 곳에 가보면 제비원이라는 곳이 있고, 그 뒤쪽으로 이천동 석불이라는 거대한 석불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제비원(燕飛院)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쉬어가던 일종의 여관이었던 원(院)이었다.

영남에서 충청도나 한양으로 갈 때에는 안동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야 했는데 그 길목에 제비원이 있었다. 그렇게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던 곳에 거대한 석불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 이천동 석불은 도포를 두른 모습이었다. 큰 도포를 두르고 얼굴을 불쑥 내민 형상이었다. 뒤쪽의 무성한 수풀과 어우러져서 그런지,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노출(?)한 모습이었다.

안동 이천동 석불도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석불이다. 용미리 쌍미륵처럼 몸통 부분과 머리 부분이 별개의 암석으로 제작된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다. 몸통 부분, 즉 필자가 도포를 둘렀다고 지칭한 큰 바위 상단 중앙에 머리 부분을 조각한 별개의 돌을 얹었다는 것이다. 단지 머리 부분만 조각하여 올렸을 뿐인데도 자연석인 몸통 부분이 서로 어우러져 일체형의 거대한 석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석불 제작자의 지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 이천동 석불 안동 이천동 석불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돌장승 같은 고려 전기시대의 대형석불들

이제까지 고려 전기에 제작된 대형 석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다. 그렇다면 왜 고려 전기시대 사람들은 이처럼 대형 석불들을 만들었을까? 당시는 고려왕조 창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호족들의 독특한 지방문화가 불교문화제에 투영된 시기였다. 활기차고 강건한 지방문화가 석불 건립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거대한 돌미륵을 탄생 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된 대형 석불은 해당지역의 민간신앙까지 접목되어, 큰 장승을 세운 것처럼 형상화됐다. 거인 같은 미륵불이 마을입구나 왕래가 잦은 곳에 떡하니 서 있게 된 것이다. 요즘처럼 청명한 가을날. 전국에 산재한 돌미륵을 찾아 복을 기원해 보자. 그렇게 여행을 하다보면, 어쩌면 '복'된 테마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여행도 하고, 유물답사도 할 수 있으니까!

 

 

 

※ 도움말 : 찾아가는 길

1. 용미리 쌍미륵: 서울 불광역에서 파주 광탄면행 버스에 탑승한 후 용암사에서 하차한다. 소요시간 약 50~60분 정도.

2. 논산 은진미륵: 논산 읍내에서 건양대행 버스에 탑승 후 관촉사에서 하차함. 읍내에서 관촉사까지는 도보로 약 40분 거리임.

약 3km 정도다. 그래서 택시를 타도 부담이 없음.

3. 대조사 석불: 부여군 읍내에서 임천행 버스 탑승. 임천면사무소에서 하차한 후 대조사로 이동. 면사무소에서 대조사까지는

도보로 20~30분 정도 소요됨.

4. 안동 이천동 석불: 안동 시내에서 제비원(연미사)행 버스 탑승. 시내에서 제비원까지는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음.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 작가라고 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8편]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

태백산여행기 1편

 

 

12.12.31 20:23l최종 업데이트 12.12.31 20:23l

 

 

 

 

▲ 태백산 주목 죽은 것 중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있을까? 죽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흉하게 썩고 만다. 그건 식물도 마찬가지다. 죽은 나무는 껍질이 썩어들어가 종국에는 흰개미가 득실거리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그래서 썩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주목은 다르다. 오히려 죽어서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 같다. 죽어서 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 같다. 생(生)과 사(死)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태백산 주목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든다. '혹시 태백산의 진짜 산신령은 주목이 아닐까?'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태백산은 언제 국립공원으로 승격을 할까?

지난 7월 5일, 울릉도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온 나는 '태백산 산신령'을 만나러 강원도 태백시로 향했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개천절이면 산 정상부에 있는 천제단에서 단군을 위해 제례를 들이는 곳. 예로부터 계룡산과 더불어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곳. 신라 오악(五嶽) 중 하나로 북악(北嶽)이라 불렸던 곳. 이렇듯 태백산(1567m)은 예로부터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축적되어 온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아닌 도립공원 '품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뻘인 소백산(1440m)도 국립공원인데 태백산이 아직도 도립공원으로 묶여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의문을 표하는 사람 중에 필자도 포함되어 있다.

특정 지역의 국립공원 지정은 첨예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교통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이해관계 중에서 단연 두드러진 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제약이다. 군립공원보다는 도립공원이, 도립공원보다는 국립공원이 더 많은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 망경사 용정 당골매표소에서 천제단 방면으로 오르다보면 8부 능선 즈음에 망경사가 나온다. 망경사 옆쪽으는 '용정'이라는 시원한 샘물이 있다. 한편 사진 오른쪽에 있는 가부좌를 튼 보살상이 이채롭다. 용정에서 조금만 더 오르다보면, 단종 임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단종비각에 닿을 수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소백산은 국립공원, 태백산은 도립공원 


지난 12월 27일에 지정된 21번째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국립공원이 지정된 해는 1988년이다. 그해, 변산반도와 월출산이 지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이 1967년에 지정됐고 20호인 월출산이 1988년에 지정됐으니, 21년 만에 무려 20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 24년 동안 새로운 국립공원 지정이 전무했던 것은 시대상황의 변화 때문으로 판단된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같은 권위주의적인 정권하에서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로는 재산권 행사와 관련해서 국민들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국립공원 지정에 대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그 수위가 높아졌을 거라는 걸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2월 27일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경우는 참 반가운 사례다. 서울의 북한산과 더불어 무등산은 광주광역시라는 대도시에 인접해 있는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순번 대기를 하고 있는 국립공원 후보군들이 재산권 제약이라는 난관을 뚫고 '국립공원 클럽'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을 무등산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번호표를 뽑고 '국립공원 클럽' 앞에서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몇 명 보인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린 '녀석'은 단연 태백산이다. 도대체 언제쯤 태백산은 국립공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 태백산 주목 이 사진을 보니 비룡이 용솟음 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장면이 연상된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죽어서도 아름다운 태백산 주목
 


태백산은 태백시내에서 약 5~6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강원도에 있는 다른 큰 산들에 비해 접근성이 더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태백시내에서  도립공원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운행을 하는데, 그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하면 바로 등산로에 진입할 수 있다.

태백산의 등산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매표소 입구에서 부지런히 걸으면 정상까지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당골매표소-반재-망경사-단종비각-천제단 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하산을 할 때면 그 반대편인 유일사매표사 코스로 내려가면 되는데 그 코스도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태백산 산 정상부는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그 능선길 양 옆으로는 장구한 세월을 올곧게 서 있는 주목들이 있다. 그 중에서 단연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목의 고사목들이다.

주목은 색깔이 붉다고 하여 적목(赤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생하는 고산 식물이다. 그래서 백두대간 고산 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편, 주목은 가장 오래 사는 식물들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또 주목은 한약재로 쓰이는 좋은 나무라고 한다. 주목이 약재에 좋은 나무라는 것이 잘 알려져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많이 벌목이 됐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소백산 정상에 있는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 태백산 주목 이 주목은 큰 수사슴의 뿔처럼 여겨진다. 이 기사가 발행되는 시점이 한겨울이라 태백산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주목 사진이 더 시의성에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새해 2013년을 기약하는 마음과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사진을 바라본다면, 그것 자체로 좋을 것 같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주목이 오래 살고, 약재에도 좋다고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그저 '죽은 주목'만이 눈에 뛸 뿐이었다. 왜? 주목의 고사목처럼 죽어서 아름다운 나무들은 거의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죽었지만 주목의 올 곧은 자태는 태백산의 정기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도 등산 중에 나무를 몇 그루 쓰러뜨린 적이 있다. 필자가 힘이 센 '슈퍼맨 나무꾼'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두께가 얇은 나무는 죽으면 쉽게 쓰러진다. 그 쓰러질 타이밍에 필자가 손을 댔던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우쭐해 하며 내 힘 자랑을 떠벌렸다. 산행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보고 나를 진짜 슈퍼맨으로 알겠지만 노련한 등산가들은 필자를 허풍쟁이로 몰아붙일 것이다.

이렇듯 죽은 나무는 가벼운 외부 충격에도 제 본 모습을 잃고 흉하게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죽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정상에 서 있는 주목 고사목들은 기품이 있었다. 죽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은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주목의 자태를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죽어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있구나! 혹시 태백산 산신령이 있다면 이 주목들이 아닐까?'

 

 



▲ 태백산 천제단 태백산은 태고적부터 우리조상들이 신성시한 곳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태백산 그런 신성스러운 공간에 필자가 올랐다. 자전거는 저 산 아래 태백산캠핑장에 주차시켜 놓고.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태백산의 산신령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태백산은 우리민간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속설에 의하면 태백산이 내뿜는 기가 매우 강렬하여 무속인들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샛길로 빠졌는데, 그 곳에서 형형색색의 비단으로 치장한 나무 성황단을 만나게 됐다. 그곳은 그나마 있던 샛길도 끝나는 후미진 곳에 있던 나무 성황단이었다.

아무래도 태백산 산신령을 모시기 위한 제단처럼 여겨졌다. 제단이 후미진 곳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아지트와 같은 곳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제단에는 지폐 몇 장과 동전이 쌓여 있었다. 싹 쓸어 담으면 한 2만 원 돈 이상이 되는 듯했다.

 



▲ 나무 성황단 태백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산신령님한테는 죄송한데, 저걸 가져다 여행 경비로 써? 어차피 지폐는 비 맞고 하면 훼손 되잖아. 이참에 한 번 조폐공

사에서 감사패 한 번 받아봐?'

그 순간 갑자기 푸드득 거리며 내 앞으로 새가 한 마리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좀 놀랐다. 아무래도 그 짓을 하지 말라는 '산신령의 계시'인 것 같았다. 뒤가 밟혔던 나는 돈은 그대로 두고, 제단 주위에 있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는 생수 하나를 개봉하여 정화수로 올렸다. 괜히 제단에 있는 재물을 탐했다가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하긴 앞으로도 수많은 '백두대간 산신령'들을 만나뵐 텐데 괜히 거기서 밑보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태백산은 참 복받은 산 등산 중에 배수로 작업을 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도립공원 직원이 아니었다. 그냥 자진해서 등산로 배수로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그냥 태백산이 좋아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작업을 하신다고 했다. 극구 사진 찍는 걸 원하지 않으셨지만 난 살짝 '몰카'를 찍었다. 그러고보면 태백산은 참 복 받은 산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분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