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낭? 아니 오방카드!


17.03.07 10:10 최종 업데이트 17.03.07 10:11


















                                                                                                                                                                                           


우리 옛 선조들은 음양오행론을 동서남북 방위에도 적용시켰습니다. 동쪽은 나무(木), 서쪽은 금(金), 남쪽은 불(火), 북쪽은 물(水), 중앙은 흙(土)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에 더해 각 방위에도 색깔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색깔을 두고 오방색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서남북에 중앙이 하나 더해져서 오방색이 되는 것이죠.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냈다는 오방낭은 그 다섯 가지 색을 담아 주머니로 만든 것입니다. 한마디로 복주머니였죠.

저는 오방낭이 아닌 오방카드를 만들어봤습니다. 앞서 언급한 '오방낭'이나 '오방기'는 들어보셨어도 '오방카드'는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오방카드는 이전까지 저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 왜 오방카드를 만들었냐? 교보재로 사용하려고 만들었답니다. 제가 역사트레킹을 리딩하기 때문에 만들었답니다. 역사트레킹을 행하다보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교보재로 설명할 때가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좌청룡 우백호는 다 아시는 거라 두 개는 먹고 들어갑니다. 남쪽은 붉은 주작, 북쪽은 검은 현무 그렇게 네 방위색에다 중앙에다 노란색이 들어가 오방색이 됩니다."

이런 설명을 낙산공원 같은 서울을 둘러 볼 수 있는 곳에서 하면 더 효과적입니다.

"서울에서 동쪽을 뜻하는 좌청룡은 이곳 낙산, 서쪽을 뜻하는 우백호는 인왕산입니다. 남주작은 화기가 많다는 관악산이고, 북현무는 북한산입니다."

이렇게 실제 지형을 앞에 두고 오방카드를 사용했더니 강의의 질이 확 높아졌던 것입니다.

사진에서처럼 음(月)과 양(日) 카드를 임의적으로 만들어 오방카드에다 덧붙여 봤습니다. 그랬더니 '월화수목금토일'이 됐네요. 음양오행이 일주일로 표현이 된 셈이죠.

한편 노란 카드와 붉은 카드는 따로 떼내서 축구경기에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비신사적인 행위를 했다면 옐로 카드를 받는 것이죠.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을 했으면 바로 레드 카드를 받는 것이고요. 게임은 룰을 지켜야 하니까요.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오방낭을 주었다고 하죠. 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레드 카드를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레드 카드를 주고 싶은 사람이 저 혼자 뿐은 아니겠지요?































단종의 한이 서려 있는 강원도 영월을 탐방했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강은 서강입니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이 서강길을 따라 단종 임금이 유배를 오셨답니다.


강 쪽으로 불쑥 튀어 나온 돌이 선돌인데 단종도 그 선돌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합니다. 신선들이 노닐 거 같은 기이한 형상의 돌을 지켜보며 잠시나마 유배길에서 오는 고단함을 잊었던 것이죠.

섬처럼 생긴 곳은 청령포라는 곳입니다. 단종의 유배지였죠. 유람선이 등장하는 것처럼 지금도 저 곳은 배가 있어야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로는 높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어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곳이 바로 청령포입니다. 최적화된 유배지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선돌과 청령포 모두 다 서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월에는 유명한 동강이외에도 서강이 흐른답니다. 동강과 서강이 영월 읍내에서 합수되어 남한강이 되는 것이죠. 아직 서강에서는 어로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목선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이래서 영월이 무척 매력적인 고장인 것이죠. 빼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풍부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져 있으니까요.






























성곽에 눈 내리는 날





1월 22일 토요일.


서울에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더군요. 온 세상이 다 하얗게 변했습니다.


서울성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인왕산 성곽길에 들어섰을 때, 이미 그곳은 설국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성곽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눈길을 걸었습니다. 성곽길 너머 희미하게 눈 쌓인 바위들이 보이더군요. 절경이었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하얗게 눈 덮인 성곽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게 다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흰 눈으로 세상살이에 찌든 제 몸을 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눈 덮인 성곽길을 걷고 난 후 촛불 집회가 열리던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눈사람을 만났네요. 역시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눈사람이라 그런지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주장하고 있네요. 앞에다 촛불도 여러개 켜 놓고서.






















2016년은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국내외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그렇게 다이내믹했던 2016년이 지고 이제 대망의 2017년의 새해가 밝아오네요.

새해가 되면 많은 분들이 해돋이를 보러 갑니다. 또 누구는 산에 오르기도 하지요. 그곳에서 한 해를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깊게 새기시겠지요. 그렇게 다짐을 하고 오는 곳은 자신에게 특별한 곳일 겁니다.

저한테도 그런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바로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입니다.
승복을 입은 스님처럼 보인다고 하여 선바위로 이름 붙여진 큰 바위가 바로 그곳이지요.


누구는 이 선바위를 두고 무학대사 바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 무학대사가 이 바위를 도성 안에 넣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바위는 도성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유학을 중시했던 정도전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저는 이 바위를 사오정 바위라고 부릅니다. 바위의 뒤태를 담은 사진을 잘 보세요. 꼭 사오정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아니면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다의 뒷모습?

이름이 어떻든 간에 이 바위는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가장 잘 받는 곳 중에 한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두 손 모아 기원을 드립니다. 저도 선바위에서 삼 배를 올리곤 했습니다.

2017년 새해를 맞이해서 선바위에 가서 삼 배를 올릴 생각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번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두 손을 모을 생각이지요. 또 한 해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다부지게 할 생각입니다.

아참!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테니 그것에 대한 기원도 드릴 생각입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이 고생을 했으니, 다음 대통령은 정말 상식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선출되라고 국가적인 기원을 드릴 생각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인해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진행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 잘 마무리가 됐답니다.


펀딩이 성공을 한 것입니다. 달성율 101%. 100%를 넘어 101%에 도달한 것입니다. 짝짝짝~!

​2016년 9월 1일부터 12월 20일 까지 무려 111일간 진행!

그렇게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을 진행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제게는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답니다. 물론 오해도 받았답니다.~ ㅋ  

​어차피 사랑이든 오해든 뭐든... 이제는 다 지난간 일입니다.


이제는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다가올 2017년 계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다사다난 했던 2016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밝아오는 새해에는

항상 좋은 일들만 함께 하시길~!

* 후원금: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펀딩 소개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자신이 낸 후원금으로 역사트레킹(테마트레킹)을 즐기는 것입니다. 연재글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었지요.


그래서 후원금도 그렇게 지출됐습니다. 5번의 리워드 트레킹에 후원금이 모두 지출된 것입니다. 이 점도 리워드에 참가를 해주신 참여자분들에게도 계속 이야기를 했었답니다. 

사실은 제 사비를 털어서 실비로 먼저 지출했지요. 이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도 저는 펀딩금을 만져 보지도 못했으니까요. 한마디로 전 지금 마이너스... -_-; ㅋㅋㅋ


그래도 다른 펀딩에 비하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양반입니다. 다른 펀딩들은 리워드 때문에 무척 골치가 아플텐데 저는 그런 염려에서 벗어났으니까요.

회계 보고에 대한 부담감도 없습니다. 후원자들을 직접 만나 후원금을 같이 집행을 했으니까요.

 






                                                                                                                                                                                            




  * 대서문: 북한산성 대서문





펀딩해서 돈 좀 만지셨수?

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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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펀딩과 함께 했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 올 한 해 스토리펀딩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323일부터 108일 동안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을 진행했었고, 91일부터는 본 프로젝트인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을 무려 111일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 종료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까지도 난 가끔 이런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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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펀딩을 한 게 잘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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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트레킹이라는 주제는 스토리펀딩에 적합하지 않은 테마일 수 있다. 아무리 앞쪽에 역사혹은 서울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고 하더라도 트레킹이 주는 그 자체의 무게감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공익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눈가에 감동의 폭포수를 흐르게 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반응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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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다 펀딩질 하며 돈 구걸하네. 너희 놀고먹는 일에 돈까지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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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해들이야 애초부터 감수를 했지만 그래도 막상 그런 반응들을 접하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글을 발행하는 것밖에. 그래서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에서는 17편의 글을 발행했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게으름 때문인지 6편 밖에 작성하지 못했다.

이번 글은 7편째다. 지난 1113일에 행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천년 고찰인 진관사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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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숲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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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스토리가 숨어 있는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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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4대 명찰이 있다. 동쪽에 불암사, 남쪽에 삼막사, 북쪽에 승가사. 그럼 서쪽은? 진관사다.

천년 고찰인 진관사(津寬寺)는 고려 현종 때인 1010년에 만들어졌다.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이 직접 창건한 이 절은 진관대사를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태조 왕건의 손자였던 현종, 즉 왕순은 어릴 적에는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왕건의 손녀였던 천추태후로부터 어릴 적부터 박해를 받은 왕순은 한때 강제로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천추태후가 그의 이모가 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당시 얽히고설킨 왕실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같은 왕건의 혈통이자 이모뻘의 천추태후로부터 살해위협까지 받게 된 건 그가 왕위계승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천추태후는 애인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왕으로 등극시킬 셈이었다.


그런 천추태후의 마수가 진관사에까지 뻗치게 됐다. 원래 진관사 자리에는 신혈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진관이라는 승려가 홀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승려가 홀로 거처하는 곳이라 천추태후 입장에서는 무언가 거사를 치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랬다. 천추태후는 신혈사에 자객을 보내 왕순을 죽일 셈이었다.

천추태후의 의도대로 왕순이 자객에 손에 비명횡사를 했다면, 현종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진관사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진관사: 대웅전









천추태후의 의도를 눈치 챈 진관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굴을 파서 왕손을 숨기는 기지를 발휘한다. 수미단은 불상을 올려놓는 단을 말한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산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진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왕순은 3년 뒤, 개경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려 8대 왕 현종이다. 현종은 1010,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진관 대사의 이름을 본 따서 사찰 이름을 지으니 그 사찰이 바로 지금의 진관사다.

 

조선시대 진관사는 사가독서제로 애용된 곳이다. 사가독서제란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정진하게 만든 제도로 세종시대에 처음 도입되었다. 풍광이 수려하고 계곡이 시원한 진관사라면 학문을 닦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가독서제로 진관사를 다년간 이들은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었다.

진관사는 한국전쟁동안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다. 그래서 지금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의 웅장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관사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는 사찰이다. 진관사 숲길과 계곡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느낌들이 좋아서 발걸음들이 진관사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트레킹팀도 그런 좋은 기운을 받으며 다음 코스인 대서문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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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아름다운 북한산과 어우러진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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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에서

 

대서문은 북한산성에 있는 14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있는 성문을 말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는 대동문, 대남문 등과 달리 대서문은 해발고도가 낮아 접근성이 매우 좋다. 북한산둘레길 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거리가 가까워, 둘레길과 묶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트레킹팀이 그렇게 탐방을 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북한산성은 1711(숙종37)에 축조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북한산에는 산성이 존재했었다. 백제시대에는 위례성의 북쪽 방어성으로 산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인 삼국 항쟁시기에는 북한산을 두고 각국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그 항쟁의 증거 중에 하나인 진흥왕 순수비가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있다. 정확히는 지금 비봉에 세워진 순수비는 진품이 아니고, 순수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석이다. 진품은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로 비봉은 앞서 언급한 진관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도는 상당히 가파르다. 답사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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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계곡




 

우리 북한산계곡에 와 있습니다. 정말 시원스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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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계곡에서 나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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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성벽 구간, 무너진 성벽 구간이 보이시죠? 원래 이 곳에는 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문을 통해서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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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에는 대서문 같은 7개의 대문과 6개의 암문, 그리고 한 개의 수문이 있었다. 이를 두고 북한산성 14성문이라고 말한다. 대문과 암문은 복원이 되고 해서 실재하고 있지만 수문은 소실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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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북한산성은 포곡식 산성입니다. 포곡식이라는 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성이라는 뜻이죠. 성이 만들어지면 음용수 때문에 골치를 썩잖아요. 그런면에서 계곡을 끼고 있는 북한산성은 물 공급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죠.”

진짜 그랬겠네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계곡이 있다 보니 풍수해에 취약해요. 그래서 저 앞에 수문이 떠내려가 버렸잖아요.”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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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성 수문터: 북한산성 수문은 북한산계곡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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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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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탐방을 끝으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더불어 후원자들과 5번에 걸쳐 함께한 리워드 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이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도 마칠 때가 됐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2016년 한 해는 펀딩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달리 리워드를 트레킹 초대형식으로 제공했다. 에코백이나 머그컵 같은 것을 드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잘하는 것을 리워드로 제시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5번에 걸쳐 직접 후원자들과 만나 트레킹을 행했었다. 내 리딩 방식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중에는 중복 참여를 하신 분들도 여럿 계셨다. 어떤 분은 5번 다 참가를 해주시기까지 했다. 내년에도 스토리펀딩에 트레킹 프로젝트를 개설해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다.

글을 끝내기 전에... 누군가 이렇게 물으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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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으로 올 한 해를 때웠다고 하는데... 그래서 돈 좀 만지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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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대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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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펀딩합니까?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 펀딩한 거지. 어차피 실비 빼면 마이너스에요. 그래도 하는 건 트레킹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거에요. 그런 게 세상사는 맛 아니겠어요? 당신도 기회 되시면 서울트레킹에 참여해보세요. 제가 김밥이랑 물 챙겨 드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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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원효봉이다.









        * 대서문: 대서문의 여장. 특이하게도 일체형이다.













 *참가자: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이날은 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드디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의 리워드 트레킹이 마지막으로 실시된 날이었으니까요.


여기서 잠깐! 앞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 다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지난 9월부터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한마디로 트레킹을 주제로 펀딩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펀딩을 받으면 저는 후원자들에게 무언가 답례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두고 '리워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게 돈을 주신 분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다른 펀딩을 진행하시는 분들은 에코백이나 엽서, 도서 등을 리워드로 많이 제시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트레킹을 잘하니 '북악산트레킹 초대' 같은 식으로 리워드를 제공했습니다. 유형의 물질을 드리는게 아니라 무형의 것을 제공한 셈이죠.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진행되었고, 결국 이날 마지막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이 실시된 것입니다.


순조로운 해피엔딩은 없었던 것인지 , 아침부터 좀 삐그덕거렸답니다. 오전 10시경 집합장소인 구파발역에 가봤더니 갑자기 '헉' 소리가 나더군요.


구파발역에서 시작점인 북한산성 입구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등산객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버스를 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빰칠 정도로 콩나물 시루 같았습니다. 정말 탈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종료점인 진관사에서 출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역순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하고 진관사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진관사행 버스는 북한산성행 버스에 비하면 천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가 순발력 있게 잘 대처한 듯했습니다.


정방향이면 어떻고 역방향이면 어떻습니까! 앞뒤를 바꿔서 시작해도 상관없는 게 트레킹의 묘미잖아요!


진관사를 출발해 북한산성입구, 대서문, 북한산계곡 등으로 이어진 이 날의 트레킹은 약 4시간에 걸쳐 진행이 됐답니다. 길이에 비해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하여 마지막 리워드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순조롭게 잘 마무리 됐답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버스 타는 것만 혼잡했지, 그 다음부터는 계속 한적하게 우리만 다녔기 때문입니다. 역시 트레킹은 한적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하여간 제 어깨에 놓인 짐이 하나가 날아간 느낌입니다. 어쨌든 다섯번의 트레킹이 잘 마무리가 됐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더군요. 또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하다는 감정도 생기고!

 






  * 북한산: 북한산성 대서문에서 바라본 원효봉.







  *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 안산트레킹: 봉수대를 향해 가는 참가자들.








10월 22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행하는 역사트레킹 강의 세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이 날은 서대문 안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일명 안산역사트레킹을 한 것이죠!


사진에서 보여지듯 이날 날씨가 좋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수강생 분들은 마치 가을소풍을 하듯 트레킹을 즐기시더군요.


저도 덕분에 즐겁게 리딩을 했답니다. 저도 가을소풍을 만끽한 셈입니다.  







 

  * 메타세쿼이아 숲: 안산의 자랑인 메타세쿼이어 숲에 들어선 트레킹팀.

      






            

  * 안산트레킹 









 

 *홍제천: 홍제천을 건너고 있는 트레킹팀. 오리인지 거위인지... 하여간 저 녀석들이 우리들을 반겨줬다.​








 

  * 안산트레킹: 메타세쿼이아 숲.










  * 샛강 생태공원: 샛강 생태공원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 샛강 생태공원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거의 3년 만에 처음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10월 4일에 행한 한강 역사트레킹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유도에서부터 여의도에 있는 샛강 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저는 한강 역사트레킹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한강 트레킹을 마지막으로 행했을 때가 2013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저도 이 길을 걷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트레킹을 앞두고 좀 긴장을 했답니다.


"잘 되야 하는데... 또 오늘이 4학기 첫 수업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날은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습니다. 렛츠런 문화센터의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죠. 3학기가 잘 끝났으니 4학기는 더 잘 해야 하잖아요. 그런 심적 부담을 좀 안고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첫 수업이라서 그랬는지 수강생들도 거의 다 참석을 해주신 것 같더군요. 약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모였답니다.


10월의 하늘은 참 맑고 청명했습니다. 햇살이 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걷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


한강 역사트레킹은 서울에 있는 트레킹 코스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합니다. 선유도를 걷는 것도 좋고, 샛강 생태공원을 걷는 것도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의도 옆에 위치한 샛강 생태공원은 빌딩 숲과 푸른 수목이 어우러져 있어 무척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색적인 트레킹 코스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답니다. 바로 소음 때문입니다. 길 옆 쪽으로 88도로가 지나가는데 그래서 자동차 소음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죠. 리딩하는 내내 그 점이 마음이 걸리더군요.


그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트레킹은 무사히 잘 종료가 됐답니다.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렇게 호평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4학기는 가을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트레킹하기 정말 좋은 학기라고 생각합니다. 수강생들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트레킹에 임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런 만큼 제 어깨도 무척 무겁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죠. 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다음 강의 때도 날씨가 받혀줬으면 정말 좋겠네요~

 







​ * 샛강교: 샛강교에서 한 컷. 뒤로 여의도 금융가의 빌딩 숲들이 보인다.


 



   * 뱀 조심: 뱀 조심 표지판. 샛강 생태공원에 뱀이 나타나는가 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샛강에서 뱀을 본 적이 없다.







투표 후에 떠나는 봄꽃트레킹

한강, 서울성곽, 수표교까지! 아기자기한 서울내부트레킹

 

  

봄날이 왔습니다. 봄바람이 부니 하얀색 벚꽃들이 잎을 흩날리고, 노란색 개나리들이 춤을 춥니다. 20대 총선도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트레킹의 계절이 다가온 만큼 정치의 계절도 다가온 것이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413일에는 투표함에 민주주의의 꽃 한 송이를 넣으시고, 가까운 곳으로 봄꽃트레킹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이번에 소개할 코스는 서울 남산 부근에서 행해지는 일명 서울내부트레킹코스입니다. 남산 부근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투표를 하시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트레킹을 즐기셔도 좋을 듯합니다.


사실 이 서울내부트레킹은 동네 뒷산을 타고 갑니다. 시작점이 매봉산(금호산)이라는 곳인데 이 산은 전형적인 동네 뒷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스 중간에 있는 남산도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동네 뒷산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게 동네 뒷산을 타고 가지만 서울내부트레킹도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풍부하게 품고 있답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강을 조망할 수도 있고, 서울성곽길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걸음을 더하면 수표교와 광희문, 그리고 동대문으로 익숙한 흥인지문도 탐방할 수 있답니다.

    


 

 


* 한강: 매봉산 팔각정에서 바라 본 한강. 사진 오른쪽에 있는 다리는 동호대교임.





 

매 사냥터였다는 매봉산

 

트레킹은 금호산이라고도 불리는 매봉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매를 풀어 사냥을 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죠.


현재 매봉산은 응봉근린공원의 한 축으로 속해 있습니다. 그 응봉근린공원은 남산과 서울숲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지금이야 도심지의 확장으로 중간중간 녹지축이 잘려 나갔지만 예전에는 남산에서부터 응봉산까지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응봉산은 조선 초기 동빙고(東氷庫)가 있던 산으로 지금은 개나리 축제로 유명한 곳이죠.


지금의 매봉산은 의 눈빛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매를 볼 수 없는 매봉산이지만 트레킹팀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강을 시원스럽게 조망했던 것입니다. 매봉산 팔각정에 올라서면, 압구정동 방면으로 꺾여 나가는 역동적인 한강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답니다.


또한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근에 있는 아차산은 물론 멀리 팔당대교 까지 한강을 굽어볼 수 있습니다. 연이어 놓여 있는 한강다리들의 이름을 맞춰보는 것도 매봉산 탐방의 재미입니다. 지인과 동행을 했다면 한강다리 맞추기 내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 버티고개: 버티고개를 걷고 있는 트레킹팀.

 





버티고개에 앉아 있는 놈이 되지 말자!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다.”

 

이런 속담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전에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에서 김수현이 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네요.


저 속담은 사람들한테 사기나 치고, 민폐나 끼치는 못된 놈들을 욕할 때 쓰는 말입니다. 버티고개는 약수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합니다. 버터고개, 번터고개라고도 불린 이 고개는 길이 좁은데다 도둑들까지 들끓는 터에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 도둑들을 옛날 순라꾼들이 번도라고 외치며 추격을 했는데, 그 말이 변하여 번티라 불렸다가 다시 버티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 밤 중에 버티고개에 앉아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니 남들에게 민폐나 끼쳐서 밤중에 버티고개에 앉을 놈과 같은 욕을 먹지 말아야겠지요.


물론 지금의 버티고개는 걷기에 좋은 길이 됐습니다. 안전한 보행교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남산의 동쪽 방면을 보며 걸을 수 있답니다. 그렇게 버티고개를 넘으면 동남쪽 서울성곽길과 만나게 됩니다. 이 구간의 성곽길은 신라호텔 후면을 돌아갑니다. 이 구간은 신라호텔의 사유지였던 곳이 개방된 터라 비교적 성곽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서울성곽: 이 곳을 지나면 장충단공원이 나온다.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충단공원

 

가수 배호의 노래 안개 낀 장충단공원으로 유명한 장충단(奬忠壇)은 원래 제례를 드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어영청의 분소인 남소영(南小營)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남소영은 도성의 남부지역을 방비하는 군영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장충단이 들어서게 된 건 19009월경이었습니다. 고종은 을미사변(1895)으로 살해된 명성왕후와 신하들의 넋을 추모하고자 장충단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시위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장병들만 제사를 지냈으나 이후에는 이경직 같은 궁내부 대신들도 배향되었지요. 더불어 임오군란, 갑신정변 당시에 순직한 문신들도 배향되면서 많은 문무관들이 장충단제향신위(奬忠壇祭享神位)에 봉안됐습니다

 

공원 중심부에 서 있는 장충단(奬忠壇) 비석의 앞면은 순종이 직접 쓴 글씨를 세긴 것입니다. 순종은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이었으니 글자를 써내려가면서 울분을 토했을 겁니다.


장충단은 1910, 일제에 의해 폐사됩니다. 1920년대 일제는 장충단을 공원화하면서 그곳의 정신을 앗아가게 됩니다. 마치 종묘사직할 때의 사직단, 1922년 사직단 공원이 된 것과 같이 격하된 것이죠.


을미사변 희생자들의 넋들이 빠져나간(?) 장충단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추모시설들이 그 자리를 채워나갔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을 당해 죽었을 때인 1909년에 일본은 장충단에서 추도대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도하기 위해 박문사(博文寺)가 세워졌고, 상해사변(1932) 때 폭탄을 안고 적진(?)을 향해 갔던 육탄삼용사를 기리는 동상도 세워졌습니다.


육탄삼용사는 가미카제의 원형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피식웃음이 나옵니다. 중국군의 철조망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폭탄에 불을 댕겼는데 생각한 것보다 심지가 빨리 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냥 폭사했습니다. 그런 3인을 위해 일제는 동상을 세웠던 것이죠. 그런 일제가 만든 시설들은 광복 후에 다 철거가 됐습니다.

 





 * 수표교: 장충단공원에 있다.

    



 

유명한 정치집회 장소였던 장충단공원

 

광복 이후 장충단공원은 정치집회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정치집회 연설 중 두드러진 연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1971418,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의 선거 유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해 427일에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당시의 김대중의 연설은 무척 파격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지 못하면 박정희씨의 영구집권 총통시대가 온다

 

그의 연설처럼 1972년에 유신헌법이 제정됐고,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꿈꾸게 됩니다. 19791026일에 있은 시크릿 파티에서 한 잔의 술에 섞인 한 발의 총탄이 있기 전까지 박정희는 실질적으로 총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3권 분립은 그저 교과서에서만 존재했었지요.


이외에도 김대중은 향토예비군 폐지, 남북간 비정치적 영역 교류 실시, 지방자치제 도입 등을 언급했습니다. 지금이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당시의 시각으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당시 김대중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든 인파는 약 100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인파였죠.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그렇게 대규모 선거유세를 하지 않는 분위기지요. SNS를 이용한 선거홍보가 활발히 진행되니 굳이 대규모 정치연설을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대규모 연설회를 하든 SNS를 활발히 운영하든 중요한 건 돈 안 들리고, 정정당당하게 선거에 임하는 모습일 겁니다. 깨끗한 선거운동, 착실한 의정활동, 국민 편에 선 정치 등등... 이런 후보자들을 찾아내서 국회로 보내야 하는 게 유권자의 임무입니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이 말이 맹위를 떨치면 떨칠수록 우리 정치는 발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진짜 그 놈이 그 놈인지, ‘그 놈이 그 놈이 아닌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유권자의 임무 아닐까요?

 

   





*  서울성곽: 성곽 주변에 핀 개나리. 







 

청계천 복원의 핵심, 수표교


장충단공원에는 수표교(水標橋)도 있습니다. 청계천에 세워져 있던 수표교는 1958, 청계천이 복개가 될 때 철거되어 홍제동으로 이전했다가 1965년부터 장충단공원 입구에 자리 잡게 됐습니다.


수표교는 세종 2(1420)에 처음 세워졌는데 그때 이름은 마전교(馬廛橋)였습니다. 마전교가 수표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경되게 된 건 세종 23(1441)의 일입니다. 그해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다리 아래에 양수표(量水標) 세우게 됐는데 그것을 계기로 수표교(水標橋)로 개칭이 된 것입니다

 

수표교의 매력은 다리 난간에 있습니다. 난간이 있는 다리는 궁궐에서나 쓰였지요. 조선시대 민간의 다리는 징검다리나 섶다리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해가 나면 다리가 흔적조차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수표교는 튼튼한 돌다리인데다 고급스러운 난간까지 더해졌지요. 백성들이 이용하는 다리들 중에 수표교처럼 궁궐의 양식으로 격조 높게 축조된 다리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한편 수표교의 돌기둥에는 경진지평(庚辰地坪)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영조 36(1760), 그해에 있은 대대적인 청계천 준설 과정에서 새겨진 것입니다. 이렇듯 수표교는 역사적으로 건축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다리입니다.


하지만 수표교는 청계천이 복원된 지금까지도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청계천 자리에는 짝퉁 수표교가 세워져 있습니다.






*광희문: 4소문 중에 하나인 광희문.



    


 

아기자기한 역사트레킹 코스

 

 

광희문과 흥인지문(동대문) 탐방을 끝으로 서울 내부트레킹은 종료가 됩니다. 광희문은 4소문 중에 하나고, 흥인지문은 4대문 중에 하나입니다.


한강 보고, 서울성곽길 걷고, 장충단도 탐방하고, 대문과 소문을 관찰할 수 있는 서울 내부트레킹! 동네 뒷산에서 시작되지만 이 정도면 아기자기한 역사트레킹 코스라고 할 수 있겠죠. 봄날, 매봉산과 남산 부근에는 벚꽃과 개나리들이 활짝 피어납니다. 413일이면 만개를 했겠네요. 투표 끝난 후에 봄꽃트레킹 어떠세요? 투표함에 민주주의의 꽃 한 송이를 넣으시고, 가까운 곳으로 봄꽃트레킹을 떠나보는 거죠!

 

 

 

 

서울내부트레킹

 

1. 코스: 매봉산 팔각정 버티고개 성곽길 장충단공원(수표교) 광희문 흥인지문(동대문)

2. 이동거리: 8km

3. 예상시간: 3시간 30(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5. 교통편: IN - 청구역(5호선) / OUT - 동대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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