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짱이었던, 북악산 역사트레킹!

호감도 높았던 북악산 역사트레킹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라는 속담처럼, 제게 역사트레킹 코스 하나하나는 모두 다 보배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달랐습니다. 유난스럽게 참가자들이 환영하는 코스가 몇몇 있었습니다. 그런 코스들은 아름다운 풍광과 풍부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화에 소개할 북악산 역사트레킹도 참가자들이 크게 선호했던 코스 중에 하나입니다. 모객을 하기가 무섭게 매번 조기마감이 됐으니까요. , 그럼 북악산 역사트레킹을 하러 떠나볼까요? 진짜 인기 있는 코스가 맞는지 확인해 볼까요?

 


 



* 탕춘대성 성벽.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그리고 탕춘대성

 

북악산 역사트레킹은 상명대 옆쪽에 자리잡은 홍지문(弘智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서울에는 큰 성곽이 두 개가 있습니다. 일명 서울성곽이라고 불리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이 바로 그것이지요. 서울성곽은 북악산을 기점으로 동쪽의 낙산, 서쪽 인왕산, 남쪽 남산을 둘러쌓아 축조한 것입니다. 이 네 개의 산은 내사산이라고 불립니다. 안쪽에 있는 네 개의 산이란 뜻이죠.


서울성곽이 도읍 방어의 최후의 보루였다면, 북한산성은 도성 방어의 전초기지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북한산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손꼽히는 요충지였습니다. 이 일대를 차지하기 위해 삼국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지요. 고려시대에도 여러 차례 북한산에 있는 산성을 수리·축조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북한산 일대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방어 거점이었던 것입니다.


현재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시기에 축조된 것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혹독하게 치룬 조선은 국방력 강화와 도성 방어에 전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1704(숙종 30)부터 1710년까지 도성 성곽을 재정비했습니다.





* 홍지문





또한 다음해인 1711년에는 북한산성을 축조하기에 이릅니다. 8km 달하는 북한산성은 기공에서 완공까지 6개월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규모에 비해 무척 빨리 축조된 것인데 청나라가 간섭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공사를 서둘렀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은 병자호란 강화조약에 의해 성의 축조와 수축에 큰 제약을 받고 있었습니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서울성곽은 내사산을 둘러 만든 성입니다. 북한산성은 북한산에 있는 성이고요. 그래서 두 성곽 사이에는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었죠. 두 성곽 사이가 좀 붕 떠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간극을 메울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축조된 것이 바로 바로 탕춘대성(湯春臺城)입니다. 성이 세워진 세검정 부근에 탕춘대(湯春臺)가 있어서 그렇게 명명된 것입니다. 도성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성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도성과 북한산성을 약 5km에 걸쳐 연결한 탕춘대성도 1719, 조선 숙종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인왕산에서 가파르게 내려온 성벽은 홍제천(사천)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다시 북한산 쪽으로 숨 가쁘게 비탈을 타고 올라갑니다. 그러다 북한산 서남쪽 비봉 인근에서 북한산성과 합류합니다. 북한산 비봉은 유명한 진흥왕 순수비(555년 건립)가 있던 곳입니다.

 

 





* 홍지문. 성벽이 잘려나간 홍지문.






 

상처(?)가 많은 홍지문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입니다. 성벽이 숨을 골랐던 자리에 홍지문이 들어선 것입니다. 그래서 홍지문 옆에는 홍제천이 흐를 수 있도록 수문 5개가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이라고 불리는 이 수문은 홍예형(무지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홍지문(弘智門)은 상처(?)가 많은 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4대문 중 북쪽에 있는 문으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트레킹 참가자들 중에도 그렇게 오해를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근처에 북대문이 있다고 하던데... 이게 그 북대문이에요? ”

 

아닙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입니다. ‘북대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북쪽의 대문은 서울성곽 북악산 구간에 있는 숙정문(肅靖門)입니다. 4대문에 붙여진 인의예지(仁義禮智) 중 북쪽에 해당되는 가 홍지문(弘智門)에 붙여져 그런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홍지문은 그런 명칭의 혼용 같은 내적상처 뿐 아니라 외적상처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곽 일부가 잘려나간 것입니다. 홍지문 바로 옆으로 세검정로가 놓여 있는데 성곽 일부를 잘라서 도로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홍지문은 자동차들의 매연과 소음이 끊임없이 진동하는 곳입니다. 문화재가 자동차들에 의해 압도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보다 더 큰 상처도 있었습니다. 1921년에 있은 대홍수로 아주 싹 쓸려 내려갔던 것입니다. 옆에 있는 오간대수문도 그때 싹 쓸려 내려갔습니다. 지금의 홍지문은 1977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대홍수 이후 방치되어오다 약 반세기만에 복원을 한 것이지요.


이렇게 상처 많은 홍지문이지만 그 곳 일대를 탐방하다보면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이 어떻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가파른 경사에 축조된 성곽이 어떻게 방어기지 역할을 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평소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가을이 되면 성벽과 오색단풍이 어우러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 세검정. 옆으로 사천이 흐르고 있다.






 

이항복 별서터가 있는 백사실 계곡

 

다음 탐방지는 백사실 계곡입니다. 백사실 계곡에 들어서면 이전까지 들리는 소음은 사라지고 울창한 숲길이 탐방객들을 반겨줍니다. 백사실 계곡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도롱뇽 서식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만큼 수질이 맑다는 뜻이겠죠. 그렇게 청정함을 자랑(?)해서 그런지 멧돼지도 가끔 출몰하는 것 같습니다.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현수막이 인상적이더군요.


사실 백사실 계곡은 실개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유량이 적다는 겁니다. 저는 이곳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계곡다운 면모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백사실 계곡을 방문하고 실망한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대성동이나 천불동 계곡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줄기가 시원하게 흘러나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에게는 분명 아쉬운 대목이겠지요





* 북악산 역사트레킹 참가자들. 백사실계곡 숲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백사실 계곡은 숨은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울창한 숲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울 종로에 이렇게 걷기 편한 숲길이 있다는 게 놀랍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벤치도 여러 개 갖춰져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숲길 안쪽으로 걷다보면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가 보입니다. 숲길 한편에 자리잡은 별서터는 현재 기단석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기단석과 바로 옆쪽에 있는 연못자리로 그 옛날 별장의 풍채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별서터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고 새겨진 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백석백악을 뜻합니다. 북악산을 예전에는 백악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수려한 곳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풍광이 수려한 골짜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 백사실 계곡의 백사는 이항복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 백석동천: 별서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백석동천이라는 글씨가 각자되어 있다.


 



북악스카이웨이와 북악산 산책로

 

일명 북악스카이웨이로 불리는 북악로는 19689월에 완공됐습니다. 이 도로는 그해 121일에 있었던 청와대습격사건(일명 김신조 사건)의 여파로 만들어졌습니다. 서울방어목적으로 개통됐던 것입니다.


무장공비에 의한 청와대습격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여파로 만들어졌지만 이 도로는 관광용으로 더 많이 애용됐습니다. 도로 정상부에 북악산 팔각정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서울을 한 눈에 다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사산은 물론 멀리 관악산과 아차산 등 외사산까지도 다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북악산 팔각정입니다.


북악산 팔각정은 석양이 질 무렵이 가장 낭만적입니다. 뒤쪽 북한산 서편으로 펼쳐진 붉은 노을을 감상한 후에 앞쪽으로 위치를 이동을 하여 서울의 야경을 보는 겁니다. 노을도 감상하고, 뒤이어 야경도 감상하는 것이죠.


이렇듯 자연과 도시의 낭만을 동시에 품고 있는 북악스카이웨이는 60~70년대 신혼여행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택시를 타고 북악스카이웨이나 남산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신혼여행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이 흔한 일상이 된 요즘과 비교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한편 북악산 산책로는 서울성곽 북악산 구간과는 좀 다릅니다. 서울성곽 북악산 구간이 동서로 이어졌다면 산책로는 남북으로 연결됩니다. 성곽 구간을 포함하여 북악산 일대는 안보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됐다 2006년 이후 일반인들에게 개방됐습니다.

 


 



* 북악산 역사트레킹팀. 북악산 팔각정에서 북한산을 바라보고 있는 트레킹팀. 백사실 사진에 등장한 팀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만해 한용훈이 싫어한 돌집은 사라졌지만...

 

마지막 탐방지는 성북동입니다.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이 트레킹의 종료점입니다.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입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심우장은 남향으로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남향으로 하면 돌집을 봐야하기에 일부러 북향으로 집을 지었던 것입니다. 돌집은 조선총독부였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집짓기의 기본까지 어겨가며 그렇게 하셨을까요?


만해선생이 그렇게 보기 싫어했던 돌집’, 그 조선총독부는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뿌려놓았던 식민 잔재들까지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요?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만해 선생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심우장 탐방을 끝으로 북악산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보셨습니까? 매번 조기마감이 된 이유가 이해가 되셨는지요? 이해가 안 되셨다면 이번 주말에 당장 배낭을 꾸려서 떠나보세요. 직접 걸으면서 판단해주시길!

 




 

* 뮤지컬 심우. 심우장에서 뮤지컬 심우를 야외극 형식으로 공연하고 있었다. 2014년 가을경에 촬영한 사진임.






 

북악산 역사트레킹

 

1. 코스: 홍지문 세검정 백사실계곡 북악산팔각정 북악산산책로 심우장

 

2. 이동거리: 7km

 

3. 예상시간: 3시간 30(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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