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다고? 

 

[22일간의 스페인 여행기 ②] 산티아고 순례길과 성인 야고보 1부

 

14.12.19 10:47 최종 업데이트 14.12.19 14:03
 


 

 

 


 
▲ 산티아고 카미노 순례자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는 야고보를, 카미노는 길을 뜻한다. 즉, 산티아고 카미노는 '야고보 길'이라는 뜻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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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Santiago)는 스페인어로 야고보를 뜻한다. 야고보는 사도 요한의 형으로, 야고보와 요한은 둘 다 예수의 열두 제자였다. 야고보는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야고보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왔다. 고된 사역 길 이후 다시 돌아온 고향이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금의환향'이 아닌 죽음의 그림자였다.

유대왕인 헤롯 아그리파 1세의 무시무시한 칼날이 그의 목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아그리파는 예수가 태어날 때, 베들레헴의 신생 아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던 그 헤롯왕의 손자였다. 대대로 헤롯왕가들은 유대 땅에 그리스도교가 기반을 잡는 것을 싫어했던 모양이다. 결국 야고보는 기원후 44년 7월 25일에 참수를 당하고 만다. 열두 제자 중 처음으로 순교자가 된 것이다.

 

 



민중 속에서 '부활'한 야고보

 

 
▲ 성인 야고보 산티아고 대성당 벽면에 새겨진 야고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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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야고보의 시신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배에 실려 에스파냐 북서부 지역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한다. 에스파냐에서 복음을 전한 만큼 그곳에 뼈를 묻겠다는 유언이 있었고, 제자들이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그 먼, 당시는 로마 지배하에 있던 이베리아 반도까지 장거리 항해를 마다하지 않고 제자들은 돛을 올렸을 것이다.

당시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지 않았다. 공인은커녕 탄압에 앞장섰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야고보와 관련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 갔다. 이후 야고보의 존재가 민중 속에서 '부활'한 것은 8세기경이었다. '별들의 들판'이라고 불리는 캄푸스 스텔라(Campus Stellae)에 있는 무덤 중 하나가 별의 계시를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민중 속에서 널리 퍼져 나갔던 것이다.

그 계시가 실현이 된 것인지, 서기 813년경 성인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당시 스페인 북서부를 지배하고 있던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는 그 무덤이 발견된 곳에 성당을 짓게 한다. 그렇게 해서 건립된 것이 산티아고 대성당이다. 이후 대성당이 있는 곳에 도시가 들어서니, 그곳이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다.

여기까지가 산티아고 카미노(camino : 스페인어로 '길')에 녹아 있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이다. 이 내용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언론들뿐 아니라 스페인 관광청의 소개 책자에도 기술돼 있다.

 

 

 

 

 



정말 산티아고 대성당에 성인 야고보가 잠들어 있을까? 

 

 
▲ 산티아고 순례길 지도상에 표기된 길은 순례길의 메인이라고 불리는 프랑스길이다. 프랑스 길 이외에도 북부길, 포르투갈길 등 다양한 지선들이 있다. 산티아고 정보를 담은 현지 홈페이지 자료이다.
ⓒ 산티아고홈페이지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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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은 필그림(Pilgrim)이라고 불린다. 말 그대로 순례자라는 뜻이다. 종교다원론자(?)인 필자도 200km 남짓 되는 순례길을 걸으며 짧게나마 필그림이 됐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야고보 성인을 기리며 미사에도 참석했다. 대성당에서 드린 미사는 필자에게 무언가 모를 강한 영감을 심어주었다. 그 영감은 예전에 논산 관촉사에서 은진미륵을 처음 봤던 때의 감흥과 비슷했다. 그러한 '신성한 느낌'에 이끌려서 그랬는지, 필자는 이후 계속된 스페인 여행에서 일부러 각 지역에 있는 성당들을 골라 탐방하기도 했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또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선한 감흥을 얻었지만, 여행을 하기 전부터 품었던 근본적인 물음은 계속 풀리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그 물음은 계속 필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진짜 산티아고 대성당에 사도 야고보가 묻혀 있는 게 맞는 거야? 야고보의 제자들은 스페인 땅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거기까지 간 거지. 내비게이션이라도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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