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타사 대적광전

 

 

 

 

 

2021년 7월 3일 토요일

 

설악산을 떠나 홍천에 도착했다. 같은 강원도라도 설악산, 태백산이 있는 영동지방과 경기도와 가까운 영서지방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영동지방이 우뚝 솟아있는 산봉우리 이미지라면 영서지방은 그보다는 부드러운 강물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영서지방을 적시고 있는 북한강과 남한강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연상될터!

 

이날은 홍천의 명산인 공작산을 탐방했다. 정상을 간 것은 아니고... 그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수타사를 탐방한 것이다. 그리고 수타사 옆쪽에 조성되어 있는 공작산 산소길을 걸었다. 필자도 나이가 점점 먹어가니 산 정상을 가는 것보다 그 아래에서 노니는 것이 더 좋아진다. 그렇게 노닐다 사찰을 탐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수타사! 이름부터 군침이 돌지 않는가? 가뜩이나 필자는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특히 간짜장!

 

수타사(壽陀寺)는 목숨수(壽), 비탈질타(陀)에서 보듯 면발이 예술인 수타짜장하고는 관계가 없는 곳이다. 수타사(壽陀寺)는 셀 수 없는 정토세계의 무한한 수명을 뜻한다. 그런데 해당 명칭을 얻게 된 건 1811년(순조 11) 때이다. 홍천 공작산 수타사라하면 알 사람은 아는 유명한 사찰인데 그에 비해 명칭은 너무 늦게 자리잡은 것이다.

 

수타사는 공작산(887.4m)에 있다. 공작산! 이름부터 무언가 있어보이지 않는가? 공작산 일대는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일명 공작포란형 지형이다. 화려하고 큰 날개를 가진 공작이 알을 품고 있다니! 명당이 따로 없구나! 더군다나 그 사이로 비경을 품고 있는 수타계곡이 흐르고 있으니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고 할 만 하다.

 

공작포란형 지형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동작동 국립묘지다. 서울 서달산 아래에 자리잡은 국립묘지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북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 아시겠지만 집을 짓는 양택이든 묘지를 쓰는 음택이든 남향을 선호하지 북향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럼 흉지에 국립묘지를 썼다는 것인가? 아니다. 아무리 북향이라도 서달산이 가지고 있는 공작포란형 지형 때문에 국립묘지는 명당이 된 것이다. 지형 자체가 가진 기운이 북향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공작새의 화려한 날개짓처럼 웅장함을 드러내는 공작산은 영서지방의 명산으로 불린다. 그런 명산에 천년고찰인 수타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일월사지 삼층석탑

 

 

 

 

 

 

* 흥회루

 

 

 

 

 

 

 

수타사는 후기 신라시대인 708년(성덕왕7)에 창건됐다. 원효대사가 창건주라고 전해지지만 원효께서는 이미 686년에 열반에 드셨으니 창건과 관련된 정황들은 좀 더 면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일월사(日月寺)였다. 또한 위치도 현재보다 좀 더 위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공작산도 처음에는 우적산이라고 불렸다. 그러다 조선 중기인 1568년(선조2)에 현 위치로 이건을 하게 된다. 이때 일월사에서 수타사(水墮寺)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우적산도 이름이 바뀌어 공작산이 된다. 지금은 옛 일월사 터에는 삼층석탑만이 그 공간을 지키고 있다. 삼층석탑은 현재 2층과 3층 탑신부가 없는 상태다. 꼭대기 부분인 상륜부도 없다. 훼손이 많이 됐는데 온전한 형태였으면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거 같다.

 

수타사 일대에 흐르고 있는 덕지천을 건너 사천왕문을 향한다. 그전에 앞쪽에 펼쳐진 연꽃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타사 산소길로 이어지는 길인데 자꾸 몸이 그리고 향한다. 길이 얼마나 예뻤으면! 빨리 수타사 탐방하고 산소길을 걸어야겠다.

 

수타사의 사천왕문은 봉황문이라고 불린다. 그 봉황문을 지나면 흥회루가 나온다. 사찰의 중심 영역으로 들어갈 때는 2층으로 된 누각 아래로 난 문을 통해 입장한다. 그런 누각을 통상 보제루라고 하는데 수타사에서는 흥회루(興懷樓)라고 부른다. 봉황문도 그렇고, 흥회루도 그렇고... 수타사는 독특한 면이 있다.

 

흥회루를 자세히 살펴보면 더 독특하다. 통상적으로 보제루는 2층으로 되어있는데 흥회루는 단층이다. 그래서 아래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각을 옆으로 둘러가야 한다. 이것도 좀 독특한 방식이다. 정5칸 측3칸으로 이루어진 흥회루는 조선 후기인 1658년(효종9)에 지어졌다. 이후 변형이 있었지만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2015년 8월 7일에 강원도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이제 흥회루를 지나 본전인 대적광전으로 가보자. 수타사는 본전이 대적광전인데 이곳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있다. 정3칸 측3칸으로 지어진 대적광전은 1636년(인조14)에 공잠대사에 의해서 중창됐다. 조일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타사를 다시 일으켜세운 이가 바로 공잠대사인 것이다.

 

대적광전 앞에는 길쭉한, 빼빼로같은 석물이 하나 있다. 본전 건물 앞에는 석탑이 있거나 석등이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빼빼로처럼 생긴 석물은 거의 보지 못하셨을 것이다. 이것은 물을 공양하기 위해 만든 석물이다. 맨 위를 둥글게 큰 그릇처럼 만들었는데 그곳에다 맑은 물을 올렸다는 것이다.

 

대적광전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있는 형상이다. 주위의 산세와도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런 이유로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만큼 보물로의 격상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수타사를 나서기 전에 꼭 봐야할 문화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수타사 동종이다. 이 종은 조선 후기에 활약하신 사인 스님이 제작한 것으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사인 스님은 종을 만드는 주종장이었는데 주로 경기, 강원, 경상지역에서 종을 제작하셨다. 워낙 제작 기술이 뛰어나서 그런지 사인스님이 만든 종은 무려 8개가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11-x호'와 같이 지정번호를 받았는데 수타사 동종은 11-3호이다.

 

서울 북한산 화계사에도 사인스님의 동종이 있다. 그 종은 보물 제11-5호다. 화계사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 동종을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했었는데 수타사에서 또다른 사인스님 동종을 친견하게 되서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보호각 안에 있어서 시원하게 보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화계사 동종은 종루에 걸려있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 점에서는 화계사 동종이 실물을 친견하기에 낫다.

 

이렇게하여 공작산 수타사 탐방은 종료가 됐다. 경내가 크지는 않지만 참 아기자기한 사찰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찰이 더 좋다.

 

이제는 산소길을 걸을 차례다. 왜 산소길이라는 명칭이 붙었는지 걸어보면 아실 것이다. 걷다보면 맑은 공기로 전해지는 청량감이 온 몸을 감싸앉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산소길을 걷는 이유다.

 

 

 

 

 

 

*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삼불이 아닌 단불로 모셔져있다.

 

 

 

 

 

 

 

 

* 대적광전: 물을 공양하기 위해 만든 석물

 

 

 

 

 

 

* 수타사 사인비구 동종

 

 

 

 

 

 

* 산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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