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정약용: 다산 유물전시관에 서 있는 다산 선생 동상.







정약용 선생 만나러 갑시다_2편


강진 정약용 역사트레킹

    


 

남도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 , 바다가 서로 어우러진 풍광들은 여행자들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 넉넉한 남도의 풍광들을 벗 삼아 길을 걷다보면 발걸음도 가벼워질 겁니다. 그렇게 걷다가 꼬르륵소리가 나면 푸짐한 남도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도 있겠지요. 상다리가 부러질 듯이, 한 상 가득 채워진 음식들을 먹다보면 콧노래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환호성을 터뜨리면서요.

 

~ 풍광 좋고, 음식 좋고...! 이 맛에 남도 트레킹한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남도로 떠납니다. , 그럼 아기자기한 풍광과 맛깔 나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남도로 우리 함께 길을 나서보죠!


제가 찾은 곳은 전남 강진군입니다. ‘남도 답사 1번지라고 불리는 강진군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다산 선생은 만덕산 기슭에다 다산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집필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강진에서 무려 18년 동안이나 생활 하셨던 만큼 강진 곳곳에는 다산 선생의 자취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답니다. 그런 자취를 따라서 강진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산 선생의 자취를 따라서 도보여행을 했습니다. 일명 강진 정약용역사트레킹을 행했답니다. 이번화는 그 강진 정약용트레킹을 담았습니다. 이전 9화가 남양주 정약용역사트레킹이었으니, 이번 10화는 9화의 후속편이 되는 셈입니다.

    



* 다산 정약용: 안경을 쓰신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산유물전시관.


 


 

정약용과 강진

 

영월군은 단종이 먹여 살리고 있어요!”

 

제가 영월강변둘레길을 리딩 했을 때였습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를 앞에 두고 참석자들에게 저 말을 했답니다. 좀 과장된 면이 있긴 했지만 제가 했던 말이 영 틀린 표현은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참가자들이 거의 다 고개를 끄떡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한 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강진도 그래요. 전남 강진도 정약용 선생이 먹여 살리고 있어요!”

 

이 말에는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을 넘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쳐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첨언을 했습니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청령포가 지금처럼 많은 이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강진도 마찬가지죠. 다산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오지 않으셨다면, 강진이 지금처럼 남도답사 1번지라는 수식어를 부여받지 못했을 겁니다.”

 

여행지로서의 강진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고려청자의 고장이자, 도요새의 고장인 전남 강진! 그런 지역적 명물들이 강진을 빛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진을 강진답게 해주는 건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입니다. 정약용 선생이 없는 강진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산 선생의 생가가 경기도 남양주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더군요. 하지만 다산 선생의 유배지가 강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다산 선생과 강진을 한 묶음으로 묶어서 생각하고 있더군요. 한마디로 다산 선생과 강진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 수원 화성 축조: 기중기를 이용하여 성을 쌓고 있는 모습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산유물전시관.




 

 

다산유물전시관

 

강진 정약용 역사트레킹은 다산유물전시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강진군 도암면에 위치한 다산유물전시관은 만덕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유명한 다산초당은 다산유물전시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면 다산초당에 닿을 수 있지요.


다산유물기념관은 다산 선생과 관련된 유물과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산 선생이 500여권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기록한 만큼 기념관은 다산 선생이 기술한 책들로 가득했습니다. 다산 선생이 직접 기록한 책이 아닌 필사본이라 아쉽기는 했지만 옛 고서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제 눈을 사로잡은 서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기중가도설>이었습니다. <기중가도설>은 중국의<기기도설>을 토대로 다산 선생이 저술한 것인데 한마디로 기중기설계도였습니다. 수원 화성 축조 시, 다산 선생이 기중기를 제작하여 큰 성과를 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요.


<기중가도설>에는 그런 기중기의 도면이 직접 그려져 있었습니다. 꼼꼼하게 그려진 설계도를 보니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오더군요. 그 밖에도 다산유물기념관에는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공짜로 본다는 게 미안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전시물들이 꽤 많았답니다.


다산유물기념관 위쪽으로는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이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은 큰 석상에다 선생의 어록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전 그 어록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울림이 큰 말씀들이더군요. 세상의 지혜들을 모두 다 옮겨 놓은 것처럼 보였답니다.


어쩌면 따분한 도덕선생님같은 글귀들에 하품부터 내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그 말씀들이 죽비소리처럼 들렸답니다. 아주 큰 울림을 내는 그런 죽비소리.

    

 

    


*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





 

다산초당

 

다음 탐방지는 다산초당(茶山草堂)입니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중턱에 자리 잡은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였습니다. 다산 선생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하셨는데 그중 후반부 10년 정도를 다산초당에서 기거하시며 집필과 후학양성에 매진하셨습니다. 유배에서 풀리는 것을 해배(解配)라고 하는데, 그 초당에서 다산선생은 해배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무리 초당이 유배지였다지만 10년 동안 그곳에 기거하시다보니 정이 많이 드셨나 봅니다. 선생께서 고향땅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강진에 있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초당의 안부를 물으시곤 했으니까요.


현재의 다산초당은 기와집입니다. 초당(草堂)이라 하면 초가집이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현재의 다산초당을 복원하면서, 보다 위엄을 살리기 위해 초가가 아닌 기와집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 다산초당: 현판에 걸린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다산초당은 만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기에 주변이 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숲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입니다. 초당 위쪽인 만덕산 중턱 부근에는 천년고찰인 백련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다산 선생께서는 백련사 스님들과도 활발하게 교유하셨기에 그 길을 자주 걸으셨답니다.


유학자였지만 다산 선생께서는 서학(천주교)에도 일가견이 있으셨습니다. 도교에도 문외한이 아니셨죠. 또한 스님들과도 활발하게 교류를 하셨습니다. 그럼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을까요?

 

다산 선생은 유···서를 두루 섭력하신 학자였다

 

다산(茶山) 선생은 자신의 호처럼 차를 즐기셨습니다. 또 백련사 승려들과 활발하게 불교에 대해서 토론을 하셨습니다. 간간이 강진 읍내도 다녀가셨고, 인근 영암에 있는 월출산에도 오르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다산 선생도 한 풍류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어쩌면 다산 선생의 일생 자체가 바람과 같은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계속되는 반대파들의 견제와 탄압, 그리고 억울한 귀향살이. 무려 18년이나 계속된 귀향살이. 하지만 그런 운명에 굴하지 않고 유배지를 도서관으로 만든 그 꿋꿋함.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못 다한 일을 잘 마무리하기까지.

 

드라마틱한 다산 선생의 일생을 들여다 볼 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매일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제 자신이니까요. 얼마전에도 예정된 트레킹이 펑크가 났다고 며칠간 궁시렁거렸답니다. 조금만 궁시렁거려도 될 걸...


하지만 다산 선생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은 정말 기쁘고 행복하네요. 딱 꼬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하나 배워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제 발걸음이 계속해서 다산 선생에게로 가는 것이겠죠. 강진이든 남양주든, 혹은 수원이든. 그 곳이 어디든지 상관없습니다. 다산 선생의 뜻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제 발걸음도 함께 것이니까요.






* 다산초당 가는 길: 저렇게 한적한 숲길을 지나면 다산초당에 닿을 수 있다. 한편 왼쪽에 삼남길이라는 표식이 보인다. 삼남길은 서울에서부터 해남까지 걸을 수 있게 만든 도보여행길인데 그 길이가 무려 600km에 달한다.






강진 정약용역사트레킹

 

1. 코스: 다산수련원 다산초당 백련사 뚝방길 강진읍내

 

2. 이동거리: 11km

 

3. 예상시간: 4시간 30(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 백련사: 천년고찰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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