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12월 11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및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빌라성




*여행 50일차: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맑음

1. 벌써 여행 50일차다. 이제 이 여행의 종착역이 다가온다. 

2.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내 이름이 명단에 없다는 것이다. 'booking 닷컴'의 안내문에는 분명 조식이 제공된다고 적혀있었다. 알고보니 난 아주 저렴한 요금으로 숙박을 하기에 조식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시 싼게 비지떡인가? 하긴 13유로도 안되는 돈으로 이런 시설에서 1박을 할 수 있다는게 그저 감사할 따름임.

3. 오늘은 아빌라(avila)를 탐방한다. 아빌라는 중세 시대에 건축된 성이 잘 보존된 도시다. 예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라 기대에 부푼 마음을 달래며 그곳으로 향했다. 

4. 마드리드에서 아빌라를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6호선 mendez alvaro역에서 내려 estacion sur터미널에서 아빌라행 버스를 타야했다. 왕복 티켓은 약 14유로였음.  리턴 티켓은 세고비야 때처럼 오픈티켓으로 했는데 역시 돌아올 때는 아빌라 매표소에서 티켓을 프린팅했음.

5. 아빌라에 도착했는데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댔다. 모자가 벗겨질 정도였음. 그래서 예정에 없던 아빌라 대성당에 들어가게 됐음. 

6. 아빌라 대성당은 형형색색의 스테인글라스가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음. 그곳에서 잠시 바람을 피하며 성당 곳곳을 둘러봤음.

7. 아빌라 옛 도심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특이하게도 아빌라 대성당이 성곽 외벽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음. 한마디로 대성당의 외벽이 아빌라성의 성채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뜻임.

8. 아빌라성은 분명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음. 하지만 평평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아기자기한 모습은 없었음. 지형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그런 듯싶었음.

9. 아빌라성의 성채에 직접 올라가 봤는데 멀리까지 풍광을 조망할 수 있어 좋았음.내가 오른 구간은 무료였는데 다른 구간은 5유로를 내야한다고 함. 참나 서울에 있는 한양도성은 전체가 다 공짜구만!ㅋ

10. 아빌라까지는 약 1시간 0분 정도 소요됨. 오후 5시 버스를 타고, 6시 30분경 마드리드에 도착함.

11. 솔 광장역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오는데 노란셔츠 시위를 하고 있었음. 마드리드에서도 노란셔츠 시위를 했음. 파리에서만 하는 줄 알았더니!




* 아빌라대성당




*아빌라성




*여행 51일차: 2019년 1월 30일 수요일 맑음

1. 오늘은 특별한 일정없었다. 이제 끝나는 마당에 무슨 일정이 필요한가? 그냥 마드리드를 쉬엄쉬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쇼핑도 좀 했다. 

2. 프라도 미술관을 갈까하다가 그 인근에 있는 왕립식물원을 갔다. 별로 볼 것도 없는 식물원이었는데 무슨 expo 입장까지 한다며 6유로를 받았다. 우리나라 식물원 중에는 공짜로 들어가는데도 있는데 말야! 으이그~ 이 넘의 돈벌레들...ㅋ

3. 역시 아웃도어 quecha 브랜드는 저렴했다. 신발 두 개, 배낭 두 개, 바람막이 등등... 꽤 많은 것들을 구매했는데 146유로 정도가 들었다. 다른 브랜드에서 구매했으면 최소가 200유로였을 것이다. 

4.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잘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다. 하루도 허투르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여행 특성상 '시간이 돈'이라는 개념이 매우 강하지만 꼭 그 개념에 얽매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시간을 잘 보냈고...

5. 그렇게 시간을 허투르게 보내지 않는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일상으로 복귀해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하루하루를 허투르게 보내지 않기! 그것이 바로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감흥이다!



*여행 52일차: 2019년 1월 31일 목요일 맑음

1. 마드리드발 인천행 대한항공 탑승. 오후 6시 30분 경.

2. 이베리아여행 종료



*아빌라성



*아빌라성






 

 

세고비아 수도교에서 느낀 절대음감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11편] 세고비아 1부

 

15.01.28 11:09   최종 업데이트 15.01.28 11:09
곽동운(artpunk)

 

 

 

 

 

 

 

 

 

 
▲ 수도교 구시가지 방면에서 본 수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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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와 '세고비아'는 무슨 관계?

 


평생 그곳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도시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 <카사블랑카> 때문에 유명해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재즈의 발상지인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 등등. 필자도 그런 도시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세고비아가 바로 그곳이다. 

예전에 통기타가 하나 있었다. 지인한테 물려받은 것인데 아무리 조율해도 그 음이 그 음 같은 그런 통기타였다. 그래도 열심히 튕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유시인까지는 못되더라도 좋아하는 후배 앞에서 폼 좀 잡아보겠다고... 그때 튕기던 기타가 바로 '세고비아 기타'였다. 그런 기억 때문에 세고비아는 필자에게 전혀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세고비아 기타는 유명 기타리스트인 안드레아 세고비아의 이름을 따서 상품명으로 삼았다. 안드레아 세고비아는 다른 악기용으로 작곡된 음악들을 기타 연주에 적합하게 편곡을 하는 등 현대 기타 연주의 대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안드레아 덕택에 '세고비아 기타'가 이름을 얻게 됐고, 그 상품명 덕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가 우리 귀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세고비아에 가면 안드레아와 관련된 기타 박물관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시 세고비아와 안드레아 세고비아와는 별 관계가 없다. 그는 남부인 안달루시아 출신이고 데뷔도 안달루시아에서 했다. 그냥 그의 이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 이름이 들어간 것뿐이다. <강철군화>의 저자 잭 런던처럼 그냥 사람 이름에 도시명이 포함된 것이다.

 


 
▲ 수도교 야경 상상력을 고조시켰던 수도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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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교와 절대음감

 


2014년 11월 17일, 여행 15일째

오후 6시에 발라돌리드에서 세고비아행 버스를 탔다. 두 도시의 직선거리는 90km도 채 되지 않아 늦어도 1시간 2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다. 그래서 세고비아에서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행이 계획대로만 진행되는가? 버스가 인근 동네 구석구석을 다 정차하고 다녔다. 심지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더 가관인 것은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는 점이다. 옆쪽에 있던 마드리드 청년이 일러주지 않았으면 아마 다른 행선지로 갔을지도 몰랐다.

결국 오후 8시가 넘어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긴장을 했는지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세고비아의 명물이라는 수도교(aqueduct)를 찾아갔다. 어차피 갈 거 미리 알아두고 다음날 꼼꼼히 살펴보자는 속셈이었다.  

"이야, 정말 환상적이네"

수많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수도교의 장엄한 모습이 화려한 조명 빛을 받아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책에서나 보던 로마시대의 수도교를, 그것도 조명이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밤 중에 보는 수도교의 아치는 리듬감이 살아 있는 듯했다. 로마네스크 기둥을 타고 오르는 선율이 아치에서 곡선을 그린 후 위층으로 올라가 고음을 잡는 그런 모습... 그렇게 아치 기둥을 타고 나온 음악은 어떤 것일까? 한 밤의 세레나데일까 아니면 카이사르 군대가 불렀을지도 모를 행진곡? 세고비아에 세고비아가 없다지만 필자에게는 수도교가 '절대음감'처럼 보였다. 시각의 청각화를 통한 음악 연상해보기! 어쩌면 이런 것도 여행의 재미다. 해당 유적에 상상력을 더해 본다.

 

 



 
▲ 수도교 신시가지에서 바라 본 수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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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의 기술력이 집약된 거대한 수도교

기둥: 120개
아치: 167개
관로: 25*30*30cm
총길이: 16,220km
최고높이: 28.10m
교량구간: 728m

수도교의 스펙이다. 수도교는 로마시대인, 기원 후 1~2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인들은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는데 세고비아도 그 중 하나였다. 정착지는 세워졌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세고비아는 넓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터라 대규모로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수원지와 거리가 멀었다. 수도교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로마인들은 외곽에 있는 프리오 강(Rio Frio)에서부터 중심부까지 수로(水路)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무려 16km에 달하는 수로가 만들어졌다.

수도교는 그 수로의 교량구간이다. 즉 16km 송수관 중 728m 정도가 아치형 다리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왜 수도교라는 교량을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냥 수로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하물며 시멘트도 없던 시대에 그런 거대한 구조물을 축조한다는 건 엄청난 공사였기 때문이다.

수도교를 잘 즐길 수 있는 곳은 아조구에호(Plaza de Azoguejo) 광장인데 그곳을 중심으로 양 옆쪽을 보면 왜 로마인들이 거대한 아치형 교각을 세웠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양 옆의 언덕으로 인해 광장은 협곡 형태를 띠게 된다.

이제껏 수로를 타고 온 물이 협곡으로 떨어지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 것이다. 협곡을 넘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인위적인 구조물을 연결하여 최종목적지까지 물을 도달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양편을 이으려고 하니 거대한 구조물이 나타났고, 교량 형식이니 아치가 그려졌다. 또한 협곡의 높이가 있으니 복층까지 올려 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고비아의 수도교가 탄생됐던 것이고, 그 가치를 높이 사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른다.

 



 
▲ 세고비아 세고비아 외곽에서 바라본 사진. 뒤쪽에 보이는 산에서 물길이 시작된다. 전날에 눈이 왔는지 봉우리에 눈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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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만든 수도교?

옛날 옛적에 이 거대한 교량은 악마의 구조물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접착제도 없이 큰 돌조각들이 무지개를 그리며 놓여 있으니, 눈앞에서 보고도 그런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전설이 하나 있다.

 

매일같이 물 주전자를 들고 비탈진 길을 오르내려야 했던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일이 고된 나머지 소녀는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자신의 집까지 물길을 내주겠다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기에 이른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소녀는 비극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열렬히 기도를 하게 된다.

그동안 악마는 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태풍이 발생하여 일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새벽닭이 울게 됐는데 그때 악마는 돌조각 하나만을 세우지 못한 채 건축물을 다 완성시킨 상태였다. 돌조각 하나 때문에 거래는 무산됐지만, 수도교는 온전히 그 자리에 생성됐고 소녀의 영혼도 빼앗기지 않게 됐다.

소녀는 마법 같았던 지난밤의 일을 세고비아 시민들에게 실토하게 됐고, 이에 사람들은 아치를 통과한 물은 유황 성분이 제거된 성수라고 여기며 새로운 건축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전설에도 내포되어 있듯이 옛날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대한 수도교가 경외적인 존재였을지 모른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축조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수도교가 자신들의 식수를 공급해주고 있으니, 그 존립 자체를 인간 영역 밖에서 끌어오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도교를 두고 거대한 '마법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고비아 시민들은 19세기 중반까지 그 '마법덩어리'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 수로 수로의 지상구간. 수도교의 맨 위쪽에도 이런 관로가 놓여 있다. 사진 중앙, 관로가 끝나는 부분에 있는 건물이 정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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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 시설까지!

기둥들을 따라서 가봤다. 수로의 지상구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세고비아는 수도교를 중심으로 그 안쪽은 구시가지이고, 그 밖은 신시가지로 분류된다. 수로의 지상 구간은 신시가지쪽에 있었다.

한 10분 정도를 걷다보니 정수장과 함께 드디어 지상구간이 나왔다. 전설에 유황이 제거됐다고 언급됐듯이 정수장도 수도교와 함께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정수는 이물질을 물에 침전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정수장에는 심도가 깊은 물탱크를 만들었는데 그 물탱크에 모래나 황 같은 불순물들을 침전시키고, 깨끗한 윗물만 빠져나가는 식으로 정수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다. 간단한 구조였지만 그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상 구간의 수로는 말 그대로 수로였다. 화강암을 깎아내고 그 위에 25*30*30cm 규격의 홈을 파 내 관로를 삼은 것이다. 수도교의 맨 위 부분도 그렇게 관로가 놓여 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던 대목이었다.

지상 구간을 탐방하다 길을 잃고 말았다. 궁금했던 것들이 풀려나가는 재미에 빠져 있다 보니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덕분에 세고비아의 신시가지를 갈지(之)자로 마구마구 돌아다녔다. 그렇게 다니다보니 수로가 시작되는 산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눈이 왔는지 산봉우리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전날에는 수도교에 상상력을 더했다면, 그날은 수도교를 더 면밀하게 탐구한 날이 됐다. 문화유적 앞에서 멋지게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그 문화유산에 상상력도 더해 보고, 더 꼼꼼히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다. 여행의 큰 재미. 세고비아 여행은 다음편으로 계속 이어진다.   

 

 

  

 
▲ 정수장 신 시가지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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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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